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해임을 반대하며 복귀를 요청하고, 민 전 대표 없는 어도어는 의미가 없어 돌아갈 수 없다며 민 전 대표와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였던 그룹 뉴진스(NewJeans)가 법정 싸움에서 줄줄이 패소하자 결국 '민희진 없는 어도어'에 전원 복귀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민 전 대표는 지난달 새로운 연예기획사를 세워 새출발을 예고해 각자의 길을 가게 됐다.
기본적인 프로필 공개도 생략한 채 '어텐션'(Attention) 뮤직비디오를 깜짝 공개해 2022년 7월 가요계에 등장한 뉴진스는 데뷔 직후부터 큰 인기를 누렸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경쟁사인 하이브로 자리를 옮기고, 산하 레이블 어도어를 이끌게 된 민희진 대표이사가 처음으로 만든 걸그룹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도가 높았다.
뉴진스는 데뷔 초부터 소속사 대표인 민 전 대표와의 '특별한 애착 관계'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특징이 있다. 민 전 대표는 본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뉴진스와 일상을 함께 보낸 사진을 자주 올리곤 했다. 멤버들에게 받은 자필 편지나 메신저 대화 내용을 비롯해 멤버 부모에게 받은 편지까지 공개했다.
나아가 민 전 대표는 다양한 매체에서 뉴진스 제작 과정과 배경, 어도어 대표로서 가치관 등을 적극적으로 밝히는가 하면, tvN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본인을 '엄마' 위치에 두고 발언을 이어 갔다. 그는 "출산한 기분이 든다"라고 했고, 하니 부모님으로부터 하니의 '한국 엄마'라고 불렸다는 일화를 전했다.
단순한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일상에서도 긴밀하게 정서적 교류를 한다는 것을 부각해, 서로 일반적인 제작자/대표와 소속 가수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한 행보였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뉴진스가 지나치게 민 전 대표에 의존하는 관계는 오히려 건강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염려가 나온 바 있다.
지난해 4월 하이브가 '경영권 탈취' 등을 이유로 감사에 착수해 민 전 대표를 해임하려고 하자, 민 전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으로 맞불을 놨다. 민 전 대표는 "뉴진스랑 저는,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관계 상상 그 이상이다. 저희는 서로 위로를 받는 사이다. 애들이 얼마나 착하냐면 사랑한다고 맨날 보낸다"라며 뉴진스와의 '특별한 관계'를 재차 강조했다.
그해 8월 어도어 이사회에서 민 전 대표가 실제로 해임되자 뉴진스는 9월 긴급 라이브 방송을 통해 민 전 대표의 '대표이사 복귀' 및 제작과 경영을 총괄하는 이전 어도어로 돌아올 것 두 가지를 요구했다. 다니엘은 "인간적인 측면에서 민 대표님을 그만 괴롭히셨으면 좋겠다. 솔직히 대표님 너무 불쌍하다. 하이브가 그냥 비인간적으로 보인다"라고 일갈했다.
같은 해 11월 뉴진스 멤버들은 어도어가 전속계약을 중대하게 위반해 전속계약을 해지한다는 긴급 기자회견을 할 때도 '민희진과 함께' 가고 싶다는 바람을 일관되게 밝혔다. 민지는 "가능하다면 당연히 민희진 대표님과 함께 계속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라며 "민희진 대표님과 앞으로도 좋은 활동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또한 민지는 "민희진 대표님을 보고 정말 많은 용기를 얻었다. 그간 일하면서 봐온 대표님은 항상 가장 바쁘게 일하셨고 그만큼 좋은 분들이 늘 옆에 계셨다. 또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선례를 만들고 싶다는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이 정말 저에게 크게 와닿았고 큰 용기가 됐다"라고도 했다.
올해 3월 어도어가 뉴진스를 상대로 낸 '기획사 지위보전 및 광고계약 체결 등 금지' 가처분 심문기일 때, 뉴진스는 자진해서 민 대표와 '한 팀'임을 강조했다.
다니엘은 "저희 팀에는 항상 (민희진) 대표님도 포함돼 있다. 저희는 다섯 명이서 무대에 서지만 (민 전 대표까지) 여섯 명으로 이루어진 팀"이라며 "대표님께서 공격당하고 말도 안 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는데, (민 전 대표를) 잃게 될까 봐 두려웠다. 앞으로도 대표님과 함께하고 싶다"라며 울먹였다.
혜인은 "현재 어도어는 어떤 순간에도 저희 다섯 명을 늘 존중해 주신 민희진 대표님이 아닌, 저희 의견을 묵살하던 하이브 사람들로 경영진이 바뀌었다. 민 대표님 없이 거짓된 상황 속 진정성 없는 작업물로 대중에게 다가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민희진 없는 어도어'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해온 뉴진스는 가처분 소송에서 졌고, 이의를 제기했으나 항고마저 기각됐다. 어도어가 뉴진스를 상대로 제기한 전속계약 유효 확인의 소에서도 1심 재판부는 뉴진스의 주장을 '이유 없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뉴진스는 본안 소송 역시 패소했다.
1심 선고 직후 뉴진스는 즉각 항소하겠다는 방침이었으나, 해린·혜인을 시작으로 민지·하니·다니엘까지 어도어로 복귀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민지·하니·다니엘은 공식입장에서 "어도어가 회신이 없어 부득이하게 별도로 입장을 알리게 되었다"라며 어도어에 책임을 지우는 내용을 담았다. 어도어 역시 "세 명 멤버 복귀 의사에 대해 진의를 확인 중"이라는 답을 내놔 미묘한 기류를 노출했다.
전속계약 해지 통보 이후 1년 만에, 결국 뉴진스는 '민희진 대표 없는' 어도어에 복귀할 수순을 밟고 있다. 그에 앞서 이미 지난달 말 민 전 대표의 새로운 연예 기획사 설립 소식이 나왔다.
민 전 대표는 '오케이'(ooak)라는 기획사를 설립해 지난달 16일 법인 등기를 마쳤다. 연예인 매니지먼트 대행업, 음악·음반 제작·음악 및 음반유통업, 공연 및 이벤트기획 제작업 등이 사업 목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는 지난해 8월 어도어 대표이사에서 해임되고 나서 '본업'과 관련한 첫 행보다. 민 전 대표는 지난달 24일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Only One Always Known'이라는 문구와 '오케이'라는 브랜드 로고 스케치를 올렸다.
결국 뉴진스와 민 전 대표는 각자의 길을 택했다. 서로 '공고함을 부각하던' 관계에 균열이 발생한 모양새여서 향후 양측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