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산에서 열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만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회담 전인 지난달 24일 아시아 순방길에 오를 때, 시 주석과 만나 대만 이슈를 논의할 것이라고 직접 언급했던 것과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대만 문제를 의제로 정했지만 다른 이슈에 밀려 다루지 못했다는 것으로 들린다.
하지만, 충분히 논의를 해놓고 함구하기로 입을 맞췄을 가능성도 있다. 중국이 스스로 대만 문제를 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은 외국과의 회담에서 늘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을 반복, 공표하려 한다. 각국에 소위 '하나의 중국'을 각인시키는 행위다.
상대가 대만의 후견국인 미국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시진핑이 트럼프를 만나 대만 문제를 전혀 꺼내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중국 국영 신화통신의 정상회담 발표문에도 대만 관련 문구는 포함되지 않았다. '조율된 누락'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양국이 회담 이전 또는 당일에 대만과 관련해 모종의 밀약을 하지 않았나 하는 궁금증까지 생긴다.
의문을 풀 작은 단서는 정상회담 다음날인 10월 31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미중 국방장관 회담에서 보인다.
이 회담에서 피트 헤그세스 미국 전쟁부 장관은 남중국해와 대만 주변에서, 그리고 인태지역 동맹들에 대한 중국의 행동에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그는 "미국은 중국과 갈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회담 뒤 헤그세스는 이런 내용을 SNS 엑스(X, 옛 트위터)에 올렸다.
이 자리에서 둥쥔 중국 국방부장은 "부산 정상회담이 중미관계의 안정적 발전을 위한 전략적 지침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중국 국방부 발표)
아울러 "미국은 대만 독립을 분명히 반대하고, 중국을 억제하지 않으며 충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행동으로 보이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2기 들어 처음 열린 이번 미중 국방장관 대면회담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바로 미국의 '갈등 불원' 의지다.
이것은 트럼프 1기부터 바이든 행정부까지의 이전 8년과 비교할 때 달라진 부분이다.
헤그세스는 앞서 9월 10일 둥쥔과 가진 첫 화상 회담에서도 '갈등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 때는 표현이 훨씬 강력했다.
당시 미국 전쟁부 대변인이 공지한 양국 화상 회담 결과 발표문(readout)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된다.
"헤그세스 장관은 미국이 중국과 갈등을 바라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의 정권 교체나 교살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Secretary Hegseth made clear that the United States does not seek conflict with China nor is it pursuing regime change or strangulation of the PRC.)
'중국과 갈등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은 '대화와 협력을 희망한다'는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눈에 확 띄는 부분은 미국이 중국의 '정권 교체'나 '교살(絞殺, 목졸라 죽임)'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대목이다.
차드 스브라기아(Chad Sbragia) 전 미국 국방부 부차관보는 이런 표현이 '전례가 없으며'(unprecedent) '유일하다'(unique)고 말했다.
중국 전문가인 그는 이런 용어가 미국의 중국정책에서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신문 SCMP 2025년 9년 17일 보도)
간단히 말해, 미국이 대만 문제에서 '자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트럼프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확실히 한 발 물러선 것이다.
트럼프에게는 대만 방위 공약보다 희토류를 포함해 관세와 무역 부문에서 이득을 챙기는 것이 더 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미국 민주당은 이런 변화에 대해 깊이 우려해왔다. 트럼프 2기 들어 대만에 대한 방위 공약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미국 및 동맹의 안보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촉구하는 공식 서한을 미중 정상회담 하루 전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냈다.
서한에는 민주당 상원 원내 대표인 척 슈머, 네바다주 출신의 코르테즈 마스토, 한국계 앤디 김 등 민주당 소속 상원의원 12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7월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의 미국 경유 방문을 허가하지 않은 것도 지적했다.
트럼프는 대만에 대한 4억 달러 (5500억 원) 규모의 무기 지원 패키지도 승인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 신문, 2025년 9월 18일 보도)
이런 변화가 '일시적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단지 시진핑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지 대만 방위 공약에는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군사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력은 나날이 증강되고 있다.
미군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지만 이제는 중국에 한번 밀리면 과거의 군사력 균형을 회복하기 힘들다.
지난 5일 중국은 남중국해를 관할하는 하이난(海南)섬 싼야(三亚) 해군기지에서 세번째 항공모함인 푸젠함(福建舰)을 취역시켰다.
새 항모는 처음으로 캐터펄트(사출기)를 장착했다. 중국도 스키점프대 모양이 아닌 평평한 갑판을 가진 항공모함의 건조에 성공한 것이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푸젠함에 올라 사출기의 버튼을 직접 눌러 함재기를 발진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전쟁부는 지난 10월 24일, 제럴드 포드 항공모함 타격단과 탑재기를 남부사령부 책임지역으로 파견한다고 발표했다.
남부사령부는 카리브해를 포함해 남아메리카를 관할한다. 즉, 미국이 베네수엘라 응징에 항모를 투입한 것이다. 명분은 마약 유입 차단이다.
당시 전쟁부 대변인은 "국토방위 차원에서 초국가적 범죄조직을 뿌리뽑고 마약 테러를 응징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외교 잡지 '포린폴리시'에 게재된 11월 3일자 글에 따르면, 미국의 베네수엘라 영토에 대한 공격은 이미 카운트다운에 돌입했다.
카리브해에는 이미 미국 군함 10척과 병력 1만 명이 배치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포린폴리시는 이번 군사작전의 명분상 이유는 마약 원점 타격이지만, 진짜 목적은 베네수엘라 및 쿠바 정부를 붕괴시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포드 항공모함의 카리브해 배치는 미군 군사력을 본토 방어에 우선 투입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새 접근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불법 이민자 유입 차단과 마약 공급 국가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 미군의 중요한 임무다.
미국의 목표가 일부 중남미 국가의 정부를 아예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전쟁은 복잡해질 수 있다.
주목할 점은 미군의 본토 방어 임무가 증가할수록, 세계질서 유지라는 미국의 기존 역할은 축소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적 확장과 유럽에서 러시아의 침공 위협은 더 가속화되고 일상화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아시아의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다수의 콘크리트 인공섬을 구축해 요충지마다 접안시설과 미사일 기지, 비행장 등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만 주변에서는 중국 전투기와 무인기가 대만의 방공식별구역은 물론 미국이 그어놓은 중간선을 거의 매일 넘나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갈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공표한 것은 앞으로 이런 현상에 적극 대응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더구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이제 군함도 잠수함도 제대로 건조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늦게나마 우리 정부가 원자력 추진 잠수함의 확보와 작전권 회복 등에 적극 대처하는 것은 다행이다.
철저히 준비된 국가에게는 국제정세의 전환기가 오히려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강성웅 국제정치 칼럼니스트
- 전 YTN베이징 특파원, 해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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