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조희대가 간과한 국민주권

조희대 대법원장이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법원행정처)·사법연수원·사법정책연구원 등의 국정감사에서 여야 공방으로 회의가 정회되자 자리를 이석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13일 대법원 국정감사가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질의를 둘러싸고 전례없는 파행을 빚은 것을 보면서 삼권분립과 국민주권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된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삼권분립 체제를 가진 법치국가에서 재판 사항에 대해 법관을 증언대에 세운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증인선서와 질의응답을 거부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교과서에서부터 (나오는) 삼권분립, 사법부 존중이 이 자리에서 실현되는 모습을 원한다"고 거들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2항은 국민주권을 천명한 조항이다. 다만 현실에서는 대의제를 통해 실현되므로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과정은 국민주권 행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은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 만큼 국민주권은 삼권분립의 상위개념이라 할 수 있다.
 
사법부의 독립이 지고지순한 가치가 아니고, 삼권분립은 국민주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법부는 과연 이 개념에 충실했을까.

국민의 시간 무시한 대선 한 달전 선고

조희대 대법원은 지난 3월 28일 이재명 후보 선거법위반 사건을 접수한 뒤 4월 22일 소부에 배당했다가 2시간 만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한다. 이어 같은 날인 22일과 이틀 뒤인 24일 두차례 심리를 진행한 뒤 29일 선고일을 지정하고 곧바로 5월1일 상고심 선고를 강행했다. 전원합의체 회의 이후 9일 만에 초고속 선고가 이뤄졌다.
 
공직선거법이 공직자 사퇴시한을 90일 두고, 헌법이 대통령 궐위시 대선 실시 기한을 60일 이내로 두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시간을 존중하기 위해서다. 전날 국감에서 "6월2일 대선을 앞둔 5월 1일 대법원이 선고를 한 것은 정치에 관여한 것"이라는 장경태 의원의 발언도 같은 취지일 것이다. 적어도 90일 혹은 60일 동안은 입법·행정·사법부의 권한보다 국민의 주권을 우선시하라는 게 헌법과 법률의 정신이라고 볼 수 있겠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가기관이 삼권분립의 깃발 뒤에 숨기만 한다면 이 또한 국민의 권익에 위협이 된다. 삼권분립과 사법부 존중은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존립하는데 그동안 보인 사법부의 일부 행태는 기기묘묘함의 연속이었다.
 
내란 혐의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지난 3월 이례적인 시간단위 계산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풀어주더니 이어 수상한 휴대폰 교체 의혹으로 사법부의 신뢰를 허물고 있다. 윤석열 구속취소 청구 당일 휴대폰을 바꾸고 본인의 룸살롱 접대 의혹이 제기된 직후 또다시 휴대폰을 갈아치웠는데 일언반구 설명이 없고 대법원의 감사도 지지부진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신뢰가 걸린 중차대한 의혹이 제기됐음에도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증인선서도, 답변도 거부하며 침묵했다. 국민들은 조 대법원장이 주도한 전원합의체가 대선 직전 이례적으로 빠르게 유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내린 경위에 의문을 품고 있다. 판결을 전후한 시점과 한덕수 전 총리의 출마 준비가 맞물리는데 대한 의혹도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특권의식 내려놓고 전향적 조치 필요

연합뉴스

7만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사건기록을 그 짧은 시간에 검토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일자 대법원은 사건기록이 접수된 3월 28일 이후부터 대법관들이 사건기록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을 바꿨다. 재판부가 배당되기 전에 대법관들이 기록검토를 한 것이 절차에 맞는 지도 의문이다. 혹여 지난 대선 사건을 다음 대선 전에는 끝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면 미리 서둘렀어야지, 국민의 시간인 대선 한달 전 선고를 하는 건 대선 개입이자 국민주권 침해로 보기에 충분하다.
 
사법부의 신뢰가 허물어지고 있는데 사법부 존중과 삼권분립만 외친다고 건강한 삼권분립이 확립될 수 없을 것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국정감사 마무리발언에서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며 선거법 사건 논란을 비롯한 사법부를 둘러싼 국민적 의혹에 직접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특권의식을 내려놓고 보다 전향적인 조치와 성실한 답변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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