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꿈꾼 '핵잠'…민주당이 '자주국방' 매달려온 이유[안보열전]

盧 시절 시작된 '362 사업'…22년 뒤 부활
文 '미사일 사거리 지침' 폐지가 괴물 미사일 '현무-5'로
北 김여정 "文, 진짜 안보 챙긴 사람…영특하고 교활"
美 영향력 속 '자율성' 증대 열망이 '자주국방' 낳아
與 박선원 "동맹 기초로 우리가 싸워야 미국도 도와줘"
野 김건 "보수든 진보든 정부가 연속 노력해 이뤄낸 것"
그래도 대통령 의지 있어야 추진…'안보는 보수' 흔들린다

우리나라가 독자적으로 설계한 3천톤급 재래식 잠수함인 장보고(KSS)‑Ⅲ Batch‑I 1번함인 도산 안창호함의 항해 모습. 해군 제공

22년 전 노무현 정부의 꿈이 이재명 정부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른바 '362 사업', 2003년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승인하면서 시작된 원자력(핵추진) 잠수함 사업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시작될 예정인데요.
 
우리나라 국방의 역사를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진보 정부로 불리는 민주당 정부에서 '안보'를 중요시한다는 보수 정부보다도 전략무기 도입이나, 이와 관련된 외교적 노력을 적극 추진했다는 건데요.
 
역대 민주당 정부는 예외 없이 북한과의 대화와 함께 평화 공존을 추진했는데, 한편으론 오히려 전략무기 도입 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CBS노컷뉴스는 이 현상에 주목해, 민주당은 왜 북한과 대화를 하자면서도 집권할 때마다 무기 도입은 더 밀어붙이는지, '자주국방'을 왜 중요시하는지를 살펴봤습니다.
 

#1. "자주국방" 다시 외친 노무현


자주국방(自主國防). 한자 뜻을 풀이하면 '우리 스스로 주도해 나라를 지킨다'.
 
이 개념을 처음 제시하며 각종 미국제 무기 국산화를 지시한 건 박정희 정부였지만, 박 대통령 이후 정권을 잡은 대통령들은 그만큼 적극적이지는 못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이를 본격 추진한 대통령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었는데요.
 
이른바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일갈로 유명한 2006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1시간 넘게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 줘야 합니다. 동네 힘 센 사람이, 돈 많은 사람이 '동네 길 이렇게 고칩시다, 둑 이렇게 고칩시다, 산에 나무 심읍시다' 하면 어지간한 사람은 따라가는 거죠. 미국이 주도하는 질서, 이것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주국가, 독립국가로서의 체면은 유지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때때로 한 번씩 배짱이라도 내보일 수 있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달 22일 경남 거제의 한화오션 조선소에서 진수되는 3600톤급 장보고(KSS)‑Ⅲ Batch‑Ⅱ 1번함 장영실함. 발전형인 Batch-Ⅲ의 경우 원자력 추진 방식으로 건조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바로 그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나라 최초로 원자력 잠수함 도입을 추진했던 것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요.
 
이 연설로부터 3년 전인 2003년 6월 2일.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원자력 잠수함 도입 추진 계획을 보고해 승인받았고, 이른바 '362 사업'으로 불리는 핵잠수함 도입 계획이 비닉(秘匿) 사업으로 추진됩니다. 진행 계획이나 존재 자체가 비밀이라는 얘기죠.
 
조 장관의 회고록을 보면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고조되던 상황에서 전략적 타격과 응징·보복, 그리고 장차 확보할 이지스 구축함과 경항공모함이 해상교통로를 지키고 먼 바다에서 작전을 하기 위해선 원자력 잠수함이 필수라고 적었습니다.
 
