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9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구속 수사를 받아 가혹행위를 당한 뒤 암투병 끝에 사망한 윤동일씨가 35년 만에 혐의를 벗었다.
수원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 정윤섭)는 30일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던 윤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실제 저지르지 않은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자백 진술한 점을 비추어보면 자백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증거능력이 없거나 입증할 증거가 없어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돼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면서 "고인이 되신 피고인이 명예를 회복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윤씨의 친형인 윤동기씨는 선고 직후 기자들을 만나 "무죄가 선고되는 순간 울컥했고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참았다"며 "오늘 무죄 선고가 났으니 동생도 이제 홀가분할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씨(당시 19세)는 지난 1990년 11월 9일 오후 7시쯤 경기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길거리를 가고 있던 피해 여성 A씨를 추행하고 다치게 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경찰은 인근 마을에 사는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범인이 입고 있던 옷과 윤씨가 근무하던 회사의 작업복이 동일하다는 이유였다.
경찰은 "인상 착의를 볼 때 윤씨는 범인이 아닌 것 같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왜곡하고 같은해 12월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구속해 윤씨를 검찰에 넘겼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윤씨를 경찰서 인근 여인숙 등으로 데리고 다니며 잠을 재우지 않거나, 강압적인 상태에서 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듬해인 1991년 4월 23일 1심 재판부는 윤씨에게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윤씨는 불복하며 상소했지만 모두 기각되며 1992년 2월 형이 확정됐다.
윤씨는 이 과정에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9차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는 수모도 겪었다. 9차 사건은 1990년 11월 화성시 태안읍 야산에서 김모(13)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춘재는 9차 사건 등 자신이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이 사건에서도 윤씨는 경찰로부터 고문과 폭행을 당했고, 3개월 뒤쯤 김양의 옷가지에서 채취된 DNA가 윤씨와 불일치한다는 감정 결과가 나온 뒤에야 풀려났다.
집행유예 선고와 함께 5개월간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나온 윤씨는 출소 10개월 만에 암 판정을 받았다. 윤씨의 갈비뼈에서 종양이 발견된 것이다. 7년간 투병생활을 하던 그는 1997년 사망했다.
이 사건을 조사한 진실화해위는 2022년 12월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불법체포·가혹행위·자백 강요·증거 조작 및 은폐 등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고, 법원은 지난해 7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