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종호> 후덥지근한 명동 거리보단 시원한 실내 쇼핑몰이 여름철 핫플레이스가 됐습니다. 무더위가 바꿔놓은 상권 판도. 내 집 선택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부동산 시장에서 기후위기 변수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겁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에게 자세한 말씀 들어보겠습니다. 위원님 안녕하세요?
◇ 박원갑> 네. 안녕하십니까?
◆ 홍종호> 얼마 전에 부동산 시장에서 앞으로 기후 문제가 점점 더 중요해질 거라는 칼럼도 쓰셨고, 경고도 하셨는데요. 외국에서는 이런 일이 있다는 보도가 있고 경향도 나타나는데, 한국도 본격적으로 이런 상황에 들어갔다고 봐도 되는 걸까요?
◇ 박원갑> 그렇죠. 지난여름은 한마디로 용광로였습니다. 서울을 지금 서프리카라고 얘기하잖아요. 서울이 아프리카 됐다고.
◆ 홍종호> 부동산 시장에서 그런 표현을 쓰는군요.
◇ 박원갑> 그동안 부동산은 주로 인구, 가계부채, 경제성장률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제는 폭넓게 기후 위기까지도 같이 보고 판단해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한 지인은 올해 너무 더워서 내년에는 덜 더운 나라로 한 달 살기를 하겠다고 하는데, 이걸 보고 기후 유목민이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유튜브를 보시는 분들도 주변에서 올해, 특히 여름에 많은 일이 일어난 것을 보셨을 텐데요. 종전의 판도와는 송두리째 달라지는 일종의 서막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홍종호> 위원님 말씀하신 것을 예로 들자면, 미국 LA에서 큰 산불이 나서 추산에 따라 수백조 부동산 피해가 발생하고 집, 고가 주택이 다 타버린 일이죠. 또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경우 워낙 태풍이 많이 불고 해수면이 높아져서 그 지역 해변가의 거대하고 비싼 주택들의 값이 내려가고 있다는 보도를 보기도 했거든요. 말씀해 주신 이런 기후 문제가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 주택시장의 가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실제로 피해는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산사태도 났고 강남 쪽이 물바다가 되기도 하고 아파트에 물이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역별 부동산 시장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도 앞으로 가시화될 거라고 보십니까?
◇ 박원갑> 가격까지는 시간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충격이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아요. 그게 반복될 때 트라우마로 이어지면서 결국 거래량과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보는데요. 지금 해수면 쪽의 침수가 그렇게 본격화됐다고는 볼 수 없죠. 해운대에 한 번 파도가 쳐서 지하 주차장이 물에 잠겼다는 얘기가 있지만 그 집값 별로 안 내려갔거든요.
◆ 홍종호> 아직은 영향을 안 받죠.
◇ 박원갑> 물론 방파제를 쌓는 등 뭔가 인간이 대비를 할 겁니다. 다만 우리가 그에 대해서 고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저는 해수면 쪽보다 오히려 지금 당장의 문제는 산사태와 산불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 전 국토의 70%가 산이잖아요. 그리고 급경사 산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기후가 이제 사바나 기후처럼 바뀐다잖아요. 갑자기 비가 왔다가 또 가물었다가 한다는 거죠. 폭우하고 산불로 인해서 농경지가 훼손되고 집이나 펜션이 불타기도 하고요. 실제로 지난번에 동해안에 그런 일이 있었죠. 그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저는 우리나라가 아열대 기후화 되어가는 것이 정말 문제라고 봅니다. 농촌진흥청 조사를 보니까 지금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약 10% 정도가 아열대 기후예요. 그런데 얼마 안 남은 2050년에 55.9%, 거의 56%가 됩니다. 이렇게 아열대 기후로 접어들게 되면 당연히 작물 환경과 부동산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 홍종호> 그 얘기를 조금 자세하게 해 주시죠. 아열대 기후가 아무래도 남쪽에서부터 먼저 올라오지 않겠습니까? 날씨가 더워지고 아열대 기후가 된다고 했을 때 부동산, 특히 주택 쪽에 미칠 구체적인 영향은 어떤 게 있을까요?
