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강원 강릉시 옥계항에 입항한 외국 선박에서 국내 역대 최대치인 1.7톤 가량의 코카인 밀반입 사건과 관련해 구속 기소된 필리핀 선원들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2부(권상표 부장판사)는 6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마약) 혐의로 기소된 필리핀 국적 선원 A(28)씨와 B(40)씨에게 각각 징역 25년과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또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마약) 방조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진 기관사 C(35)씨와 기관원 D(32)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운반한 코카인은 1회 투약분 0.03g을 기준으로 대한민국 국민 전부가 한꺼번에 투약하고도 남는 실로 엄청난 양이고 그 가액은 845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에 이른다"며 "대한민국 형사사법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마약 운반 사건으로서 코카인의 막대한 양과 천문학적 가액만으로도 이 사건 중대성과 죄책은 어떤 사건과 비교해도 무겁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건은 상당한 인적, 물적 자원을 동원해 여러 국가의 국경과 대양을 넘나들며 막대한 규모의 코카인을 운반·전달·유통하려고 했던 계획적·조직적 범죄"라며 "1690㎏의 코카인이 공범들의 계획대로 유통됐다면 여러 국가의 무수히 많은 사람이 코카인 사용, 매매 등 범죄에 연루되고 그로 인한 파급 효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인정된다"고 양형사유를 밝혔다.
특히 A씨에 대해서는"공범들을 범행에 끌어들이고, 코카인 선적과 운반 경로 관리 등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등 가장 높은 책임이 인정되며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밝혔고, B씨에 대해선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으며, 코카인 운반 과정에서의 실질적 실행은 다소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C씨와 D씨에 대해선 "운반 과정에 방조한 데 그쳤고, 전체 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알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번 사건의 코카인이 실제로 대한민국에 반입될 예정이었다고 단정할 만한 증거는 없으며, 국제 공조와 수사기관의 신속한 대응으로 인해 유통 확산은 미연에 방지됐다"고 설명했다.
검찰 공소장 등에 따르면 A씨 등은 지난 2월 초 중남미 마약 카르텔 조직원들과 연계해 중남미에서 생산된 코카인을 'L호'에 실어 동남아와 한국 등으로 운반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중 A 씨는 마약상들로부터 마약 운반 대가로 400만 페소(한화 약 1억 원)를 받기로 하면서 이를 수락했다. 이후 페루 인근 공해상에서 코카인을 실은 보트 2척과 접선해, 약 1㎏ 단위로 포장된 코카인 1690개를 넘겨받았다.
A씨는 B씨와 공모해 이를 선박 내부로 은닉했고, B씨는 이 과정에서 선박 항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C씨와 D씨는 A 씨의 제안을 받아 운반을 방조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결과 L호는 페루에서 파나마로 항해하던 지난 2월 8일 오전 페루 해안선 기준 약 30마일 해상에서 코카인 블록 1690개를 나눠 담은 56개 자루를 L호 선박으로 옮길 마약 카르텔 조직원(일명 닌자) 10~15명을 실은 보트 2척과 접선해 코카인을 옮겨 실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파나마에서 대한민국 당진항으로 오는 과정에 4차례(일본 동쪽 공해, 일본-제주 근해, 당진항 투묘지, 중국 근해) 코카인을 해상에 투기하면 이를 선박으로 수거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마약상에게 코카인을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기상 악화 등으로 모두 실패했고, 마지막으로 옥계항을 출항한 후 해상 하역을 시도하려던 이들의 계획은 동해해경청과 서울본부세관의 합동단속에 덜미가 잡혔다.
당시 마약 의심 물질을 선박에 싣고 한국으로 입항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동해지방해양경찰청과 서울본부세관은 즉각 4월 2일 L호 선박을 수색해 코카인 의심 물질을 다량 발견했다. 압수한 코카인은 가로 10㎝, 세로 6㎝, 높이 1.7㎝ 크기의 4각 블록 형태의 코카인 1690개다.
비닐 포장지를 제거한 무게는 개당 1㎏으로 순수한 코카인의 총무게는 1690㎏(시가 8450억 원 상당)으로 약 5700만 명이 한꺼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최종 확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