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부정하는 백악관, 재생에너지 질주하는 시장…두 얼굴의 미국[기후로운 경제생활]

에너지부에 '기후·재생' 금지어 지정한 美 트럼프 정부
프래킹 기업 출신 장관, 태양광은 "전력망의 기생충"
트럼프 풍력 중단 명령에도 오스테드 주가 회복
美 신규 전력의 96%가 재생에너지
금융권, 몰래 재생에너지 투자 지속, '그린허싱' 현상 생겨


◆ 홍종호> 다음 이슈 살펴볼까요?

◇ 최서윤> 네. 에너지 전환, 트럼프는 막아도 시장은 간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 백래시 기세가 상당합니다. 연설 보셨죠? '기후 변화는 사기극'이라는 말을 했고요. 거의 한 시간에 걸쳐서 유럽 동맹국들이 이민과 재생에너지로 황폐해지고 있다고 비판했어요.

◆ 홍종호> 거의 한 시간을 쓰는 건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자기가 막 쓴 거 아니에요?

◇ 최서윤> 도대체 왜 이러는지요. 뉴욕타임스에서 트럼프의 이민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격은 증거가 없고 기후 변화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을 무시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어요. 영국 BBC도 이번 연설이 트럼피즘, 그 자체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 홍종호> 아무리 세계 최강 대국이라지만 전 세계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너무 막무가내식으로 군림하는 태도를 보인 거예요. 내용도 참 그렇지만 그걸 떠나서 기후변화가 사기라는 식의 표현을 스스럼없이 쓰잖아요. 이런 태도 자체가 많은 국가의 정상들에게 큰 실망과 거부감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 최서윤> 그렇죠. 리더 국가이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건가 싶어요.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도 이런 방향성을 그대로 가져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 연설이 있고 사흘 뒤에 폴리티코에서 인상적인 보도가 하나 나왔는데요. 미국 에너지부 내에서 사용해선 안 되는 금지어가 생겼다고 합니다. 에너지부 안에 에너지 효율화 및 재생에너지 전담 사무소인 EERE 오피스라는 곳이 있는데요. 여기서 피해야 할 단어 목록에 기후변화, 녹색, 탈탄소, 이런 걸 쓰면 안 된다고 했대요.

◆ 홍종호> 도대체 이 금지어의 정확한 의미가 뭡니까? 대화 중에 쓰면 안 된다는 건가요? 글이나 문서에 쓰는 게 안 되는 겁니까?

◇ 최서윤> 문서에서는 당연히 쓰면 안 되지 않을까요? 구성원들한테 EERE 오피스의 대외업무 과장 대행 명의로 이메일 공문이 발송됐는데요. 앞으로 피해야 할 단어를 알려주면서 현 행정부의 관점과 우선순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대요. 어떤 말을 하지 말라고 했냐면요. 에너지 전환, 지속 가능성, 청정에너지, 더러운 에너지, 탄소 발자국, 세금 감면, 세액 공제, 보조금, 이런 단어들도 쓰지 말라고 했대요. 이 부서의 이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에너지 효율화 및 재생에너지 전담 오피스예요.

◆ 홍종호>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말로는 표현하지는 말라는 건가요. 도저히 상상이 안 됩니다.

◇ 최서윤> 네. 원래 에너지 관련 신기술에 대한 정부의 최대 투자자로서 기능하던 오피스인데 이런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하면서, 부서의 역할이 이상해진 측면이 있습니다.

◆ 홍종호> 저는 이런 걸 보면서 과거 중국의 분서갱유가 생각나네요. 생각하지 말고 고민하지 말라면서 책을 태우고 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과연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싶고 충격적으로 느껴져요.

◇ 최서윤> 맞아요. 언어라는 것은 무언가를 개념화해서 갖고 있는 거니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요. 말을 쓰지 말라는 건 말씀하신 대로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거죠.