◇ 박원갑> 일단 주거용으로 본다면 산촌이나 바닷가가 지금은 편안함, 웰빙 개념으로 생각되잖아요. 그런데 기후 재난의 빈도수가 많아지면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죠.
◆ 홍종호> 비가 너무 많이 온다든지 하는 거겠죠.
◇ 박원갑> ≪도시의 승리≫라는 책도 있잖아요. 오히려 고밀도 도시가 안전지대까지는 아니겠지만 상대적으로 위해가 덜한 지역으로 주목을 받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 홍종호> 산간 지역이나 해안 지역보다는 그래도 대도시 지역이 상대적으로 기후 피해에 적응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시는군요.
◇ 박원갑> 일단 방재 시스템이 잘 돼 있으니까요. 가령 고층 아파트에 살면 홍수가 나도 지하 주차장이 차 침수되는 것 외에는 큰 충격이 없지 않습니까? 인구가 줄면 도시가 수축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도심 쏠림 현상이 심해질 거라고 보통 예상했거든요. 일본도 그렇다는 걸 잘 알고 계실 텐데요. 저는 기후 문제를 인구 구조 외에도 공간 이용에 대한 패턴들이 바뀔 수 있는 하나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항상 예의주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홍종호> 박사님께서 부동산 시장을 오랫동안 봐오셨으니까, 그동안의 관찰에 따라 서울에 기후 피해가 나서 주거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 한 두 가지의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으면 말씀해 주시죠.
◇ 박원갑> 지난번 우면산 산사태죠. 비가 와서 흙더미가 아파트를 덮친 그런 케이스인데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거고요. 그 외엔 강남 일대가 침수된 것 정도죠. 그런데 서울 외 지역에서는 생각보다 그런 일이 많았죠. 가령 펜션이 산사태로 무너져서 안타까운 인명 손실이 있었고요.
◆ 홍종호> 과거 포항에도 태풍이 왔을 때 지하 주차장에 물이 들어가서 가족들이 피해를 보았죠.
◇ 박원갑> 그러니까 예측 불허의 돌발 재난이 많아지는 게 기후의 특성인 것 같아요. 그러면 아무래도 자연에 더 노출될수록 지자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그에 따른 준비를 더 많이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 홍종호> 저도 재작년에 쓴 책에서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를 썼어요. 기후 문제로 사람들의 거주 여건이 달라져서 부동산의 가치, 가격도 그에 따라 연쇄 이동이 생겨나는 것을 설명했는데요. 실제로 현재 주택에 거주하는 국민이나 주택을 구매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앞으로 어느 지역에 살아야 할지, 어느 주택을 구매해야 할지를 생각할 때 기후 문제를 신경 쓰는 경향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후를 변수로 하는 행태들이 관찰됩니까? 아니면 아직 거기까지는 안 갔습니까?
◇ 박원갑> 앞으로 기후 재난이 더 심각한 수위까지 올라가 일종의 임계점을 지난다면 충분히 그것이 핵심 요인이 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지금은 골짜기 주변에 집을 짓는다든지 하면 갑자기 흙탕물이 쏟아져서, 토사가 완전히 쑥대밭을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특히 조심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다음에 멀리 보면 해안가도 주의해야 하죠. 우리나라가 남해안하고 서해안하고 동해안에 둘러싸여 있잖아요.
◆ 홍종호> 삼면이 바다죠. 인천, 목포, 부산 다 바다에 있는 주요 도시들 아니에요.
◇ 박원갑> 그래서 지금 당장 문제는 아니고 대비를 하겠지만 어쨌든 그런 침수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기후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있잖아요. 둥지 내몰림이라고도 하죠. 기후로 인해서 결국 이주하는 문제인데요. 원래는 마이애미 해안가에 부자들이 살았잖아요. 요트를 타거나 해수욕하기도 좋고 아침에 일어나면 바닷가가 멋있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침수가 되니까 부자들이 구릉지대로 올라오고 구릉지대에 살았던 저소득층들이 아래로 내려가는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죠. 이번에 경남 산청의 한 마을이 토사로 덮이면서 이주가 일어났죠. 저는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일어나는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홍종호> 하나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겠네요.
◇ 박원갑> 예.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 홍종호> 그래요. 앞으로 그날이 올 것으로 예상되고 그 시점이 중요할 텐데요. 시청자들을 위해서 이런 시대에 좋은 부동산 입지를 얘기해 주실 수 있습니까?
