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은 사명, 교육은 사랑…장금희 권사의 신앙 고백

<로드인터뷰_사람꽃>위미교회 장금희 권사
4대째 이어진 신앙, 교회 마당에서 시작된 믿음의 뿌리
40년 교직생활, 한 영혼을 사랑으로 품었던 교육 여정
은퇴 후에도 기도와 봉사로 섬기는 삶 살고파

장금희 권사.
■ 방송 : CBS 라디오 <로드인터뷰_사람꽃>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 방송일시 : 2025년 9월 27일(토) 오후 5시 30분
■ 대담자  : 위미교회 장금희 권사

◆ 김영미> 교직을 마무리하고 황조근정 훈장을 받으셨습니다.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 장금희>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셨구나'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아무 사고 없이 40년 교직을 마무리하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송별회 자리에서 제가 찬송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를 부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했는데 제 삶이 곧 그 노래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 김영미> 신앙은 어떻게 시작됐습니까.

◇ 장금희> 저는 4대째 신앙을 이어온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고조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믿음이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죠. 어릴 적 제 놀이터는 늘 교회 마당이었습니다.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전도사님이 불러 성경 속 인물들을 들려주시곤 했는데 그 시간이 제게는 가장 즐겁고 기다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이야기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지금의 신앙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 김영미> 위미교회와의 인연은 어떻게 이어지게 됐나요.

◇ 장금희> 제주에 내려와 처음에는 남원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섬기던 위미교회로 자연스럽게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보다 앞서 교사대학 시절에 위미교회 장로님, 곧 제 시아버님이 제 수업을 직접 보러 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우연처럼 지나갔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미 하나님께서 제 발걸음을 위미교회로 인도하고 계셨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 김영미> 권사님께서 아내로, 또 권사로 살아오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마음가짐은 어떤 걸까요.

◇ 장금희> 제 마음속에 늘 있었던 것은 '감사와 기쁨으로 맡은 일을 감당하자'는 다짐이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아동부 교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왔는데 출산으로 잠시 쉬었던 때를 제외하면 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헌신해 왔습니다. 또 찬양을 사랑해서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찬양대에서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내로서, 권사로서, 그리고 교사로서 맡겨주신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려 했고, 매주 권사회 기도회에도 빠지지 않으려 힘쓰며 가정과 교회, 신앙이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여름성경학교 때 레크레이션 지도 장면. 장금희 권사 제공.

◆ 김영미> 교직자로서 붙들었던 교육 철학이 있다면요.

◇ 장금희> 사실 처음에는 큰 철학이 있어서 교직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부족하고 서툴러서 실수도 많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 마음에 새겨진 것은 단 하나, '모든 아이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가르치려 애썼습니다. 물론 제 욕심 때문에 아이들을 힘들게 했던 일도 있고, 돌아보면 미안한 기억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지나면서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조금씩 배워갔고, 후배 교사들에게도 학생들을 사랑으로 대하라고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랫말처럼 교육도 사랑을 익혀가는 길이라 믿습니다.

◆ 김영미> 신앙이 교직 생활에 구체적으로 어떤 힘이 됐습니까.

◇ 장금희> 승진을 앞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저에겐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길을 열어주시고, 아니라면 내려놓겠습니다'라고 새벽마다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 앞길을 인도하셨고, 기적처럼 관리자의 길이 열렸습니다. 교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제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했고, 그 과정에서 동료 교사들도 "교장 선생님, 이 일도 기도하셨죠?"라고 말할 만큼 기도가 제 사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또 동료들과의 기도모임을 통해 학교와 학생들을 함께 품었고, 코로나 시기에도 온라인으로 모임을 이어가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습니다.

◆ 김영미> 가장 보람된 순간을 꼽으라면 언제일까요.

◇ 장금희> 제가 근무하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계획서를 내면 자율동아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기독 동아리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큰 은혜였습니다. 야간도서관이 있는 날이면 전교생 대부분이 학교에 남아 있었는데 그때 교회와 연결해 간식과 말씀, 기도로 학생들을 섬겼습니다. 3분의 2가 넘는 학생들이 자리에 함께하며 기쁨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교육의 열매구나' 하는 벅찬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 교직 생활에서 가장 큰 기쁨의 순간이었습니다.

◆ 김영미>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은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 장금희> 막내 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겪을 때가 있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께 작정기도를 시작했는데, '감사하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눈물이 날 때도 감사로 기도했고, 결국 아들은 전학 후 달라졌습니다. 저 또한 그 과정을 통해 믿음이 한층 자라났고, 학부모들을 대하는 마음까지 새로워졌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은 반드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 김영미> 특별히 기억나는 제자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 장금희> 초임 시절 만난 '엄동매'라는 제자가 있습니다. 글을 잘 쓰던 아이였는데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점점 글이 부정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다시 밝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긍정적인 시선을 심어주려 애썼습니다. 졸업할 때 제게 "긍정적인 마음을 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는 편지를 남겼는데 그 순간이 제 교직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교육자선교회 제주지방회 월례회 모습. 장금희 권사 제공.

◆ 김영미> 한국교육자선교회 활동도 하고 있는 걸로 압니다.

◇ 장금희> 한국교육자선교회 제주지방회에서는 매월 예배와 기도로 학원선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는 대면 모임이 어려워 온라인 전도폭발훈련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제주에서도 꾸준히 훈련자가 세워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매 기수마다 제주 교사들이 참여하고 있고, 매주 한 명씩 복음을 전하는 열매가 맺어지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들이 함께 기도하고 전도에 헌신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깊이 느낍니다.

◆ 김영미> 은퇴 이후 어떤 삶을 꿈꾸고 있나요.

◇ 장금희> 현직에 있을 때는 늘 바쁘게 지내느라 깊이 있는 기도를 충분히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 앞에 더 넓고 깊게 기도하며 묵상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또 그동안 직장에 매여 봉사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했던 아쉬움도 있는데 은퇴 이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싶습니다.

◆ 김영미> 권사님의 삶을 꽃에 비유한다면 어떤 꽃일까요.

◇ 장금희> 저는 매화꽃이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을 지나 앙상한 가지에 가장 먼저 꽃을 피워 봄을 알리듯 매화는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을 전해 줍니다. 저의 삶도 누군가에게 그런 희망의 신호가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 김영미> 마지막으로 함께 나누고 싶은 기도 제목이 있을까요.

◇ 장금희> 무엇보다 교육과정 속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내용들이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또 교사와 학생, 학부모 사이의 신뢰가 회복되어 학교가 건강해지고, 많은 상처가 치유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 있는 기독교 교사들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곧 사명의 자리임을 깨닫고, 믿음으로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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