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하늘을 가르며 300마리가 넘는 왕새매 무리가 남쪽으로 이동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본격적인 가을철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대전환경운동연합 탐조모임은 최근 세종 이응교 일대와 대전 한밭수목원, 갑천 상공에서 왕새매(Butastur indicus) 대규모 이동 현상을 관찰했다고 14일 밝혔다.
환경연합에 따르면, 지난 8일 세종 지역에서 2개체가 관찰된 데 이어 10일에는 한밭수목원 상공에서 무려 305마리의 왕새매가 무리를 지어 남쪽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는 대전권에서 확인된 맹금류 이동 중 가장 큰 규모로, 중부 내륙권이 왕새매의 주요 이동 경로임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라고 환경연합은 설명했다.
왕새매는 매과의 중형 맹금류로, 여름철 동북아시아(한국·일본·중국 동북부·러시아 연해주 등)에서 번식하고 가을이면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는 대표적 철새다. 논습지나 하천 주변의 개활지를 선호하며 개구리, 곤충, 소형 포유류 등을 주로 먹는다. 이동기에는 수백 마리가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장관을 연출한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도시 중심에서 수백 마리의 왕새매가 이동하는 장면은 대전이 여전히 '생명의 도시'임을 증명하는 관찰이었다"고 말했다.
환경연합은 이번 관찰이 단순한 조류 기록을 넘어, 도시 생태계의 건강성과 생물 이동의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강조했다. 최근 대전 도심의 녹지축은 개발 압력으로 점차 끊기고 있으며, 갑천변과 월평공원, 한밭수목원 일대에서도 대규모 사업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철새 이동로뿐 아니라 도시 생태계 전체의 연속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환경연합은 대전·세종 지자체에 도심권 생태축 보전과 철새 이동 경로에 대한 정밀 모니터링 체계 구축을 촉구했다. 또 갑천, 대청호, 금강, 수목원 등 주요 생태축을 잇는 생태네트워크 보전 구상을 수립하고, 향후 개발계획 수립 시 조류 이동 영향평가를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