◆ 홍종호> 그런데 과연 이게 컨트롤이 될까 싶고 실제로 적용이 가능한 건지도 너무 의심스러워요. 이 부서에 있는 공무원들은 아마 인생에 엄청난 자괴감을 느끼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최서윤> 에너지부 장관인 크리스 라이트가 여기에 앞장서는 인물이에요. 예전에도 다뤘는데 프래킹 기업인 리버티 에너지의 CEO 출신이고 기후위기 부정론자입니다. 이분도 기조가 그대로예요. 얼마 전에 한 행사에서 태양광 패널이 전력망의 기생충이고 지구 전체를 다 덮는다고 해도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해요. 심지어 기후변화를 부정하려고 비주류 연구자들을 모아서 보고서를 쓰면서, 기후변화는 재앙이 아니라 도전이라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폴리티코가 이 주장을 검증하고 반박하는 기사들을 썼는데요. 굳이 이걸 소개하느라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홍종호> 최소한 제 관점에서는 지극히 퇴행적이라고 느껴지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와 상식을 벗어나는 모습들을 보면서요.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변화도 부정하고 재생에너지도 부정하며 이건 거짓이고 사기극이라는 표현을 썼잖아요. 그럼 정작 미국의 에너지 시장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 최서윤> 거기에 대해서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이 주제를 가져왔어요. 왜냐하면 트럼프 행정부에는 임기가 있는데, 시장에서는 지금 투자를 하면 트럼프 행정부의 임기 이후에 결과가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래서 시장은 이거를 굉장히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있었냐면요. 지난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로드아일랜드 쪽에 풍력 프로젝트인 레볼루션 윈드를 중단시키면서요. 이 사업에 참여하던 덴마크의 최대 해상풍력 기업인 오스테드 주가가 쭉 내려서 불안해하기도 했었는데 다시 살아난 일이 있었어요. 트럼프가 이 풍력 프로젝트를 중지시키겠다고 말했는데 결국 재개하기로 했거든요. 왜냐하면 중단 명령이 나고 나서 오스테드랑 로드아일랜드 주 정부에서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어요. 소송이 되게 긴데 법원에서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공사를 재개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래서 이 결정이 나오고 나서 오스테드 주가가 다시 오르면서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 홍종호> 판결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나요?

◇ 최서윤> 소송이 진행 중이니까요. 그런데 로드아일랜드 사업, 즉 레볼루션 윈드가 80% 진행된 상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단 명령을 내린 거라서 완공되지 못하면 오스테드가 되게 큰 피해를 입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우려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미국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이걸 중요하게 볼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 홍종호> 최근에 이코노미스트지에도 관련 기사가 있었어요. 기사 중에 정책과 시장 중에 누가 승자가 될 것인지 묻는 아주 흥미로운 제목이 있었어요. 재밌죠? 그러니까 트럼프 정부의 정책, 굳이 붙이자면 소멸 정책과 달리 시장의 흐름은 그렇지 않다고 해요. 태양광과 풍력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높다고 합니다. 과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전망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

◇ 최서윤> 네. 지금 재생에너지 업계에서 반신반의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미국이 안전한 투자처는 아닌 것 같다며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파이낸셜타임스가 추산을 했더니 트럼프 대통령이 재생에너지 산업을 규제해서 올해에 취소된 개발 사업 규모가 186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걸 보고 투자를 접자니 트럼프 행정부에도 재생에너지를 막아서 좋을 게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거예요.

◆ 홍종호> 그럼요.

◇ 최서윤> 왜냐하면 지금 산업계에서 AI를 가동해야 하고 전력 수요도 계속 늘고요. 지금 미국이 재생에너지 분야를 망가뜨리면 전력망 확충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해요. 이렇게 되면 중소 제조업체랑 가계에서 전기 요금의 부담을 다 떠안아야 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재생에너지의 설치량이 유의미하게 줄어들기 힘든 상황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나타나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말로는 재생에너지를 막겠다고 하고 있지만 작년에 미국 전력망에 추가된 전력 용량의 대부분이 태양광이었다고 해요. 신규 에너지의 무려 96%가 재생에너지였다고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임기 동안 미국에 건설되는 대부분의 신규 전력도 다 태양광 패널에 의존할 걸로 예상됩니다. 아이러니해요.

◆ 홍종호> 네. 맞습니다.


◇ 최서윤> 지금 화면에 그래프를 하나 띄워드리는데요. 연방 에너지 규제 기관, 즉 정부의 예상치예요. 올해 7월부터 2028년 6월까지 미국의 전력 생산에서 순증감량 예상치를 보여주는 건데요. 보시면 태양광이 가장 많고 풍력이 그 뒤를 이어요. 그리고 석탄이랑 석유는 줄어드는 걸로 나타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내 재생에너지는 계속 늘어나겠다는 거죠.

