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이라는 말이 없던 조선 시대 사람이 본인이 이해한 대로 표현한 '가방이'는 tvN 토일드라마 '폭군의 셰프'가 낳은 대표적인 애칭이다. 오의식은 대본 리딩 당시 듣는 대로 반응하다가 '가방이'라는 애드리브를 했고, 이를 "작가님과 감독님이 감사하게도 대본화"해 준 덕에 이런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다. 사귀기 전 이성 간 호감을 느끼는 '썸'을 '쌈'에 비유해 '쌈 싸거라'라고 한 대사도 오의식의 애드리브였다. 하지만 오의식은 이미 잘 쓰인 대본이 있었기에 이런 아이디어를 더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는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폭군의 셰프' 임송재 역을 연기한 배우 오의식을 만났다. 오의식은 본인의 연기를 두고는 냉정하게 자평하면서도, 다른 배우들과 제작진의 능력과 노고를 언급하는 데는 아낌없이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유독 12부가 짧게 느껴졌다.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셔서 한 주라도, 14부작이든 16부작이든 조금만 더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시청자 입장에서 감사하고 행복한 동시에 아쉬움도 있다"라고 말했다.
일문일답 이어서.
1. '폭군의 셰프' 현장은 배우들이 내놓는 아이디어에 열려 있었다고 들었다. 본인이 보탠 아이디어로 장면을 더 잘 살린 것 같다 싶은 부분이 있었나.
진짜 사실 저희는 작가님이 써 주신 글에다가 감독님이 연출해 주신 그 장면에 숟가락만 얹은 셈이다. 첫 번째로는 작가님이 이미 너무 잘 써 주셨다. 상황 자체를 너무 재밌게 써 주셔서 저희의 그냥 요만한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더 이렇게 빛을 볼 수 있는 거고, 그렇지 않은 대본이었다면 아무리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낸다고 한들 되지 않았을 거다.
'가방이' 장면도 (임)윤아 배우가 '가방이요' 하길래, 이 단어 자체가 (임송재는) 처음 듣는 거기 때문에 '아, 가방이!' 이렇게 하는 거로 생각했다. 앞에서 '썸'이니 '쌈'이니 막 이러길래 그걸 듣고 있다가 '같이 쌈 싸 먹는 사이라면 친밀한 관계를 얘기하는 건가' 생각해서, 원래 대사는 '수라를 잘 준비하거라'였는데 '전하와 오늘도 잘 쌈 싸거라' 한 부분도 있다. (제가 한 부분은) 많이는 없다. 재밌고 좋았던 장면들은 진짜 작가, 감독님이 많이 만들어 주셨다.
작가님, 감독님께서 어떤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면 너무 넓은 마음으로 그걸 바로바로 수용해 주시기 때문에… 특히 장태유 감독님은 현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딱 열어주시고, 반면 또 과하면 냉철하게 딱 컷도 해 주신다. 가지 치기를 딱딱딱 해 주신다. 배우로서는 굉장히 안정감을 느낀다. 마음껏 펼치 수 있게 해 주시는데 아닌 건 또 아니라고 해주시니까 그래서 저한테는 굉장히 잘 맞았고, 같이 하는 작업이 되게 즐겁고 기대가 됐다.
2. 최종화 현대 신에서 임송재와 똑같은 얼굴을 한 스티브 임으로 나온다. 연지영의 음식을 타박할 때의 대사가 다시 등장하기도 했고. 현대 신을 언제 알았는지 궁금하다.
막바지에 알았다. 12화 대본이 나오기 직전에 말씀해 주셨다. (2화와) 상황도 대사도 비슷한데 제가 감독님한테 부탁드려서 대사 하나를 넣었다. 그 경기 감영에서 제가 연지영 막 끌려갈 때 '네 요리를 원망하거라' 한 게 있는데, 작가님이 (12화를) 똑같이 구성해 주셨으니까 이 대사까지도 똑같이 하면 어떨까요 해서 '네 요리를 원망해라!' 한 거다.
3. 11화에서 이헌을 위해 멋지게 죽었는데 12화에서 스티브 임으로 코믹하게 그려지는데 본인은 어떻게 봤나. 또, 연기에 만족했는지.