전현직 해군참모총장들도 사석에서 기자에게 "군인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이지만, 해군의 중요한 전력 사업들은 민주당 정부에서 추진된 것들이 많다"며 의미심장한 평가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원자력 잠수함, 362 사업은 출범 2년도 안 돼 무산됐지만 막대한 비용과 외교적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전략무기를 갖춰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했던 사례였고, 무려 22년이 지난 2025년에 와서 부활했으니,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 소식을 듣는다면 누구보다도 활짝 웃고 있지 않을까요?
 

#2. 미사일 지침 없앤 문재인에 北조차 "영특하고 교활"

현무-5 고위력 탄도미사일. 연합뉴스

현무-5 고위력 탄도미사일.
 
군 당국 계산으로 100발을 한 번에 적중시키면 0.8kt, TNT 800톤 폭발력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위력으로 지하 벙커에 숨은 북한 수뇌부를 제거한다는 미사일입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이 15kt, 즉 TNT 1만 5천 톤 위력이니 핵무기만은 못하지만, 직접 핵무기를 만들 수 없는 현실에서 북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전략무기로 개발됐죠.
 
그런데 이 미사일, 미국과 협상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던 물건이었습니다.
 
백곰 미사일을 참관하는 박정희 대통령. 대통령기록관 제공

박정희 정부에서 미국의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을 국산화하는 백곰 미사일 사업을 추진할 당시 북한이나 중국을 자극할 걸 걱정한 미국의 우려로 사정거리를 180km로 제한한 '한미 미사일 사거리 지침' 때문인데요.
 
미사일에만 적용돼도 문제인데, 우주 로켓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개발에 이래저래 제약이 많았으니까 우리에겐 정말 불편한 지침이었죠.
 
이후 김대중, 이명박 정부에서 협상을 해서 사거리 800km에 탄두 중량 500kg까지는 제한이 풀렸는데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난 건 문재인 정부 때입니다.

2017년 지침 개정으로 사거리 800km에 탄두 중량 무제한으로 지침이 개정됐고, 2020년엔 군사 분야에만 이 제한을 적용했다가 2021년 5월 한미정상회담에서 완전 폐지, 즉 사거리 지침 자체가 없어지면서 모든 제약이 사라졌습니다.
 
2022년 국군의 날에 공개된 현무-5 발사 영상. 국방부 제공

그 결과 등장한 것이 현무-5, 탄두 중량만 8톤에 달하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괴물 미사일인데요.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 양산 단계에 들어갔고, 수량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올 연말부터 실전 배치가 시작된다"고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듬해인 2018년부터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중재하는 한편, 평양도 방문하고 9.19 군사합의를 맺을 만큼 남북 화해와 긴장 완화를 적극 밀어붙였거든요.
 
북한을 향해서는 끊임없이 대화하자고 주장해 보수 진영으로부터 빨갱이란 소리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김정은을 제거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의 문을 열기도 한 대통령.
 
실제로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민주당의 한 국회의원은 사석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할 정도였습니다.

"북한을 죽일 수 있다면 죽이고 싶다. 그런데 청와대에서 아무리 살펴봐도 그럴 방법이 없었다. 좋든 싫든 머리 위에 북한을 이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요.

실제로 북한을 죽이겠다는 살기(殺氣)를 드러낸 발언은 아니었지만, 엄혹한 분단의 현실을 민주당 정부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2022년 3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맞대응해, 군이 무력시위 성격으로 F-35A 스텔스 전투기 수십 대를 동원해 실시한 엘리펀트 워크(Elephant Walk) 훈련. 국방부 제공

북한도 이런 시커먼(?) 속내를 모르지 않는지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은 지난해 1월 담화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을 비난하며 이런 이야기까지 꺼냈습니다.

▶ 2024년 1월 김여정 담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신년메쎄지> 中
"문재인. 참 영특하고 교활한 사람이였다.

우리와 마주앉아 특유의 어룰한 어투로 《한피줄》이요,《평화》요,《공동번영》이요 하면서 살점이라도 베여줄듯 간을 녹여내는 그 솜씨가 여간이 아니였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상대였고 진짜 안보를 챙길줄 아는 사람이였다.

