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이 국정감사 중 자녀 결혼식을 치러 고액의 축의금을 거뒀다는 '이해충돌' 논란이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당 지도부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 만큼은 정쟁을 삼가자고 제안했지만, 당내에서 '맞불 작전'까지 개시되면서 공방은 더 격화하는 분위기다.
양자역학 언급에 파장 확산
사실 처음엔 그리 큰 이슈가 아니었다. 딸 결혼식 청첩장에 축의금 카드결제 기능까지 포함된 사실이 알려진 뒤 '너무 노골적인 것 아니냐'는 쓴웃음이 정치권 곳곳에서 나오는 수준이었다.정치인 경조사가 이해충돌 소지를 피하기 어려운 건 자명하지만, 현행법상 부조금 수수 자체를 막을 뚜렷한 규정이 없는 터라 매번 '도덕적 비판'에 그쳐왔다.
최 위원장 축의 논란을 처음 알린 한 극우 유튜버가 국민의힘에 "이것마저 제대로 못 싸운다면 너무 실망스러울 것"이라며 분발을 촉구했던 것도 그런 소극적 분위기를 반영해서였다.
그러다 파장이 커진 건 혼사 이후였다. 여야 간 공방을 몇 차례 겪으면서 눈덩이처럼 불었다.
결혼식 직후 최 위원장이 "화환을 받지 말라고 딸에게 얘기하지 않은 건 제 불찰"이라고 해명하면서 굳이 덧붙였던 말이 논란에 기름을 끼얹었다.
최 위원장은 국민의힘이 "피감기관, 언론사 간부 상당수가 결혼식장을 직접 찾았다(박정훈 의원)"며 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하자 별안간 '양자역학'을 언급했다.
그는 "(국감 준비를 위해) 문과 출신인 제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거의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라며 "집안일이나 딸의 결혼식에 신경을 못 썼다"고 해명했다.
이에 야권에선 '양자역학' 발언에 온갖 말장난을 더해 비꼬았고, 여당에서도 공개적으로 표출되진 않았지만 "아쉬운 해명이었다(초선 의원)"는 등의 반응이 물밑에서 주를 이뤘다.
최 위원장이 국회 본회의 중 확인하던 스마트폰 화면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됐는데, 국내 대기업과 언론사 등 피감기관에서 받은 축의금 액수가 적혀 있던 것도 화제를 키웠다.
최 위원장 측에서는 "반환하기 위해 보좌진이 정리한 명단을 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민의힘이 "뇌물죄는 받는 순간 성립한다"며 고삐를 죌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됐다.
공방이 거듭되자 최 위원장은 "면역세포들이 암세포만 공격하게 만들자"며 진보진영에 지원을 청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신'을 거론하면서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이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라며 감싼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 사위인 같은 당 곽상언 의원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가치를 해하는 건 노무현 정신이 아니다"라고 직격하면서 엄호 기류는 확산하지 못했다. 최 위원장도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삭제했다.
MBC 논란 맞물려 여론 악화
축의 논란과는 별개 사안이지만 최 위원장이 국감 중 본인 관련 보도를 지적하며 MBC 보도본부장을 퇴장시켜 물의를 빚은 게 같은 시기에 맞물리면서 여론이 더 악화한 측면도 있다.
정청래 대표가 MBC 퇴장 당일 최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위 설명을 요구하고 국민의 염려를 전했다는 소식을 박수현 대변인이 차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기자 브리핑을 통해 알렸지만, 사태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뒤였다.
나아가 29일 과방위 국감에선 민주당 노종면 의원이 최 위원장 딸 혼사 당일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 아들도 양평군청 인근에서 결혼식을 열었다며 맞불을 놨다.
문제는 그럴 때마다 최 위원장 축의 논란 자체가 같이 소환되면서 이슈가 사그라지지 못한다는 점. 이날도 다수 언론이 국민의힘이 최 위원장을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에 신고하러 나섰다는 소식과 함께 '공방전'으로 보도했다.
최 위원장은 이날 국감 진행 중 눈물을 훔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 차원에서 퇴장한 데 대해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다만 정치권에서는 "해명, 공방 과정에서 이슈가 커진 탓에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것 아닐까 걱정된다(여권 관계자)"거나 "더 이상은 사퇴 외엔 출구가 없어 보인다(국민의힘 초선 의원)"는 반응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