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서귀포시 최초의 극장인 관광극장. 60여 년 세월 시민들에게 사랑받은 건물의 일부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졌다. 행정의 성급한 정책 결정으로 철거작업이 이뤄져서다. 현재 시민사회 반발로 공사는 잠정 중단됐지만, 숱하게 사라져버린 제주 근대건축물의 전철을 똑같이 밟고 있다.
섣부른 행정에 허물어진 시민들의 추억
서귀포시 서귀동에 있는 관광극장은 1963년 제주 산남지역 최초의 영화관으로 문을 열었다. 연면적 825㎡에 관람석과 영사실로 이뤄진 2층짜리 주 건물, 매표소와 사무실로 사용된 부속 건물로 이뤄진 구조다. 수십 년간 문화예술 여건이 열악한 서귀포시에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석축 벽체는 콘크리트를 줄 모양으로 길게 이은 '줄 구조'에다 한 겹으로 쌓은 '홑담' 형태로 독특한 건축양식을 갖고 있다. 오래된 외장타일과 도장 마감 위를 일부 덮어버린 넝쿨식물은 시간의 흔적을 보여준다. 극장 안에서 빌딩 모습을 보고 있으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1999년 폐업 이후 15년간 활용방안을 찾지 못하다가 2013년 서귀포시가 건물주와 무상 임차계약을 맺은 뒤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며 다시 활기를 찾았다. 이후 서귀포시는 2023년 건물과 부지를 매입했고, 지난달 20일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를 하다 시민사회 반발로 중단했다.
하루 사이 극장 관람석 주변 벽면 일부가 철거된 뒤였다. 서귀포시는 바로 옆 이중섭 미술관 신축공사 과정에서 벽면 붕괴 우려가 있어 주민 의견 수렴을 거쳐 철거를 시작했다지만, 보존 방안에 대해 건축계 등 폭넓게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은 채 서귀포시민의 오랜 추억을 허물어버렸다.
특히 '보수와 보강이 가능하다'는 관광극장 관리 방안 정밀안전진단 용역 보고서 내용이 나왔는데도 이를 무시했고, 관광극장 파괴에 따른 공유재산심의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비극 되풀이 되지 않도록…"보존" 목소리
서귀포관광극장과 같은 운명은 이뿐만이 아니다. 1959년 지어진 '옛 제주시청사'는 제주시가 용역을 통해 보존계획을 세워놓고도 지난 2012년 12월 건물을 철거했다. 특히 건물이 남아 있을 때 매입 시도조차 안 하다가 건물이 철거된 이후 20억여 원을 주고 사들여 주차장을 만들었다.제주의 대표적인 건축가인 김석윤씨가 현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스위스 태생의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스타일로 설계한 '옛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 제주지원' 역시 같은 운명을 맞았다. 특히 행정은 철거 전 면피성 주민 설명회에 문화재 가치 평가도 하지 않았다.
르 코르뷔지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고(故) 김중업 건축가의 혼이 담긴 '옛 제주대학교 본관'은 남아 있다면 유명 관광지로 각광받았겠지만, 허물어지고 없다. 한국 건축계가 보존운동을 벌였지만, 제주대가 활용가치가 없다며 철거한 것. 제주대는 뒤늦게 최근 다시 '부활' 작업에 나선다.
섣부른 철거로 제주의 현대사와 문화가 서린 건물이 사라져버리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현재 일부 남아 있는 서귀포관광극장을 보존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음은 2021년 '제주다운 건축상'을 받은 관광극장 심사평이다. '오래된 외장타일과 일부 덮어버린 넝쿨식물은 건축물이 지내온 시간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2층에서 외벽 너머로 고층빌딩 모습이 보인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다층적 시간의 층위를 구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