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33년간 중단됐던 핵무기 실험(이하 핵실험)을 재개하겠다고 밝히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핵실험 재개를 시사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중국 역시 최근 몇년간 핵전력 강화를 위해 보유 핵무기 수를 급격히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핵무기 보유국간 핵전력 강화 경쟁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푸틴, 트럼프가 하면 나도 한다…불붙은 핵실험 경쟁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국가안보회의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실험 재개 발표를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며 외무부, 국방부, 특수부대와 관련 민간 기관에 핵무기 시험 준비에 관한 제안서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따른 의무를 엄격하게 준수해왔다면서도 미국이나 다른 핵보유국이 핵무기를 시험한다면 러시아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전면적인 핵실험에 즉시 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하며 러시아 북부 북극해에 있는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북극 시험장에서 단기간에 핵실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대통령은 (핵무기) 시험 준비를 시작하는 것의 적절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이라며 "시험 준비를 시작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를 통해 "다른 국가들의 시험 프로그램으로 인해 나는 동등한 기준으로 우리의 핵무기 시험을 개시하도록 국방부(전쟁부)에 지시했다"며 "그 과정은 즉시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핵실험 카드를 꺼내든 것은 최근 미중간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이 중단된 뒤 미국이 대러시아 제재에 돌입하자 푸틴 대통령이 핵전력을 과시하고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고 핵 발전장치를 장착한 수중 무인기 '포세이돈'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포세이돈은 러시아 동부에서 미국 서부 해안을 타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또, 같은달 26일엔 신형 핵추진 대륙간 순항미사일 '부레베스트니크'의 실험을 완료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함께 미중 정상회담 직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핵실험 재개를 발표한 것은 중국 역시 견제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SNS에 "(핵무기 수는) 러시아가 2등이고 중국이 뒤처진 3등인데 중국은 5년 안에 비슷해질 것"이라고 썼다.
中 핵무기 수 5년만에 2배…美 "예상 수준 넘어서"
러시아는 1990년, 미국은 1992년, 중국은 1996년 이후 핵실험을 중단했다. 핵무기 수가 앞도적으로 많은 미국과 러시아는 이후 그 수를 크게 늘리지 않은 반면 '뒤처진 3등'인 중국은 지속적으로 핵무기 수를 늘려왔다.
전세계 핵무기 현황을 조사하고 있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지난 6월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약 6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 2020년만 해도 핵탄두 수가 300개로 추정됐는데 불과 5년 만에 두배 가까이 증가한 것.
미국은 총 핵탄두 5177개와 그중 3700개를 군용 비축량으로, 러시아는 핵탄두 5459개와 그중 4309개를 군용 비축량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SIPRI는 추정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달 20~23일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는 제15차 5개년계획 기간(2026~2030년)에 핵전력을 뜻하는 '전략적 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건의문을 승인했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2030년까지 핵탄두 1천개, 2035년까지 1500개를 보유하는 목표를 가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저우보 중국 칭화대 전략·안보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어느 나라도 중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못 하게 하는 수준으로 확장할 것"이라며 "중국의 방침은 이미 정해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해 로버트 P. 캐들렉 미국 국방부 핵억제·생화학 방어 담당 차관보 지명자는 4일 "중국의 핵전력 증강 속도가 미국의 예상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중국의 핵전력은 서태평양 지역에서 주도적인 국가가 되려는 전략의 핵심적 요소"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불투명하고 급속한 핵전력 증강은 미국으로 하여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우리의 중요한 이익 침해를 어떻게 억제하고 격퇴할 것인지에 대해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미국의 핵전력이 중국의 핵 갈등 확산을 억제하도록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