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자산'이 아닌 '권리'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담은 책 '민달팽이 분투기'는 반지하·옥탑방·고시원 등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집다운 집'을 찾아 분투하는 청년 세입자들의 현실을 생생하게 기록한 주거권 르포다.
저자 지수는 청년 주거권 단체 '민달팽이유니온'에서 활동하며 10년 가까이 세입자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현장 활동가다. 그는 책에서 "집 없는 청년의 불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라고 말한다. 청년의 80% 이상이 세입자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집은 더 이상 미래의 목표가 아닌 '지금 여기의 생존'이기 때문이다.
'민달팽이 분투기'는 전세 사기, 불법 중개, 고시원 생활 등 현실적인 사례를 통해 세입자의 권리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감정가보다 부풀린 집값으로 청년을 속인 전세 사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파산을 고민하는 피해자, 그리고 "보증보험으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냉정한 중개 현실이 이어진다. 저자는 이 반복되는 비극이 "청년의 부주의가 아니라, 세입자를 보호하지 않는 제도의 결과"라고 단언한다.
책은 또한 한국 사회의 '소유 중심' 주거 구조를 비판하며, 공공 임대 확대와 주택의 탈상품화 등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촉구한다. 저자는 "청년 주거권은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며 "평생 세입자로 살아도 괜찮은 사회를 상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달팽이집'에서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좁은 공간에서 함께 돌보고 돕는 이들은 세입자도 존중받을 수 있는 주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가 나로 있을 수 있는 곳,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 그것이 진짜 집"이라는 문장은 이 책이 지향하는 '관계의 주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달팽이 분투기'는 "집은 인권이다"라는 선언을 넘어,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주거 질서를 바꾸기 위한 세입자들의 투쟁 기록이자, 집을 다시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자리로 되돌리려는 시대의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