"하지원과 강동원 두 배우를 보니까 마치 20년 전 그 시간으로 떨어진 느낌입니다. 타임머신 탄 것 같은 판타지를 느꼈습니다." _이명세 감독
관객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꼽은 '형사: Duelist'의 주역인 이명세 감독과 배우 하지원, 강동원이 개봉 20주년을 맞이해 관객들과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20일 초창기 부산국제영화제의 중심이었던 부산 중구 남포동 메가박스 부산극장에서는 제8회 커뮤니티비프 리퀘스트시네마 초청작인 '형사: Duelist'(이하 '형사')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리퀘스트시네마'는 관객이 프로그래머가 되어 직접 상영작 선정과 기획 운영에 참여하는 대표적인 관객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올해는 5268명이 참여한 선정 투표를 거쳐 180편 후보작 중 13편이 최종 확정됐다. '형사'는 부국제 관객들이 다시 보고 싶은 작품으로 선정됐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이명세 감독은 "멜로 드라마를 찍고 싶어서 만든 게 '형사'다. 오늘 보면서 '이게 진짜 멜로 드라마구나' '잘 찍었구나'라는 생각을 20년 만에 처음으로 하게 됐다"며 관객들에게 유머러스하게 인사를 건넸다.
'형사'에서 좌포청 신참 남순 역을 연기한 하지원은 "오랜만에 보는데 두 사람은 남녀나 위치, 시대를 떠나 진짜 인연이었구나 싶다. 그래서 짠한 느낌을 받았다"며 20년 전 봤던 '형사'보다 오늘 본 '형사'가 더 좋았다"고 했다.
그는 "그때는 영화의 본질,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이 지금보다 덜 정립됐던 것 같다. 그래서 당시에는 시나리오를 보면서 어떻게 그림이 그려질지 이해 안 되는 게 많았는데, 오늘 보니까 '이 영화 미쳤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카메라, 조명, 배우들, 음악 등 당시에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로 맞아떨어져서 컷들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20년 전보다 감독님이 더 멋있게 보였다"며 웃었다.
하지원은 "이렇게 아름다운 영화를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며 "그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 더 이해되고, 이 영화를 더 사랑하게 된 거 같다"고 말했다.
슬픈눈 역의 강동원은 "예전에 감독님께 처음 시나리오를 받아서 읽었을 때 느꼈던 것 중 아직 남아 있는 게 있다"며 "감독님 시나리오는 영화 시나리오인데도 문학 같은 느낌이 있다. 묘사가 엄청 섬세해서 영화 속 돌담길 신을 읽을 때 어떤 냄새 같은 게 떠오를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몇몇 관객들은 왜 '형사' 속 슬픈눈은 진짜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냐고 질문했다. 이에 강동원은 "우리끼리는 이름이 너무 창피해서 말을 못 한 거다, 이름이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이랑 너무 안 어울려서 말을 안 하는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다"고 말해 관객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20년 만에 '형사'로 다시 뭉친 이명세 감독과 하지원, 강동원은 각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을 꼽았다.
이명세 감독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은 마지막 남순과 슬픈눈의 대결 장면이 너무 좋았다"며 "그게 사실 진짜 에로틱한 장면이다. 하지원은 모르고 강동원만 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원도 마지막 엔딩 신에서 남순과 슬픈눈이 서로 칼을 겨누며 원형으로 도는 신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그때 강동원씨의 슬픈 얼굴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마지막 슬픈눈과 남순의 장면이 너무 아름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강동원은 돌담길에서 슬픈눈과 남순이 펼치는 춤사위 같은 대결 신을 꼽으며 "뭐니 뭐니 해도 둘이 돌담길에서 결투하는 장면이 '형사'의 압권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데, 빛과 어둠을 완전하게 양분해야 하는데 계속 빛이 반사되면서 제대로 나뉘지 않았다"며 "지금 같으면 CG로 하면 되지만, 그 당시는 필름으로 찍던 시절이다. 그때 감독님이 과감하게 촬영을 접고, 바닥까지 검은색 천으로 다 덮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거기에 검은 천을 다 둘렀더니 딱 반으로 갈라지더라. 그래서 거기에 맞춰서 동선도 다시 짰다"며 "영화를 보면 되게 그럴듯해 보이는데, 우리는 어둠 속에서는 팔만 흔들다가 카메라 앞에서만 멋있게 연기하길 반복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 돌담길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높은 돌담길이 없었다"며 "'형사'가 진짜 사극 드라마와 영화의 레퍼런스로 많이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현장을 떠올리던 세 사람은 새삼 감회가 새로운 듯 20년 전을 향한 향수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명세 감독은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뭔가 뭉클하더라. 정말 시간이 겹치기도 하고, 주마등처럼 흘러간다"며 "배우들을 보는데, 20년 전이 떠올랐다. 20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극성'을 보면서 강동원 배우가 남자가 된 거 같다고 느꼈는데, 오늘 보니 20년 전 강동원이 있는 느낌이다. 하지원 배우도 화가로도 활동하는 아티스트인데, 아티스트가 된 눈으로 보는 '형사'는 어땠을지 떨렸다"며 "마치 20년 전 그 시간으로 떨어진 느낌이다. 타임머신 탄 것 같은 판타지를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강동원은 "진짜 새삼 느끼는 건데, 지금은 쉽게 해내는 것도 그 당시에는 너무 어렵게 찍었다. 뭔가 모두가 힘을 합쳐 어떤 걸 해낸다는 로망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형사'가 마법 같은 순간이 많았다"며 "요즘은 모든 게 다 디지털로 이뤄지고,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예전과 같은 희열을 느끼기 힘들다. 그런 게 그립기도 하다"고 했다.
이에 하지원은 "나도 동원씨와 비슷하게 그때 그 현장을 또 만나보고 싶다. 20년 전 그 현장이라면 그때보다 지금 더 신나게 더 재밌게 놀 수 있을 것 같다"고 화답했다.
마지막으로 강동원은 이명세 감독을 향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형사'는 제일 애착이 가는 영화다. 지금도 영화를 할 때 '형사' 때 배웠던 걸 기반으로 준비한다"며 "그래서 이명세 감독님은 영화의 아버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에 '형사'로 관객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서 너무너무 좋다"고 했다.
하지원은 "대한민국에서 '형사'와 같이 매혹적인 영화가 또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감독님께 감사하다"며 "나도 '형사'를 보면서 다시 열정이 더 많이 생기는 거 같다. 앞으로 좋은 영화, 좋은 배우로 계속 관객분들과 함께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