기꺼이 그런 역할도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항상 배우들은 자기 위주로 생각할 일이 많은데, 사실 감독님 작가님은 배우보다는 전체를 더 생각하신다. 아마 송재가 그 순간에 그런 역할을 해 줬을 때 또 이헌이 빛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 입맛에 맞게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감독님 작가님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잘 그려내는 물감이나 붓이 돼 주는 게 저는 좋은 배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걸 받았을 때 '이건 이랬으면 좋겠네'라고 하기보다는 이걸 어떻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한테 거부감 없이 잘 연기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편이다. 연기는 항상 만족을 잘 못 한다. 제 눈으로 볼 때 연기는 늘 부족하다. 그래도 뭐 열심히는 했지만.
4. 스티브 임의 옷차림도 소소한 화제였다. 특히 흰 바지를 보고 '킹받는다'라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스타일리스트, 헤어, 메이크업 등 저와 함께하는 개인 스태프들이 되게 다 오래됐다. 인연이 다 10년 이상이다. 그래서 그런 콘셉트를 잡을 때도 호흡이 잘 맞는다. 특별 출연 작품이었지만 '그놈은 흑염룡'에서 동방신기(TVXQ!)처럼 한다든지, 아니면 '메리 킬즈 피플'에서 탈색을 하고 여성스럽게 스타일링을 한 것도 같이 상의해서 한 건데, 다 같이 인물을 만들어내는 기분이다. (웃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어떻게 할지에 관해 거의 막 PPT처럼 만든다. 이런 의상 어떠냐 하며 보내주는데, 감독님이 원하시는 바도 있었다. 약간 고급스러워 보였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외국에서 온 것 같은 느낌? 장태유 감독님이 그런 걸 엄청 디테일하게 보시기 때문에 감독님께 몇 번의 컨펌(확인)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감독님이 '안경을 쓰면 어떨까요?' 해서 감독님 아이디어도 많이 들어갔다.
5. 극 중 임송재가 일편단심을 다한 왕 이헌 역의 이채민과 함께해 보니 어땠나.
이채민 배우는 앞으로가 정말 기대된다. 왜 그러냐면 잘생기고 연기를 잘하고 젊은데 성실하기까지 하다. 그럼 앞으로가 기대되지 않나? 촬영 끝난 후에 저랑 만나서 대화 나누는 자리가 있었는데, 촬영할 땐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진짜 단 한 번도. 근데 솔직히 조금은 부담되고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고 얘기하더라. 이제서야! 다 끝나버렸는데.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제가 뭐 평소에도 (이채민에게) 애늙은이 같다고 막 많이 놀렸는데 '아, 진짜 성숙한 면이 많은 친구구나' 느꼈고 한편으로 좀 미안하기도 했다. 그때 좀 더 힘이 되지 못했던 것 같아서. 내심 힘들 거란 생각은 했지만 표현을 안 하길래… (제가) 힘이 되는 말이나 행동을 더 많이 못 해줬던 거 같아서 선배로서 좀 미안하기도 했다.
이번에 서로 같이 노력을 많이 했다. 어쨌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니까 이헌과 임송재로 같이 연기하기 위해서 실제로 가까워지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진짜 많은 시간을 같이 함께 보내고 주로 계속 지방 촬영이다 보니까 숙소도 같은 곳으로 하려고 하고, 쉬는 날도 같이 만나서 항상 같이 밥 먹고. 자연스럽게 연기, 작품 얘기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실제로도 많이 가까워지고. 서로 '베프'(베스트 프렌드)라고 한다. 그런 게 화면에 고스란히 담긴다고 생각한다. 서로 작품과 배역을 위해 좋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한다.
6. 임윤아 칭찬도 많이 했더라. 미담도 많이 알리고.
채민 배우도 윤아 배우도 둘 다 너무 힘든 스케줄을 소화했는데 그 와중에 또 윤아 배우는 요리를 또 해야 되니까… 근데 진짜 윤아 배우야말로 힘든 내색을 안 했다. 계속 특유의 그 밝은 미소로 현장에서 모든 배우들 모든 스태프들과 잘 지내고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앞 인터뷰에서도 얘기했지만 가장 힘든 포지션이기 때문에 조금 배려받아도 될 법한데, 그런 배려들도 다 거절하더라. 자기 혼자만 배려받기를 싫어하더라. '같이 고생하고 있는데 같이 파이팅하시죠!'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진짜 너무너무 훌륭하고 고맙고, 어쨌든 제가 조금 더 선배이다 보니 너무너무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다. 윤아 배우도 마찬가지로 다음, 그다음 작품에서 타이틀롤로서의 행보가 기대된다. 임윤아 배우가 하는 현장은 다 행복한 현장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7. 임윤아, 이채민과 연기 호흡은 어땠나.
