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임기 5개월 만에 제1야당 대표가 '탄핵'을 주장하고 나섰다.
소수야당의 현실을 감안하면 검찰의 대장동 일당 항소 포기 사태를 따져 묻기 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당내에선 초강수를 조기에 써 버리면서 앞으로 동원 가능한 카드가 바닥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번 사태에서 그동안 국민의힘 지도부의 역할이 비교적 부각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초강수를 통해 당장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것 아니냐는 혹평도 나왔다.
장동혁 "국조로 '윗선' 증명되면 李 탄핵"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11일 대검찰청 앞 규탄대회에서 "엉망으로 망가지는 대한민국을 구할 방법은 딱 하나"라며 "이재명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뿐이다.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 이재명을 탄핵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가 그동안 '탄핵 사유'라거나 어떤 전제를 들어 '탄핵 대상'이라고 표현한 적은 있었지만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을 명시적으로 밝힌 건 정권 교체 후 처음이다.
물론, 공식 회의나 연단보다 장외에서 규탄사를 외치다 보면 통상 발언이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장 대표도 이날 오후 취재진이 '대통령 탄핵'을 다시 묻자 "대통령의 책임이 있는지는 국정조사,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며 수위를 낮췄다.
이와 관련, 복수의 장 대표 측 관계자는 이 발언의 방점이 '탄핵'보다 '국정조사'에 찍혀 있다고 주장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국정조사에서 윗선 또는 이 대통령 지시가 드러날 경우 탄핵으로 가겠다는 것"이라며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전에 무조건 국정조사를 관철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당의 다른 관계자도 "강한 워딩을 통해서라도 사안의 심각성을 국민에 알리고, 지지층과 중도층의 시선을 끌 필요가 있다"면서 "민주당도 '할 테면 한번 해 봐' 이런 식이니까 장 대표로서는 조금 더 격하게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거대여당은 시큰둥
문제는 말과 현실의 간극이다. 현재 국민의힘 의석(107석)만으로는 대통령 탄핵(200석)은 물론 장관 탄핵(150석) 등을 소추하기 역부족이다. 제1야당 대표의 탄핵 주장이 당 안팎에서 뜨뜻미지근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그런 탓에 여당에서도 지도부 차원의 즉각적 대응보다는 원외 대변인 논평 수준으로 받아칠 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박경미 대변인 명의 논평에서 장 대표 발언을 "정쟁을 위한 극단적 언어폭력"이라고 깎아내렸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전략적 미스'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당의 또다른 관계자는 "항소 포기 직후 장 대표 메시지는 타이밍도 늦었고 내용도 뜨뜻미지근했다"며 "사흘 지나 갑자기 '이재명 탄핵'으로 급발진해버리면 빌드업이 전혀 안 된 채 오버하는 느낌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탄핵은 정치의 영역인 만큼, 먼저 특검·국정조사로 최대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범위부터 차근차근 가야 한다"며 "그런데 '대통령 탄핵'이 나와 버리면 넓게 지지받을 수 있는 부분을 다시 좁히는 효과가 있다. 순서가 꼬였다"고 평가했다.
최전선에 한동훈?…존재감 의식했나
일각에서는 장 대표가 보수진영 내 존재감 과시를 위해 조급했던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수도권 지역 한 의원은 "국민의힘 소속 의원으로는 탄핵소추안 발의도 어려울 것"이라며 "다만 이런 발언에 '시원하다'고 느끼는 지지층에 소구할 메시지를 준비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친한동훈계 한 의원의 경우 "한동훈 전 대표가 이슈를 선점했기 때문에 장 대표로서도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장 대표가 하필 이 무렵 광주에 방문하고,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환히 웃는 사진을 노출해 강성 지지층이 갸웃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반작용으로 강경 메시지를 택한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