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구속의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15일 판단했다. 그가 불법 계엄임을 인식하고도 검사 파견과 수용공간 확보 등 통상적 업무 범위를 넘어선 지시를 했다는 특검의 주장은 법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시를 한 일부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도 통상적·원론적 지시였음을 강조했던 박 전 장관의 주장을 깰 내란 특검의 '스모킹건'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검은 지난 14일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전 장관이 인권을 보호하고 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단순히 방조한 수준을 넘어, '순차적으로 공모'했다는 점을 영장 청구의 핵심 근거로 제시했다.
박 전 장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제외하고 12월 3일 비상계엄 당일 저녁 윤 전 대통령이 가장 먼저 직접 호출한 인물이다. 특검은 박 전 장관이 대통령실에 일찍 도착해 졸속으로 진행된 국무회의와 국무위원들의 만류를 지켜봤다는 점에서, 그가 '계엄의 불법성'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는 박 전 장관의 직권남용과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됐다.
하지만 박 부장판사는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객관적으로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나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고 충분한 공방을 통해 가려질 필요가 있다"며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수사 진행이나 피의자 출석의 경과 등을 고려하면, 도주·증거인멸의 염려보다는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앞선다"고 판단했다. 특검이 '범죄사실은 이미 완성됐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박 전 장관이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관리 지시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는 등 위법성 인식을 입증할 만한 물증이 부족하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박 전 장관은 계엄 선포 이후 소집한 법무부 실·국장 회의 전후로 '계엄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이 가능한지 검토하라'는 지시를 검찰국에 내리고 교정본부엔 수용 공간 확보를,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박 전 장관이 불법 비상계엄 계획의 초기 단계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계엄 유지와 실행을 위한 후속 조치를 검토·지시함으로써 내란 행위에 실질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반면 박 전 장관 측은 계엄 선포 이후 부당한 지시를 내린 적이 없으며, 특검이 통상적인 직무 수행을 법적으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번 법원 판단으로 통상적·원론적 지시에 그쳤다는 박 전 장관의 주장에 힘이 실린 셈이 됐다. 박 전 장관은 수사기관에서 검사 파견 지시는 합수부가 구성될 경우에 대비해 대응책을 검토하라는 원론적 지시에 불과했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내린 지시 역시 계엄 선포 이후 공항 등에서 인파가 몰릴 가능성에 대비하라는 원론적 조치였으며, 교정본부에 수용공간 확보를 지시한 것도 소요나 폭동 등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일반적 조치였다고 강조하며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내란특검은 심문에서 박 전 장관의 증거인멸 우려를 강조했지만, 박 부장판사는 "도주나 증거인멸의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은 수사 과정에서 교정본부가 박 전 장관에게 수도권 구치소에 3600명을 추가 수용할 수 있다는 내용의 문건을 보낸 사실을 확인했는데, 이 문건이 박 전 장관의 휴대전화에서 삭제된 정황을 포착했다. 특검은 해당 문건을 '포고령 위반자 구금을 염두에 둔 사전 준비 작업'으로 판단했다.
특검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구속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계엄 당일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도 제시했지만, 이번에는 힘을 쓰지 못했다. 영상에는 정족수를 충족하기 전인 오후 10시 5분 ,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 대접견실을 나서려 하자 박 전 장관이 대통령을 제지하는 모습이 담겼다. 또 CCTV에는 박 전 장관이 A4 용지에 직접 메모하거나 특정 문건을 들여다보는 장면 또한 찍혀있다.
법원이 박 전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하면서, 내란특검의 국무위원급 신병 확보 시도는 내란 방조 혐의를 받는 한덕수 전 총리에 이어 두 차례 연속 무산됐다. 향후 계엄 국무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특검 수사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특검은 조태용 전 국정원장을 이날과 오는 17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특검은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