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 '체인소 맨'을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으로 처음 접한 관객인 점 주의
로맨스인 줄 알았더니 갑자기 폭탄과 전기톱질로 인한 피가 난무하는 영화가 됐는데, 이상하게 개그까지 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순애보 로맨스로 돌아온다. 이상하고 강렬한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은 극장이라는 플랫폼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콘텐츠에 최적화된 작품이다.
데블 헌터로 일하는 소년 덴지는 조직의 배신으로 죽음에 내몰린 순간 전기톱 악마견 포치타와의 계약으로 하나로 합쳐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존재 '체인소 맨'으로 다시 태어난다. 어느 날 악마와 사냥꾼, 그리고 정체불명의 적들이 얽힌 잔혹한 전쟁 속에서 레제라는 이름의 미스터리한 소녀가 덴지 앞에 나타난다. 덴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끌려 지금껏 가장 위험한 배틀에 몸을 던진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후지모토 타츠키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이하 '극장판 체인소 맨')은 TV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에서 액션 감독을 맡아 화려한 액션과 감각적인 연출로 깊은 인상을 남긴 요시하라 타츠야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극장판의 소재가 된 '레제편'은 원작 팬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아온 에피소드로, TV 시리즈 1기 이후 원작 코믹스 5권 후반부터 6권에 해당하는 내용을 그린다.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요네즈 켄시가 부른 '아이리스 아웃'으로 문을 여는 '극장판 체인소 맨'은 감각적이고 다이내믹한 오프닝 시퀀스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후 영화는 의외로 드라마의 분위기에서 로맨스를 거쳐 액션을 지나 다시 로맨스와 드라마로 돌아온다. 이 로맨스 또한 말 그대로 사랑을 위해 목숨은 물론 모든 것을 바치는 '순애'(殉愛)적인 로맨스라서 피 튀기는 액션과 상반적이면서도, 그렇기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우선 오프닝 시퀀스는 감각적인 연출과 리듬감 넘치는 편집으로 음악과 잘 어울린다. '극장판 체인소 맨'과 요네즈 켄시의 음악은 일종의 양의 피드백 관계처럼 보인다. '극장판 체인소 맨'은 요네즈 켄시의 음악을 만나 작품이 가진 매력이 한층 살아나고, 요네즈 켄시의 음악은 보다 이미지적으로 다가오며 귀는 물론 눈으로도 즐기는 음악으로 거듭난 느낌이다.
일단 전형적인 남성향 작품이라는 점과 이로 인한 불편한 지점들은 차치하고 살펴본다면, 드라마와 로맨스, 액션과 B급 유머가 뒤섞인 '극장판 체인소 맨'은 선택과 집중을 한 작품이다. 모든 지점에 힘을 주거나 세밀하게 그려내기보다는 필요한 것, 제대로 보여줘야 할 것들에만 힘을 쏟는다. 만화책이 아닌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효율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특히 액션 시퀀스들은 만화책에서 보여줄 수 없는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요소를 극대화했다. '폭발'과 '태풍'이라는 스케일 큰 악마들이 등장하는 만큼, 극장 스크린에 꽉 들어차도록 액션을 구성한다. 여기서 사운드 디자인을 통해 폭탄의 폭발음을 리드미컬하게 조직하며 영화적인 체험을 높인다.
'극장판 체인소 맨'은 그렇다고 단순히 액션으로만 작동하는 영화는 아니다. 한 예로, 불꽃놀이를 연상시키는 듯한 폭발 신은 마치 레제와 덴지가 나눈 호감의 시간이 서로 죽고 죽이는 속에서도 남아 있는 듯함 느낌을 자아낸다.
둘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 곳, 불꽃놀이가 펼쳐질 장소와 시간대에 이러한 연출을 한다는 것에는 어쩌면 감독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렇기에 액션 시퀀스이지만 동시에 드라마적인 연출을 통해 레제와 덴지의 관계와 그들의 마음이 결코 단순하거나 거짓된 것만은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연출은 수영장 신에서도 엿볼 수 있다. 덴지와 레제가 수영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한편으로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 후반, 덴지가 체인으로 레제를 감아 함께 바다로 빠지는 모습과 의미적으로 연결된다.
거미와 나비의 관계는 덴지와 레제가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후 레제의 반전과 이어지며 레제가 덴지의 심장을 노릴 것임을 암시한다. 이후 덴지는 레제와의 대결 끝에 자신의 무기를 응용한 새로운 공격법을 찾게 되고, 체인을 이용해 마치 거미가 그러하듯 레제의 몸을 구속해 함께 바다로 뛰어들며 상황을 마무리한다.
이러한 선택은 결국 덴지는 레제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었음이 드러난다. 이처럼 드라마나 액션 과정에서도 여러 숏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인물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장면은 흥미로운 지점들이다.
또 하나 '극장판 체인소 맨'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이솝 우화 중 '시골쥐와 도시쥐'를 중심으로 한 대화다.
'시골쥐와 도시쥐'는 기본적으로 본인이 만족하는 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이야기하는 우화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만을 놓고 봤을 때, 인물들은 저마다 어떤 결핍과 상처를 안고 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어떤 목표를 향하거나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한다.
누군가는 도시쥐를, 누군가는 시골쥐를 지향하지만, 이들 모두는 결국 비슷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비워진 부분을 채우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시골쥐와 도시쥐를 이야기하는 인물들이 과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행복을 찾을 수 있을지 보고 싶어진다.
'극장판 체인소 맨'은 남성층 타깃으로 하는 듯 성적 코드와 여성을 향한 판타지가 있다. 또 일부 폭력적인 장면들은 15세와 청불을 아슬하게 넘나든다. 아쉬운 지점들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요네즈 켄시의 음악과 그 음악에 맞춘 시퀀스, 드라마와 액션을 오가는 분위기는 확실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체인소 맨'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과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원작을 얼마나 충실히 반영하고 또 어떻게 '극장'이라는 플랫폼에 맞춰 새로움을 추가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
100분 상영, 9월 24일 개봉, 쿠키 있음,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