◆ 홍종호> 지금 최 기자님이 말씀하시는 통계를 보면서 결국 이코노미스트지의 기사가 말한 것처럼 정책은 반대로 가지만 이 거대한 시장의 흐름은 절대 막을 수 없다고 느껴져요. 왜냐하면 태양광은 빨리 설치할 수 있고 너무 싸다는 내용이 있어요. 너무 빠르고 너무 싸기 때문에 이걸 막을 수는 없다는 거죠. 실제 통계로도 올해 미국의 상반기 태양광 설치량이 12GW(기가와트)였는데 하반기에는 21GW로 더 늘어난다고 해요. 그러니까 트럼프가 한창 이런 얘기를 하지만 시장에서의 태양광 설치량은 올해 내에도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더 늘 정도로 계속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 최서윤> 정책이 시장을 이길 수 없다는 거죠.

◆ 홍종호> 저는 경제학자로서 그걸 믿어요. 아무리 정책이 반대로 가려고 해도 거대한 세계적인 시장의 흐름이 있잖아요. 미국은 워낙 시장 자체가 크고 미국 내 시장의 흐름 자체도 꺾을 수가 없다고 보는 거죠.

◇ 최서윤> 그리고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라고 부르는데 이 법률 이후로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인 IRA가 힘을 잃었다거나 재생에너지 분야 보조금이 축소될 거라는 평가가 있었는데요.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분석에서는 다른 얘기가 나오고 있어요. 이미 IRA 이전부터 재생에너지 분야는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했고 화석연료 대비 가격 경쟁력도 갖췄고요. 빠른 속도로 대규모로 도입되고 있는 걸로 나타났다는 분석을 내놨습니다.

최근에 이런 우려가 나오면서 대형 은행들이 정치적인 압력을 받아서 ESG 관련 프로젝트, 녹색금융 이런 데에서 돈을 빼고 있다는 보도들도 나오긴 했어요. 글래스고 탄소 중립 금융 연합에서 유럽 은행들까지 하나씩 탈퇴한다는 등의 우려가 나왔는데 세부적인 투자 내용을 보면 다르대요. 미국의 상위 6개 은행이 석유, 가스, 석탄 프로젝트의 자금을 올해 들어서 25%까지 줄였다고 하고요. 헤지펀드도 석유에 베팅하지 않고 태양광에 대한 공매도도 청산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겉으로 보여주는 거랑은 다르게 속으로 움직이는 거죠.

◆ 홍종호> 겉으로는 조용히 정중동 행보를 보이지만 안에서는 여전히 하고요. 왜냐하면 시장에서 그걸 요구하고 있고 사업이 일어나고 있으면 수익성이 생긴다고 판단할 테니까 당연히 금융이 따라오지 않겠어요?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 최서윤> 그러니까 녹색금융 투자 같은 거를 굉장히 조용하게 하고요. 재생에너지 투자도 안 하는 것처럼, 탈퇴할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로는 몰래 하고 있는 걸 요즘에 그린허싱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오히려 조용하게 투자를 늘리면서 몰래 실천하고 있는 거죠. 자세히 재무제표를 뜯어보고 투자 현황을 찾아보는 사람들은 하고 있다는 걸 아는데 겉으로는 절대 홍보하지 않고 있다고 해요. 이런 그린허싱 현상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동안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정치가 아니라 시장이 실시간으로 미래를 평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돈이 되는 곳으로 돈이 흘러가잖아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때문에 돈이 되지 않는, 좌초자산이 될 곳으로 돈을 흘려보낼 투자자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홍종호> 트럼프 대통령이 평균 이상의 지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변화를 부인하고 재생에너지를 없애려고 하고 있는데, 내년 이때쯤에는 풍력과 태양광으로 다 도배되고 있다는 시장의 통계를 미국 에너지부가 오벌 오피스에 보여주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 최서윤> 말을 바꾸기도 모호하니까 말로는 계속 지금처럼 하지만 속으로는 다 허용해 주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겠네요.

◆ 홍종호> 흥미롭게 지켜봐야 할 미국 시장이 아닐까 싶고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CBS 경제부 최서윤 기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최서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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