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새벽 12시 30분쯤 서울의 한 식당가 골목에 쓰레기 수거차 1대가 진동음을 내며 들어섰다. 멈춰 선 차량에서 형광색 작업복과 헬멧 등을 착용한 환경미화원 1명이 내려 길가에 놓인 쓰레기들을 차량 뒤 기계에 집어넣었다. 기계는 굉음을 내며 천천히 쓰레기를 분쇄했다.
수거차 후미에 달린 작은 발판이 눈에 띄었다. A씨는 발판을 가리키며 "원래 매달려서 이동했는데, 구청에서 단속이 나와서 못 타게 한다. 워낙 단속이 심해서 타면 안 된다"고 말했다.
A씨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렸다. 수거 차량에 탑승하는 대신 다음 목적지까지 뛰기로 한 것이다. 쓰레기가 모인 곳에서 차량이 멈추면 다시 폐기물을 옮겼다. 쓰레기가 유독 많은 지점에서는 운전자도 내려 작업을 도왔다.
A씨는 작업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며 환경미화원 안전 문제를 토로했다. 그는 "유리에 찔려 다치고, 차에 매달려 있다가 떨어져서 다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강서구에서는 한 명 죽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 이후에 더 (안전 관리가) 까다롭다"고 했다. 지난 9월 18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는 50대 환경미화원이 쓰레기 수거차 후미에 매달려 작업하다가 차량과 전봇대 사이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긴 새벽 근무를 남겨둔 A씨는 차량이 멈추면 쓰레기를 나르고, 차량이 출발하면 달리기를 반복했다. 조수석은 텅 비어 있었다. 금세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규제들이 현장에서 조화롭게 작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전 '적합' 업체는 3.5배↑, 사고 수는 그대로
CBS노컷뉴스가 진보당 정혜경 의원실로부터 확보한 기후에너지환경부(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환경미화원 안전사고 건수는 2019년 773건, 2020년 888건, 2021년 861건, 2022년 839건, 2023년 876건이었다. 2020년부터는 매년 800건 이상씩 꾸준히 사고가 나고 있다.
유형별로 들여다보면, 작업 중 넘어짐·베임·찔림·부딪힘·기타질환 사고가 가장 많았다. 2019년 490건, 2020년 619건, 2021년 581건, 2022년 614건, 2023년 685건이었다. 청소 차량에서 끼임·깔림·부딪힘·떨어짐 사고가 그다음으로 많았다. 178건(2019년), 171건(2020년), 199건(2021년), 134건(2022년), 118건(2023년)으로 각각 집계됐다. 교통사고는 105건(2019년), 98건(2020년), 81건(2021년), 91건(2022년), 73건(2023년) 등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기간 생활폐기물 안전점검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업체의 비율은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안전기준 관련 안전점검 및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1020개 내외의 업체 중 '적합' 판정을 받은 업체 수는 2020년 245개(24.1%), 2021년 679개(66.4%), 2022년 720개(70.7%), 2023년 863개(84.6%)로 급증했다. 4년 새 3.5배 이상 '적합' 판정을 받은 업체가 증가한 것이다.
해당 평가에서 '적합' 판정을 받기 위한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안전장치와 보호장구들을 종류별로 모두 갖춰야 하고, 날씨에 따른 작업시간 조정 원칙 등을 모두 지켜야 한다. 이 중 한 가지 조건이라도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부적합'으로 판정된다.
결국 까다로운 안전 점검에서 '적합' 판정을 받은 업체들이 많이 늘어났는데도, 실제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 수는 변화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행정·제도와 현장 간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작업량에 알맞은 인력 투입했는지도 점검해야"
전문가들은 안전점검 평가가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안전 규제가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도, 현장 노동자들이 지속적으로 후미에 매달려 작업하는 배경에는 현장의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노동정책연구소 김성희 소장은 "형식적으로는 (차량에 매달리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작업을 해서는 일을 마칠 수 없는 조건을 부과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안전점검을 할 때뿐만 아니라 실제로 차량을 운행하고 작업하는 중에도 이행 조치가 잘 이뤄지는지 불시에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예기치 못한 사고에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 중 심야 노동도 있는데, 이런 작업 방식에 대한 점검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점검을 하더라도 사고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부족한 인력과 과중한 업무 등이 거론되기도 했다. 김 소장은 "보통 현장에는 작업량에 비해 적은 수의 작업자가 투입되고 있다"며 "작업량에 맞게 인력을 적절히 운영하고 있는지도 점검하지 않으면 사고 예방 효과를 높이긴 어렵다"고 말했다.
진보당 정혜경 의원은 "최근 강서구와 동두천 등에서 환경미화원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다"며 "안전한 작업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환경미화 작업과 관련해 환경부도 고민이 깊다. 점검 항목을 신설해 적용하면, 관련 사고는 줄어든다는 게 환경부의 판단이다. 가령, 차량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막기 위한 점검 항목이 생기면, 해당 사고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곧 다른 사고가 발생한다. 차량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줄면, 달리면서 넘어지는 사고가 늘어난다. 일종의 '풍선 효과'인 셈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종합적인 대책 마련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