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년 만에 한국을 찾으며 기대가 쏠렸던 북미 회동은 결국 최종 무산됐지만 여전히 불씨는 살아있다. 우리 정부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대화 조건 맞춰가는 북미…내년 4월 다시 조율 가능성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기간 연장까지 언급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을 끈질기게 구애했지만,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응수하며 회동을 단호히 거절했다.회동 불발의 배경은 북한이 대화에 나설만한 구체적인 유인이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조현 외교부장관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회동 거절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건 2019년과 지금 북한의 상황을 비교해보면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핵능력을 고도화한 북한이 올해 들어 중국·러시아와 밀착하며 국제무대에 나란히 선 대외적 상황을 언급한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4월 중국 방문을 공식화하며 이를 계기로 북미회동이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떠나면서도 "김정은과 관련해서는 다시 오겠다"며 러브콜을 보냈다.
김 위원장은 미국에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면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차례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라고 표현하며 제재 완화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두 정상이 대화 조건을 맞춰가고 있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낄 틈' 좁아지는 韓…"북미 관계 개선하면 남북 길도 열려"
향후 만남에 여지를 남긴 북미관계와는 달리 남북관계는 진전이 없다. 북한의 철저한 외면 속 미국의 역할에만 기대야 하는 처지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모두 다자보다는 양자 회담의 담판을 선호한다는 점도 한국이 끼어들 틈을 좁게 한다.
우리 정부 또한 북미대화를 우선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미국에 '판을 깔아주는' 역할에 집중할 뜻을 밝혔다. 아울러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북한과의 대화 재개도 꾀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1일 기자회견에서 "남북대화만으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뚜렷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국이 역할이 중요하다"며 "미국의 역할을 인정하고 미국과 북한이 대화해서 관계를 개선하면 남북간 관계 개선의 길도 열린다"고 말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한과의 대화 문제가 논의됐지만 "결국 북미대화가 제일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위성락 안보실장이 전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BS라디오에서 "당장 직접적인 참여자는 아니더라도 북미가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도 중요하다"며 "그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대화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