◇ 박원갑> 아무래도 안전한 주거 공간, 즉 자연재해로부터 위협을 덜 받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어쨌든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게 안전이라는 거예요.
◆ 홍종호> 그럼 서울에선 지대가 낮은 쪽이 문제겠네요.
◇ 박원갑> 그렇죠. 오히려 그런 얘기도 해요. 강남은 일반적으로 저지대잖아요. 주로 유수지를 메워서 아파트를 세웠는데 강북은 어때요? 전부 다 구릉지대잖아요.
◆ 홍종호> 산도 많고.
◇ 박원갑> 무조건 하와이나 마이애미처럼 그대로 도입시키는 것도 단순 도식화의 함정이죠. 모든 사회 현상이나 자연 현상들이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무관심하다가 그다음에 이슈가 되면 관심을 두고 계속 심각한 상황이 되면 주거지 패턴을 송두리째 바꾸는 큰 변화가 일어나죠. 어쨌든 아직은 너무 겁먹을 필요가 없지만 고려하자는 말씀이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명당 개념도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홍종호> 궁금하네요. 말씀해 주시죠.
◇ 박원갑> 옛날에 배산임수가 명당, 특히 양택풍수의 가장 기본이잖아요. 그런데 그게 잘못하면 산불이나 산사태의 취약 지역이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경관이 좋은지 보기보다는 주변 환경을 충분히 보면서 자연재해가 생기지 않는가 하는 측면을 같이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아파트로 본다면 이런 생각도 들어요. 겨울보다 여름이 문제잖아요. 우리나라는 겨울에는 난방이 잘 돼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는데 여름엔 에어컨이 있어도 너무 덥잖아요. 그동안에는 서향하고 동향이 비등했거든요. 그런데 여름이 특히 오후에 더우니까 서향보다 동향이 더 입지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다음에 저층보다 고층이죠.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 시원해지는 특성이 있더라고요. 제가 온도를 한번 재봤습니다. 2층하고 22층을 비교해 보니까 온도가 0.8도 정도 낮아지더라고요. 고층으로 갈수록 낮아집니다.
물론 거주자의 건강 같은 것을 다 고려해야 하지만 단순하게 에어컨이 없이 그냥 더위에 노출돼 있다, 맞바람만 세고 선풍기만 쐬고 산다는 전제하에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아직까지 본격화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기후 재난에 맞춰 안전하고 시원하고 너무 춥지 않고 이런 곳이 주거지로서 선택받을 가능성이 크고 부가가치도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홍종호> 위원님 말씀하신 걸 들으면서 응용을 해보면, 아파트의 어느 층에 주거지가 있느냐에 따라서 관리비에 나오는 전기요금도 달라질 수 있겠네요. 예를 들어서 높은 데면 상대적으로 싸고 밑에 있으면 더 많이 내야 하니까요.
◇ 박원갑> 지금은 그렇지 않죠. 엘리베이터도 2층 사는 분들도 거의 이용은 안 하지만 똑같이 내죠.
◆ 홍종호> 내 아파트가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혹은 내가 사는 곳이 어느 층, 어느 방향이냐에 따라서 전기요금이 달라진다면 이런 것도 앞으로 부동산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주는 때가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습니까?
◇ 박원갑> 너무 세게 얘기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무 앞서가신 것 같은데 그 정도는 아니고요. 다만 쾌적한 주거 공간을 찾는 게 하나의 메인 트렌드가 되면서 아파트 선택의 새 기준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한국 리서치 여론조사 사업본부 조사에서 주거지 선택을 할 때 공원이나 산책로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보니 한 78% 정도 됐습니다.
◆ 홍종호> 그렇게 높아요?
◇ 박원갑> 네. 숲세권이라고 하죠.
◆ 홍종호> 저희가 과거에 방송에서 주거지 근처 녹지 공간에 관해 다뤘어요. 녹지 공간이라는 게 산도 있지만 아파트 주변에 심는 나무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것만 있어도 한여름에 그 주변의 평균 온도가 확 내려간답니다. 산이 그런 역할을 한대요.
◇ 박원갑> 열섬현상을 완화해 주는 측면이 있죠.
