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딜보다 노딜! K-공무원의 진화 가능성[기자수첩]

9월초 조지아주 韓기업 근로자 굴욕적 체포 충격…동맹 신의에 균열
3년 전 바이든 정부 때도 韓전기차 보조금 제외…"등에 칼 꽂은 것"
방산도 이율배반…美, 조선협력 요구하면서도 이지스함 기술 수출은 거부
정부, 국익 중심 관세협상 3원칙 견지…대미추종 과거와 달리 의연한 대응 기대

연합뉴스

지난달초 미국 당국이 조지아 주의 한국 기업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들을 대거 체포한 사건은 동맹으로서의 신의에 심각한 균열을 냈다.
 
미국을 돕고자 밤낮없이 일하던 우리 근로자들이 졸지에 쇠사슬까지 찬 채 끌려가는 모습에 분노와 굴욕감을 느끼지 않을 국민은 없었다.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 정부에 실망했다'는 응답은 약 60%에 달했다.
 
미국 정부의 이런 행태가 처음도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였기 때문에 발생한 예외적 사건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3년 전인 2022년 8월 바이든 행정부 때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한국산 전기차를 제외함으로써 파란을 일으켰다. 우리 기업의 투자가 보은은커녕 배신 당한 것이다. 
 
당시 미국 블룸버그 통신이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을 인용해 "한국은 미국이 등 뒤에 칼을 꽂은 것으로 여길 만큼 충격을 받았다"고 보도할 정도였다. 
 
바이든 당시 대통령은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 기업들의 44조원 대미 투자에 '땡큐'를 연발했지만 1년여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변했다. 그는 2022년 5월 방한 때도 현대차의 13조원 추가 투자에 또 한 번 감사를 표하며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했지만 말뿐이었다.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카운티 엘러벨에 위치한 현대차-LG엔솔 배터리공장 건설 현장. 연합뉴스

한국인 근로자들이 연행된 조지아의 건설 현장은, 현대차가 3년 전 보조금 배제 조치를 피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추가 투자한 공장이다. 한국의 선의가 연거푸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현재 한미 간 최대 현안인 관세협상이 큰 난항을 겪는 것도 따지고 보면 미국의 일방적 변심에서 비롯됐다. 
 
양측은 지난 7월 한국의 3500억 달러 대미투자와 한국산 제품에 대한 15% 관세 적용 등에 합의했지만, 미국은 점차 말을 바꾸더니 급기야 전액 현금 선불 지급과 이익금의 사실상 독점 등을 요구했다.
 
제2의 IMF 사태 같은 한국 경제의 파산을 부른다거나, 심지어 패전국에 대한 배상 요구와 다를 바 없다는 등의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미국 정부의 이율배반은 방산 부문에서도 나타났다. 미국 측은 '마스가'(MASGA) 조선 협력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우리 측이 요청한 이지스함 핵심 기술 수출은 거부했다. 미국이 해당 기술을 호주와 일본에는 판매한 전례와 비교하면 부당한 차별이다.
 
사실 조선 협력도 말이 좋아서 협력이지 한국의 산업 역량을 통째로 빼앗으려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수 전문가들은 "미국은 개별 기업 1~2개를 가져가는 게 아니라 아예 자국 내에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핵심 산업 공동화와 일자리 감소의 후폭풍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이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부가 국익 중심의 관세협상 3원칙을 견지하고 있고 여론도 우호적이라는 점이다. 일각에선 '배드 딜(나쁜 합의)보다 노 딜(합의 연기)이 낫다'는 강경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를 반영한 듯 정부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시한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서며 대미협상의 지렛대를 다시 늘려나가는 모습이다. 
 
물론 이런 판단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그간 대미 추종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오던 우리 관료들이 체질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그로써도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국운을 건 협상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엄중한 형국에 K-공무원의 저력과 가능성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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