우리에게는 핵과 미싸일발사시험의 금지를 간청하고 돌아서서는 미국산 《F-35A》를 수십대씩 반입하고 여러척의 잠수함들을 취역시켰으며 상전에게 들어붙어 미싸일사거리제한조치의 완전철페를 실현시키는 등 할짓은 다한것이 바로 문재인이다."


북한도 웃는 낯에 침 못 뱉겠으니 미치고 환장하겠다, 속으론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데요.

원자력 잠수함과 고위력 탄도미사일처럼 중요한 전략무기 도입을 민주당 정부가 보수 정부보다도 더 강하게 추진한 이유는 뭘까요?
 

#3. '한미동맹' 영향력 속 '자율성' 추구한 진보

보수 정부가 한 일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미사일 사거리 지침 중간 개정도 진행했고, 윤석열 전 대통령도 2023년 '워싱턴 선언'을 통해 미국의 핵 작전 계획에 우리가 참여하는 핵협의그룹(NCG)를 출범시켰거든요.
 
하지만 미국 핵무기 사용 권한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 미국 대통령밖에 없는데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핵 사용을 억제할 뿐, 우리가 우리 국익을 위해 독자적으로 운용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국제정치학에서 한미동맹과 같은 관계를 가리키는 말로 '자율성-안보 교환 모델(Antonomy-Security trade-off model)'이라는 이론이 있는데요.

강대국이 약소국에 안보를 제공하는 대신 약소국은 일정 부분 강대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강대국은 전략적 이득을 얻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민주당 정부가 집권하면 오히려 국방력을 증강한다는 이상한 일의 맥락을 보면요, 북한의 위협을 머리 위에 이고 살다 보니 미국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자율성을 늘리려다 보니 우리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2023년 7월 제주해군기지에 입항하는 미 해군의 로스앤젤레스급 공격 원자력 잠수함(SSN) 아나폴리스함. 해군 제공

아까 말씀드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도 그렇고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 문재인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1차장을 지냈고 이 과정에서 '노무현의 꾀주머니'라는 별명을 얻은 민주당 박선원 의원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주국방이라고 하는 거는 한미동맹을 기초로 해서 우리가 싸울 의지, 1차적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군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버티고서 우리가 싸우겠다라고 하는, 그러한 스스로의 승전 의지와 자신감이 있을 때만이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거든요."
 
박 의원은 이번 대선 때 이 대통령이 3년 전과 달리 원자력 잠수함을 공약으로 꺼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일부러 조용히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밑으로 접촉은 하되, 오해를 막기 위해 한미 정상끼리 신뢰를 확실히 쌓은 뒤에 본격 협상에 들어가자는 원칙을 세웠다, 라는 게 박 의원이 귀띔한 내용인데요.
 
물론 보수 진영에서도 이런 반론을 내놓습니다.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즉 북핵 협상 수석대표를 지냈던 국민의힘 김건 의원입니다.
 
"우리 국가 안보에 관한 사항이기 때문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든 진보 정권이 들어서든 연속적으로 계속 노력을 해서 이때까지 이룩해 낸 거지. 그게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고 미사일 사거리만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에서 그거를 300km를 800km로 늘렸고, 그런 스테핑 스톤(stepping stone, 디딤돌)이 있어서 해제까지 간 거죠."
 
그동안의 정부에서도 계속 노력을 해왔고, 한 번에 모든 게 짠~ 하고 되는 일이 아니어서 한 걸음 한 걸음씩 협상해 오다 보니 이번과 같은 결과에 이르게 됐다, 라는 이야기인데요.
 
그럼에도 이런 커다란 사업은 군 통수권자이자 정치인인 대통령의 추진 의지가 매우 강하게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보수 진영의 전매특허였던 '안보는 보수'라는 어젠다가 흔들리는 그런 상황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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