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씨가 휴궁일에 비공개로 경복궁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됐다. 김 씨는 근정전 내부도 들어가 '왕의 의자(어좌)'에 앉은 것으로 밝혀졌다.
22일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경복궁 2023년 9월 12일 상황일지에 따르면 김 씨는 휴궁일인 이날 오후 1시 35분 협생문을 통해 경복궁에 입장한 뒤 근정전에 이어 경회루와 흥복전을 잇따라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 씨는 오후 3시 26분까지 경복궁에 머물렀다. 김 씨는 일지에 'VIP'로 표기돼 있다.
당시 김 씨는 근정전 내 비치된 어좌에 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유산청은 임오경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김 씨가 어좌에 앉은 사실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복궁 근정전에 비치된 어좌는 조선시대 당시 '왕'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제101조(관리행위 방해 등의 죄)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장의 공개 제한을 위반하여 출입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해당 사실에 대해 캐물었다.
양문석 민주당 의원은 당시 배석한 정용석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사장에게 "김건희가 왜 경회루에 갔냐. 일반 민간인이 근정전 용상에는 왜 앉았느냐"며 "김건희가 스스로 가서 앉은 건가"라고 물었다. 조계원 의원은 "그 자리에서 왕을 꿈꿨나 보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정 사장은 당시 김 씨의 경희루 방문 사유에 대해 "월대 복원 기념식과 아랍에미리트(UAE) 국왕 국빈 방문이 있었고, 답사 차원에서 설명을 들으러 간 것으로 기억된다"며 "국왕 내외분의 동선을 (점검)하면서 근정전을 들렀다가 경회루로 갔다가 흥복전까지 가셨다"고 해명했다.
이기헌 의원은 "근정전 어좌(용상)에는 누가 앉으라고 했나. 이배용 전 (국가교육)위원장이 권유한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고, 정 사장은 "(김 씨) 본인이 가서 앉지 않았을까 싶다. 계속 이동 중이었기에 앉았더라도 1~2분 정도"라고 답했다.
이 의원이 "이 전 위원장이 (어좌에) 올라가라고 했기 때문에 김 씨가 올라간 것 아니냐"고 재차 묻자 정 사장은 "상황이 그렇다"며 이 전 위원장이 권유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 전 위원장은 김 씨에게 금거북이를 선물하고 초대 국가교육위원장 자리를 얻었다는 매관매직 의혹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이번 논란은 지난 20일 주진우 시사인 편집위원이 김 씨가 경회루를 방문한 모습을 공개하면서 확산됐다.
공개된 사진에서 김 씨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민소매 원피스 차림으로 경회루 2층에 서 있었다. 허리춤에 손을 올린 채 편안한 자세를 취한 그 옆에는 이 전 위원장이 동행했다. 국보 224호인 경회루는 평소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이다.
김 씨는 현재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이 수사하는 대상은 총 16개로 △도이치모터스·삼부토건 등 주가조작 의혹 △명품 가방·다이아몬드 목걸이 등 금품 수수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등과의 국정·인사 개입 의혹 △임성근 등 구명 로비 의혹 등 광범위하다.
종묘 차담회 의혹도 수사 중이다. 지난해 9월 김 씨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외부 인사들과 차담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왕과 왕비의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를 봉안한 영녕전 신실까지 개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민중기 특별검사팀 김형근 특검보는 "민간인인 김 씨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인 종묘를 사적 지인들과 차담회 장소로 무단 사용했다는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이라며 "대통령실 자원을 이용해서 사익을 추구했다는 조항을 근거로 한 수사"라고 설명한 바 있다.
특검팀은 수사기간을 30일 연장하기로 결정해 다음 달 28일까지 수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앞으로 수시기간을 한 차례 더 연장할 수 있어 김건희 특검은 최장 오는 12월 28일까지 수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