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계기로 줄기차게 요구했던 북미정상회동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거부로 결국 무산됐다.
김 위원장이 이번에야말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야 한다는 주장이 당초 힘을 얻은 것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회담을 열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달 24일 북미정상회동을 촉구하며 "다른 시간에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실무적으로 많은 준비와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 이번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결단을 미뤄 결정적 기회를 놓친 북미대화의 흑역사
북한과 미국은 과거 결정적인 순간에 결단을 하지 못하거나 시기를 미뤄 기회를 놓친 적이 많다.속도를 내지 못해 기회를 놓친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2000년 10월 당시 조명록 차수의 미국 방문이다. 당시 조명록 차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북미 적대관계 청산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포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북미 공동 코뮤니케'에 서명을 했다.
이어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준비했지만, 이어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시 후보가 승리함으로써 기회는 무산됐다.
2019년 2월의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도 북한과 미국, 한국 등 어느 쪽의 잘못과 책임이 더 크냐를 떠나 매우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경주 APEC 계기의 북미정상회동이 불발로 끝남에 따라 이제 시간적인 기회는 미국 중간선거가 열리는 내년 11월까지로 좁혀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북미정상회담의 동력이 크게 약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북미가 내년 하반기 이전에 기회를 잡아야한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 말고 과연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이처럼 관심을 드러내겠느냐는 지적도 앞으로 북미간에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과 연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동이 무산된 뒤 일단 "내가 너무 바빠서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고 설명하면서 "나는 다시 올 것이다, 김정은과 관련해서 다시 오겠다"고 강조했다. 북미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주목되는 계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내년 4월 중국 방문이다. 이를 전후해 북미정상회동이 가능할지 북미 간에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앞서 내년 1월 열리는 북한의 9차 당 대회에서 북한의 대미전략이 어떻게 설정되는가도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이 북한을 '뉴클리어 파워'라고 부르면서도 '북한 비핵화 목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도 회담의 관건이다.
김 위원장이 러·우 전쟁과 미중대립 등의 국제 정세 속에 오히려 신 냉전의 다극화 진영에서 발전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면, 시간을 끌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제의를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북미대화 여건 조성위해 다방면 노력
이에 따라 정부는 북미대화의 여건을 조성하기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할 방침이다. 접경지역 군사훈련 중단 등 9·19 남북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 한미연합훈련과 전략자산 전개의 조정 등이 거론된다.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일 APEC 정상회의 2차세션을 마친 뒤 별도발언을 자청해 정부는 남북 긴장완화와 신뢰회복을 위한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앞으로도 평화를 위한 대승적이고 더욱 적극적인 선제적 조치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동이 "불발되긴 했지만 이것이 또 하나의 씨앗이 돼서 한반도에 거대한 평화의 물결을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