◆ 홍종호> 너무 더워지면 그것도 앞으로는 아파트 구매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되겠네요.
◇ 박원갑> 아까 제가 공원이나 산책로가 주거지 선택의 중요한 요소라고 답변한 비율이 78%라고 말씀을 드렸죠. 교육 환경이 60%예요.
◆ 홍종호> 그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거군요.
◇ 박원갑> 아무래도 집을 고를 때 특히 남성들이 주변 환경, 즉 숲세권이나 산세권을 많이 따집니다. 아파트 공간은 답답하니까요. 그래서 이런 것들도 주거지 선택에서 하나의 핵심 요소로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교수님이 자꾸 주거용을 얘기하셨지만 오히려 지금 당장의 문제는 상업용 부동산입니다.
◆ 홍종호> 아 그런가요?
◇ 박원갑> 아까 서두에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지하 쇼핑몰이 핫플레이스로 뜨는데, 그게 당장 피부로 와닿는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한여름에 뜨거워서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해요. 유동 인구 자체가 줄고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의 발길은 시원한 실내로 향하기 마련이죠. 지하 상권은 요새 냉방이 잘 되잖아요. 그리고 대형 할인점, 대형 몰 같은 경우에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번에 더울 때 잠실 롯데몰과 여의도 IFC가 MZ세대들의 성지가 됐잖아요. 과거에는 지하 공간이 아무래도 습도도 높고 그렇게 깨끗하지도 않고 남의 집에 가는 것처럼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거기에 약간 거부감을 가졌습니다.
◆ 홍종호> 그렇군요.
◇ 박원갑> 그런데 IFC몰이 큰 성공을 거두고 나서부터 젊은이들이 그쪽으로 가서 영화도 보고 음식도 먹고 차도 먹고 서점도 가는 패턴이 나타났어요. 최근 2~3년 동안 여름이 너무 더우면서 그런 지하 공간으로 쇼핑을 가고 쉬러 가는 문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 홍종호> 저는 지하 공간에 디스플레이를 잘해놓고 볼거리가 많고 살거리도 있어서 간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니군요. 오히려 지하 공간이 쾌적하고 한여름에 시원하다는 것이 그곳을 많이 가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시는 거군요.
◇ 박원갑> 이걸 반대로 보면 지상 상권이 소멸하니 몰락하니 위축되니 하는 말들과 연결되는 거잖아요. 어차피 사람은 한정돼 있단 말이에요. 상권은 제로섬 게임이에요. 한쪽으로 가면 한쪽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최근 두드러진 것이 스트리트 몰이라고 약간 외국풍으로 만들어 놓은 지상 상권이죠. 그런 곳들이 일부 핫플레이스 빼고는 여름에 완전히 약해졌습니다. 더운데 사람이 어떻게 다녀요.
◆ 홍종호> 그런 곳이 서울 곳곳에서 관찰이 된단 말씀이죠?
◇ 박원갑> 경기도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지금 많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죠. 지상 상권이 그동안 상권을 주도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지하 상권하고 서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러면 지상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은 더 경각심을 가지셔야죠. 1년에 덥고 추워서 밖에 나가기 애매한 날이 절반은 되지 않아요? 그러면 고객이 안 온다는 건데 훨씬 더 마케팅을 세게 하고 음식도 여러 가지로 개발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어요. 옛날에는 독무대였단 말이에요.
◆ 홍종호> 그게 관찰이 되는군요.
◇ 박원갑> 지금 잘 보시면 여의도도 그렇습니다. 요새 대형 빌딩을 지으면 기본적으로 지하에 맛집을 집어넣습니다. 임대료를 받을 목적도 있긴 하지만 1층에 커피숍이 들어가는 것은 일반화됐고요. 그래서 요새 이런 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상가 공급이 많다고 그러잖아요. 공급이 많은 건 맞는데 문제는 안 보이는 상가도 상당히 많다는 거예요. 지하상가들이죠. 그러다 보니까 지금 지상 상권이 옛날 같지가 않습니다.