윤아씨랑은 '빅마우스'에서 한번 호흡을 맞춘 적이 있고 개인적으로도 계속 잘 지내와서 편하다. 호흡도 잘 맞고. ('가방이' 장면도) 서로 눈을 보고 연습을 하던 중에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윤아씨와 연기하는 날은 고민과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으로 가게 되고, 오늘은 또 어떤 장면을 재미있게 완성하게 될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게 하는 배우다.
이채민 배우랑은 '일타 스캔들'에서 같이 작품 하긴 했었는데 만날 일이 없었다. 저는 집에만 있었고 채민씨는 학교에만 있었고. (전작에서) 호흡을 맞출 일은 없었는데 이번에 만나보니까 느껴진다. 그동안 이 친구가 어떻게 준비를 해 왔는지가. 어떤 기회가 왔다고 해서 모두가 그걸 다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근데 지금 이헌을 만난 이채민이라는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은, 그동안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까.
최고의 장점은 성실함과 적극성. 작품을 위해서라면 정말 뭐든지 다 해낼 것 같은 그 기세가 있다. 그런 부분들이 참 너무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본인 또래의 관심사에도 지식이 많은데 제 또래, 저보다 훨씬 더 많은 선배님이 계셨는데도 폭넓은 관심사와 지식을 갖고 있어서 두루두루 잘 어울렸다.
8. 제산대군(최귀화)을 비롯해 중장년 배우들이 극의 중심을 잡으며 활약하기도 했다.
기회가 돼서 얘기를 하자면 '폭군의 셰프'에서 주목받은 주요 배역이 있지만 많은 선배님들이 나오신다. 보여주는 순간은 짧았지만 굉장히 중심을 탁 잡아주시고, 많지 않은 장면에도 어떤 분위기를 탁탁 만들어주셨다, 적재적소에. 자칫 잘못하면 가벼워질 수 있는 순간에 선배님들이 한두 장면만 딱 나와주셔도 그게 중심을 잡아주시는 거다.
촬영하기 힘든 여건과 상황 속에서도 정말 그간의 내공을 보여주시는 걸 보고 현장에서 많이 배웠다. 선배님들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잠깐의 순간에도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저도 어느 순간 호칭이 후배에서 선배로 많이 불리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데, 지금 제가 바라보는 선배님이 진짜 멋있다. 단 한 마디 대사를 하시더라도 그간 쌓아오신 선배님들의 연륜과 연기력, 눈빛 하나로 다 보여주시더라.
9. 작품이 잘될 거라고 기대했나. 시청률이 계속 올랐는데 가장 놀랐던 때가 언제인지.
이 정도로 과분한,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될 줄은 사실 몰랐다. 그냥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찍었고. 다른 현장도 마찬가지지만 정말 힘들고 어느 때보다 치열한 현장에서 시청자분들한테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똘똘 뭉쳐서 그 과정을 견뎌오고 촬영을 끝까지 열심히 했으니, 우리 노력이 헛되지 않게 시청자들한테 좀 힘이 되고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정말 강력한 바람은 있었다. 이렇게까지 진짜 좋아해 주시고 응원해 주실지 몰라서 정말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두 번째 방송에서 (시청률이) 갑자기 점프가 됐을 때가 15% 돌파했을 때보다 더 놀란 것 같다. 첫 방송 보시고 이렇게 하루 만에 많은 분들이 선택해 주셨다는 데 '우와!' 하며 올랐다. 그러고 나서 바로 이채민 배우한테 '채민아, 시청자분들이 되게 재밌게 봐주시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아침에 얘기를 나눴다. (웃음)
10. 곧 포상휴가를 가는데 기분이 어떤가.
포상휴가가 저한테 주는 의미는… 종영하고 많은 축하받고 좋은 반응을 받으며 스태프분들이 엄청 많이 생각난다. 왜냐하면 그 어떤 작품보다 진짜 스태프분들이 고생이 많이 한 작품이다. 배우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보상받는다. 오늘처럼 이렇게 인터뷰하는 것도 저는 축하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은 그런 보상을 계속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스태프분들은 그럴 기회가 많이 없으니까, 이 기쁨을 우리가 똑같이 이룬 거니 같이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스태프분들이 포상휴가를 갈 수 있다고 하니까 너무 좋다. 스태프분들한테 '여러분 정말 고생하셨고, ('폭군의 셰프'는) 여러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하고 주는 선물 같고, 그 스태프분들을 또다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