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K뷰티 제품이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 헤어 제품은 정작 국내 미용 시장에서조차 점유율을 확대하지 못하는 처지다.
미용사들은 국내 헤어 제품이 대중들의 인지도는 물론, 미용사들의 선호도 면에서도 해외 제품에 밀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용사 교육부터 유통까지 해외 제품에 잠식
서울 목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박진실 원장은 최근 고객의 머리카락을 태울 뻔했던 경험을 한 이후로는 매장에 국내 제품을 잘 들여놓지 않는다. 모처럼 국내 헤어 브랜드에서 출시한 연화제를 제품 안내에 따라 사용했는데, 예상시간보다 훨씬 빨리 약이 드는 바람에 열처리 과정에서 자칫 손님의 머리카락이 다 녹을 뻔했던 것.
박 원장은 "해외 브랜드 제품 사용 시에도 종종 변수가 발생하지만, 처음부터 쓰던 제품이라 익숙하다 보니 그나마 편차에 대처하기 쉽다"고 말했다. 여의도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김시은 원장 역시 "새로운 약을 사용했을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바로 고객이 불만을 제기한다"며 해외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처럼 국내 헤어 제품이 미용 시장에 진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 주된 원인은, 이미 해외 제품에 익숙해진 미용사들의 습관 때문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미용사들은 초창기 교육생 시절부터 접한 해외 브랜드 제품의 안정성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 미용사들이 승급 과정에서 사용한 미용 자재를 교육 수료 후에도 그대로 쓰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수백 개의 미용실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미용업체와 해외 헤어 브랜드들과의 끈끈한 관계도 국내 헤어 제품의 보급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 원장은 "매장이 일본 M사와 계약을 맺어 미용사가 사실상 관성적으로 이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A원장도 "미용사 개인이 제품 연구에 열의가 있지 않다면, 대부분이 미용실에서 계약한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해외 헤어 브랜드들은 미용사들의 자사 제품 사용을 유지하기 위해 문화·제도적 체계까지 구축하고 있다. 박 원장은 "일본 M사의 경우, 제품 사용 기술 숙련을 위한 자체 합숙 훈련과 '오쥬와 소믈리에'와 같은 자격증을 발급한다"면서 "이러한 시스템적 지원과 자격증 제도는 고객 신뢰 확보와도 연결돼 기존 제품을 계속 이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소형 미용실 줄폐업…국내 헤어제품 입지도 좁아져
국내 헤어 제품의 시장 확대를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은 '대중 인지도 부족'에 있다. 김시은 원장은 "국내 헤어 브랜드 제품이 품질 면에서는 해외 브랜드와 큰 차이가 없지만, 고객이 국내 헤어 브랜드 이름을 잘 모르니 권하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개인이 운영하는 중·소형 미용실을 공략하는 것이 국내 헤어 브랜드들이 살 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미용업계가 프랜차이즈 업체들 위주로 재편되면서 작은 동네 미용실들이 사라졌고, 국내 헤어 브랜드들 역시 자사 제품을 홍보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지방행정인허가데이터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약 1만3천 개에 달하는 미용실이 폐업했다. 중·소규모 미용실의 폐업 증가로 해외 헤어 브랜드가 입점해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미용실만 생존하는 구조가 공고해지면서, 국내 헤어 제품이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이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용업계 관계자들은 해외 헤어 제품에 익숙해진 미용업계 특성을 고려했을 때, 단순한 제품의 품질 경쟁만으로는 시장 구도를 바꾸기 어렵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김 원장은 "최근 국내 헤어 브랜드도 미용사와의 협업을 통해 제품을 알린 덕분에 두피 케어에 관해서는 미용사들 사이에서 '품질이 좋다'고 알려졌다"면서 "미용사와 대중 모두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투 트랙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순차적으로 해외 헤어 브랜드 의존도를 줄여 나가기 위해 국내 헤어 브랜드들도 체계를 구축하고 마케팅을 강화해야한다고 조언한다.
건국대학교 K뷰티산업융합학과 강주아 교수는 "K뷰티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해 유행 색상은 팬톤 등 해외에서 권위 있는 컬러 시스템이 매년 발표하는 색상 계열을 따라간다"면서 "국내 헤어 브랜드들도 홍보와 연구 제도를 마련해서 이러한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