소비 침체, 소비의 온라인화, 그다음에 유동 인구가 주는 것도 문제예요. 고령화가 진행되면 유동 인구가 줄거든요. 그런 여러 가지 요인 외에 한여름 무더위도 있죠. 무더위에 쇼핑하러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잖아요. 과거에는 대로변 모퉁이에 상가를 갖고 있으면 3대가 먹고 산다는 말이 있었어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죠. 지금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임대료가 높다는 게 원인이지만 소비 패턴뿐만 아니라 기후 요인도 일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주거용보다 오히려 상업용을 더 예의주시해서 보아야 한다는 거죠.
◆ 홍종호> 상당히 흥미롭고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말씀하신 대로 기후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또 다른 걱정이 인구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인구 소멸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인구가 감소하면서 부동산 가격이 낮아질 거라는 전망도 있는데 이 점은 어떻게 보십니까? 지역별로 차이가 크게 나겠죠?
◇ 박원갑> 인구 소멸 문제 이야기가 나온 지가 20년이 넘었어요. 그런데 왜 서울의 아파트값은 자꾸 오르는 걸까요. 그러니까 단일 변수만 가지고 너무 확대 포장하면 착시 현상이 생깁니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잘 아시겠지만, 인구는 먼 미래를 보는 망원경이거든요. 망원경은 망원경으로 써야지 이걸 돋보기로 쓰면 잘 안 맞죠. 우리나라에서 생산 가능 인구는 계속해서 줄고 있고 2021년부터 내국인 중심으로도 인구가 줄어들잖아요. 그런데 최근에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바람에 오히려 인구가 늘어났어요. 인구도 고려해야 하지만 시장을 볼 때는 장기와 단기의 문제를 잘 절충해서 균형점을 잡아야 해요. 지금은 인구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주택시장에 공급이 안 되는 게 더 문제죠.
◆ 홍종호> 그래요.
◇ 박원갑> 오히려 지금은 아파트만 사는 세상이 온 거예요. 저는 이것을 아파트 편식 사회라고 이야기합니다. 아파트 쪽으로 수요가 몰리는 현상에도 기후 문제가 상당히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
◆ 홍종호> 좀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으니까요.
◇ 박원갑> 보통 사람들이 대단지를 많이 찾잖아요. 그 안에서 커피도 마시고 헬스도 하고 찜질방도 가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어요. 이걸 보고 홈코노미(Homeconomy)라고 얘기를 해요. 제가 봤을 때 지금의 대단지 아파트들은 마치 유럽의 성처럼 콘크리트 성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우니까 밖에 안 나가고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흐름이 지금 MZ세대를 중심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홍종호> 방금 말씀하신 부분이 기후 관점에서 스마트한 부동산 투자법이군요. 그렇다면 너무 더우니까 밖에 나가지 않고 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를 선호하는 현상이 젊은 층에서 앞으로 더 강화될까요?
◇ 박원갑> 네. 그런 흐름은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그것이 자신에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가치 판단은 본인이 하셔야죠. 왜냐하면 주거지 선택이라는 것은 자기 행복을 위해서 하는 거니까요. 본인의 경제적 사정, 은퇴, 직장 생활 같은 여러 가지 조건에 맞게끔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런 트렌드가 나타났다고 해서 무조건 쫓아가야 한다고 당위성을 얘기하는 건 아니에요. 트렌드는 반드시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항상 집이나 상가를 구할 때는 변화하는 기후 지형도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제 시작입니다. 어쨌든 대도시는 아직 큰 자연재해로부터 위협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만, 해안가나 급경사에 건물을 짓는 것은 진짜 조심해야 하고요.
◆ 홍종호> 아파트 단지 뒤에 큰 산이 있으면 이제는 조금 걱정스러워하겠네요.
◇ 박원갑> 우리나라 산은 겉으로는 굉장히 우거져 보여서 산사태가 날 걸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산도 바위산, 흙산으로 나뉘거든요. 흙산이 잘 흘러내리거든요. 그걸 골산(骨山)이 아니라 육산(肉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쨌든 만약에 자연재해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안전성을 위해 반드시 현장 답사를 해보셔야 합니다. 그동안 자연이 우리에게 포근한 존재였는데 이제는 약간 흉포한 존재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자연은 야누스 얼굴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점을 고려해서 항상 기후 재난으로부터 스스로 내 삶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지대 중심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설사 자연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 홍종호> 자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이었습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박원갑> 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