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중국 선전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대만의 내년 APEC 참석 여부를 놓고 미중간 벌써부터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케이시 메이스 국무부 APEC 담당 고위관리는 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외신센터에서 개최한 간담회에서 대만이 내년 선전 APEC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미국이 지원하느냐는 질문에 "APEC의 정말 중요한 특징은 대만이 완전하고 동등하게 참여하는 파트너라는 점이며 미국은 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APEC에 참여하는 21개 경제주체가 중국을 2026년 의장국으로 지지할 당시 중국으로부터 APEC 참여와 관련된 모든 기존 관행과 정책을 따르겠다는 확약을 구했다"면서 "그래서 우리는 중국이 그걸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만이 완전하고 동등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대만 친구들과 계속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전 APEC에서도 대만이 기존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주요 국제 기구나 회의는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를 요구하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해 대만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다만, APEC은 경제주체 역시 대상으로 하는 회의라는 점에서 대만을 '회원국'이 아닌 '회원'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올해 경주 APEC에도 대만은 회원 자격으로 참여했으며, 관례에 따라 대만 총통이 아닌 고위급인 린신이 총통부 선임고문이 대표로 파견됐다. 린 고문은 APEC 회의 참석은 물론 경주에서 별도 기자회견도 열었다.
중국은 대만이 '회원' 자격으로 APEC에 참여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지만, 다른 주요국 정상들이 대만 대표를 만나거나 대만 측이 외교적 활동을 하는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위배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경주 APEC 당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가 린 선임고문과 만난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사진과 함께 "일본과 대만의 실무 협력이 깊어지기를 기대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자 중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중국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 입장문을 통해 "일본 지도자가 APEC 회의 기간 중 대만 당국 관계자들과의 회동을 고집하고 SNS 플랫폼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홍보한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 중일 4대 정치문건의 정신, 그리고 국제 관계의 기본 규범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만 독립 세력에 심각하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는 것이며, 그 성격과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면서 "중국은 이에 단호히 반대하며 일본에 강력한 항의와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엄정한 교섭 제기는 외교 경로를 통한 항의를 뜻한다.
그러면서 "장기간 대만을 식민지로 삼아 온 일본은 대만 문제에 대해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역사적 책임을 지고 있으므로 언행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며 "일본이 잘못을 반성하고 바로잡으며, 중국 내정에 대한 간섭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내년 선전 APEC에서 중국은 대만이 대표를 파견하더라도 경주 APEC에서 처럼 대만 대표가 주요국 정상을 만나거나, 별도 기자회견을 여는 등의 공개 행보를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대만에 대해 '완전하고 동등한 방식으로 참여'를 강조한 미국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향후 양국간 이 문제를 놓고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은 지난 5일 정례브리핑에서 대만의 내년 선정 APEC 참석과 관련해 "대만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지역 경제권으로서 참여하고 관련 APEC 양해각서(MOU)에 명시된 조건과 관행을 준수하는 것이 APEC 참석을 위한 정치적 전제 조건"이라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한편, 경주 APEC 당시 대만 대표에 대한 개최국인 한국의 의전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대만 측이 한국에 항의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만 언론에 따르면 당초 한국 측은 '대만과 한국은 외교 관계가 없다'며 중앙공무원의 공항 영접이 없다고 통보했지만 대만 측의 항의 이후 결국 윤성미 APEC 고위관리회의 의장이 김해공항에 대만 대표를 맞으러 나오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쑨젠위안 대만 외교부 국제기구 국장은 3일 "중국이 대만의 국제행사 참여를 억압·축소하려는 경향이 더 심해지고 있다"면서 중국을 정조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