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경쟁의 소용돌이 속,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책볼래]

'미중 관계 레볼루션'…기술의 권력화, 새로운 질서 설계
기술·정치·외교 전문가 4인이 제시하는 새로운 국가 전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미국의 'MAGA'와 중국의 '딥시크'가 맞붙는 기술 패권의 시대, 세계 질서의 중심은 이제 지리에서 기술로 이동했다. '미중 관계 레볼루션'은 이 거대한 충돌 속에서 한국이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를 묻는다. AI·반도체·공급망이 새로운 전장의 중심이 된 지금, 저자들은 '지정학'이 아닌 '기정학(技政學)의 시대'를 선언하며, 한국이 직면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짚는다.

한국이 처한 복합 위기를 정치·경제·기술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진단한 책 '미중 관계 레볼루션'은 미중 패권 경쟁이 세계 질서를 뒤흔드는 한 복판으로 안내한다.

성균관대 이희옥 교수, 한국외대 김영한 교수, 서울대 권석준 교수, 한림대 차태서 교수가 참여한 이 책은 미중 대립의 본질을 단순한 외교 갈등이 아닌 '기술이 권력의 축을 바꾸는 시대'의 근본 구조로 분석한다.

저자들은 오늘날 국제 질서를 움직이는 힘이 군사나 영토가 아니라 AI와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에 있다는 점에서, '지정학(地政學)'이 아닌 '기정학(技政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진단한다.

한겨레출판 제공

책은 트럼프 재집권 이후 노골적으로 드러난 미국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전략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자유무역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이 이제는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서 동맹국에도 관세와 방위비 부담을 강요하고, 공급망 재편을 빌미로 '조공'을 요구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저자들은 이를 "패권국의 피로와 불안이 빚어낸 자기보호적 반응"으로 규정하며, 미국의 강경한 대중 정책이 단순한 외교 전략이 아니라 내부 불평등과 산업 쇠퇴, 정치적 분열의 결과임을 짚는다.

하지만 미국의 공세만큼이나 눈여겨봐야 할 대상은 중국이다. 최근 확산된 '피크 차이나론'과 '시진핑 실각설' 같은 서구 담론을 저자들은 '정치적 목적을 띤 왜곡된 정보전'으로 분석한다.

오히려 중국은 외부의 압박을 역으로 활용해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AI·반도체·로봇 등 전략 산업에서 자국 중심의 생태계를 구축 중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AI 모델 '딥시크(DeepSeek)'의 급부상은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혁신을 일궈낸 사례로, 기술 패권의 중심이 서서히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 거대한 충돌 속에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저자들은 한국이 여전히 세계 기술 사슬의 한가운데 있지만, 핵심 기술의 자립도는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반도체 설계 소프트웨어나 GPU와 같은 필수 장비 대부분을 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으며, 중국의 기술 추격은 이미 '속도전'을 넘어섰다. 그러나 이 위기는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이 완전한 기술 독립을 추구하기보다는, 가격과 성능에서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 즉 '초격차'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 책이 제시하는 핵심 전략이다.

이재명 대통령(가운데)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저자들은 또한 미중 양국의 기술 블록화가 진행될수록 한국이 맞닥뜨릴 외교적 위험도 커질 것으로 본다.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대만 문제나 AI 협력 체계에 과도하게 얽히면, 한국이 스스로의 전략적 자율성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고다.

"연루의 딜레마와 방기의 딜레마" - 동맹으로 인해 원치 않는 분쟁에 끌려 들어가거나, 반대로 필요할 때 버려질 수 있는 이중의 위험을 피하려면, 한국은 기술 주권을 기반으로 한 '자율적 동맹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경주 APEC 정상회의를 한국 외교의 분수령으로 본다. 저자들은 이번 회의가 "AI 신뢰성과 투명성, 데이터 윤리 등 국제 기준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라며, "AI 신뢰성과 투명성에 대한 원칙을 국제적 합의로 이끌 수 있다면, 한국은 기술 패권 시대의 중재자이자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희옥·김영한·권석준·차태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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