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지난 9월 새만금 신공항 기본계획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새만금 국제공항이라는 하나의 국책사업에 제동을 건 것을 넘어, 지역의 하늘길을 새로 그리려던 여러 신공항 계획에 경고등을 켰다.
재판부는 "소중한 인간의 생명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고 보일 뿐"이라고 못 박으며, "(국토교통부가) '항공 안전과 환경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려 객관성과 합리성이 결여됐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의 법리는 이제 새만금의 울타리를 넘어, 유사한 위험성을 안고 있는 제주, 가덕도, 대구경북(TK) 신공항을 겨누고 있다.
시험대에 오를 '제2 제주 신공항'
새만금 판결의 충격파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게 미칠 곳은 단연 제주 신공항이다. 제주 제2공항의 계획 부지 인근에는 화북-성산 해안, 하도, 성산, 성산-남원 해안 등 4곳의 철새 도래지가 있다.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제주 제2공항의 TPDS(13㎞ 범위)는 최대 14.31회로 예측된다.
이는 기존 제주공항(약 1.71회)의 8.3배가 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또 김해공항(2.53회)의 5.6배, 인천공항(0.66회)의 21배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수치이며, 새만금 신공항(최대 45.92회) 다음으로 위험도가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새만금 공항의 위험도 분석(최대 TPDS 45.92회당 19~84년 간격으로 치명적 사고 발생)을 준용해 단순 추산하면, 이는 약 61년에서 270년에 한 번꼴로 치명적인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수준의 위험도다.
새만금 공항 판결에서 재판부가 "실효성이 담보되지 않은 막연한 저감 대책을 전제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한 논리는, 철새 도래지를 마주한 제주 제2공항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다.
'안전지대' 아닌 가덕도·TK 신공항
수치상 위험도가 앞선 두 공항보다 낮다는 이유로 가덕도와 대구경북 신공항이 안심할 상황은 결코 아니다.가덕도 신공항의 예상 TPDS는 최대 10.09회로 기존 김해공항(2.53회)의 4배에 달한다.
무엇보다 국내 최대 철새 도래지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낙동강 하구'와 물리적·생태적으로 인접해 있다는 근본적인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새만금 재판부가 실효성 없는 사후 관리 계획을 일축한 만큼, 낙동강 하구라는 '아킬레스건'은 가덕도 신공항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대구경북 신공항은 절차적 정당성 측면에서 더 큰 문제를 노출한다. 다른 공항 평가서와 달리, 조류 충돌 위험을 정량적 수치(TPDS)로 제시하지 않고 정성적 평가로 갈음했다. 이는 그 자체로 부실한 환경영향평가의 방증일 수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구경북통합신공항(민간공항) 건설사업 전략환경영향평가서는 "조류 충돌 위험도에 대한 정량적 예측 및 이를 통한 종합적인 수립대책은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수립하고, 이에 대한 시설 및 관리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작성됐다.
이러한 평가는 새만금 공항 재판부의 "입지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은 사업 초기 단계인 '전략환경영향평가'의 핵심 역할이며, 이 단계가 지나면 사실상 입지 변경이 어렵다"는 지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새 떼가 활주로를 수시로 가로지를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항공 안전에 치명적이다. 특히 대구경북 신공항 부지가 겨울 철새(기러기류 등)의 '주요 이동 경로'를 관통하고, 인근 해평습지를 오가는 길목이라는 점은 예측된 숫자보다 더 심각한 '실질적 위험'으로 간주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