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연내 배임죄 폐지"↔국힘 "재명무죄 프로젝트"

윤창원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올해 정기국회 안에 배임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하자 곧바로 국민의힘에서 '이재명 대통령 무죄 만들기 프로젝트'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대통령이 받고 있는 재판 5개 중 2개가 배임죄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다.

이같은 의심은 민주당이 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간 주로 띄웠던 이슈 중 상당수가 이 대통령 사법리스크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 근거한다. 여당 내부에선 '이 대통령 사건 해결용 큰그림'이란 해석에 선을 그으면서도 배임죄 폐지는 과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병기 "배임죄 폐지"…李 면소 위한 밑그림?

김 원내대표는 2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배임죄를 폐지할 것"이라며 "배임죄 폐지는 재계의 오랜 숙원"이라고 강조했다.

본인의 배임죄 폐지 구상에 대해 야당에서 "이 대통령 재판을 무력화시키고, 법을 없애서 면소 판결을 받겠다는 얄팍한 속셈"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기업 환경 개선'이라는 명분을 강조한 것.

야당이 이처럼 배임죄 폐지를 '이 대통령 재판 무력화'로 연결하는 배경은 이 대통령이 받게 된 △제20대 대선 허위사실 공표 △검사 사칭 사건 위증교사 △대장동·백현동 등 개발비리 및 성남FC 불법후원금 △쌍방울 대북송금 △법인카드 사적유용 등 5개 재판 가운데 2개가 배임죄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대장동·백현동 등 개발비리 및 성남FC 불법후원금 사건에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고, 법인카드 사적유용 사건에선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다. 법조계에선 배임죄가 전부 폐지될 경우 형사소송법 제326조에 의해 진행 중이던 재판은 '면소'(免訴) 판결이 가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與 "배임죄 폐지는 재계 민원…李와 상관 없어"

연합뉴스

여권 내부에선 김 원내대표가 폐지하겠다는 배임죄와 이 대통령이 기소된 배임 혐의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배임죄도 뜯어 보면 갈래가 다양하기 때문에 폐지가 곧 이 대통령 면책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재계의 숙원인 상법상 배임죄만 폐지되고 형법상 배임죄는 그대로 둔다면 이 대통령 재판에 영향을 미치진 않기 때문이다.

다만 김 원내대표는 최근 '배임죄 폐지'를 띄우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범주까지 할 것인가에 대해선 아직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와 관련, 한 여당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배임죄를 전부 폐지할지, 일부를 명문화할지는 결정이 안 됐다. 법사위에서 추가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이게 갑자기 나온 얘기가 아니라 지난 상법 개정 때부터 기업 측에서 보완책 차원에서 꾸준히 요구해 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배임죄를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형사 처벌에 관한 부분은 완화하고 민사 책임은 강화한다든지, 형법을 개정할 건지 상법을 개정할 건지 등 논의 중"이라며 "국민의힘에서 왜 (이 대통령) 면소 얘기까지 나오는지 모르겠다"고 반박했다.

여권 관계자도 "배임죄 폐지의 목표가 이 대통령 사건을 면소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여러 혐의가 같이 묶여서 기소됐기 때문에 배임죄 폐지만으로 면소될 수도 없다"며 "김 원내대표가 배임죄 폐지를 구상하는 건 상법과 노란봉투법을 처리하면서 기업 민원을 반영해 균형 있게 다루려는 차원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與, 100일간 李 재판 중 무죄 나온 것만 빼고 다 건드려

민주당이 배임죄 폐지 카드까지 꺼내들자 국민의힘에선 '이 대통령 무죄 만들기 프로젝트'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집권 100여일 동안 지도부와 특위 등 당 차원에서 각개격파로 추진해 온 이슈의 상당수가 종국에는 '이 대통령 사법리스크 해소'로 연결된다는 이유에서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한 공격은 민주당이 '삼권분립 훼손'이란 비판에도 아랑곳 않고 그 강도를 계속 높여왔다. 조 대법원장이 한덕수 전 총리 등과 이 대통령 공직선거법 사건 유죄 취지 파기환송을 사전 모의했다는 기획설(說)을 뚜렷한 근거 없이 제보만으로 국회 본회의장에서 꺼내고 이를 지도부가 언급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조 대법원장을 겨냥한 청문회까지 30일 국회 법사위에서 열기로 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 대통령의 '제20대 대선 허위사실 공표 사건'에서 2심 무죄를 뒤집고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당사자다.

아울러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관련해선 이화영 전 경기부지사가 제기했던 이른바 '연어 술파티' 의혹에 대해 정성호 법무부장관이 지난 17일 감찰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후 민주당에선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재심 청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이 대통령 공소 취소(김준혁 의원)'까지 거론하고 있다.

또 민주당 '정치검찰 조작기소대응특위'는 지난 19일 이 대통령이 연루된 대장동 사건 수사·기소 과정에서 조작과 왜곡이 발견됐다며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김 원내대표가 띄운 '배임죄 폐지'까지 종합하면, 사실상 이 대통령 재판 5개 중 1심에서 무죄가 나온 위증교사 사건을 제외하고는 전부 건드리고 있는 셈이다.

野 "유전무죄 넘어 재명무죄"…與내부서도 '우려'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 사법 절차를 무력화시키려는 행태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반헌법적 폭거"라며 "'유전무죄'를 넘어 '재명무죄' 시대를 열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비난했다.

이어 "민주당이 말하는 '경제 활성화' 뒤에는 오직 '이재명 구하기'라는 진짜 목적이 숨어 있다"며 "권력자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라가 쑥대밭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뻔뻔한 책동이다. '이재명 무죄법'으로 법치를 유린하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배임죄 폐지는 선을 넘은 일"이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배임죄를 섣불리 폐지할 경우 지도부의 지도력에 타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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