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사천에서 영화 '승부'의 현실판이 재현됐다. 영화 '승부'는 바둑 레전드 조훈현과 그의 제자 이창호의 승부를 배경으로 한 실화 바탕의 바둑 영화다.
이창호 9단이 17일 영화에서처럼 다시 한번 스승 조훈현 9단을 꺾었다. 이날 승리로 이 9단은 조 9단이 보유 중인 대한민국 바둑 통산 최다승 기록에 1승 차로 다가섰다. 2천승 달성의 역대급 기록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그는 사천시 항공우주 과학관에서 열린 '2025 사천 방문의 해, 스페셜 매치'에서 조 9단에게 173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대국 초반 조 9단은 속력행마로 최하귀 우세를 먼저 잡았다. 그러나 중·후반에 접어들자 '계략의 신'으로 통하는 이 9단의 끝내기가 빛을 발했다. 중앙에서 느슨한 수가 등장하자 몇 수 만에 형세가 뒤집혔다. 이 9단은 실수 없는 마무리로 스승을 또 다시 이겼다.
이창호, 조훈현 상대 11연승… 스승에 대한 예우 "운 좋게 승리"
이번 대국 결과로 이 9단은 통산 1967승 1무 814패를 달성했다. 지난달 6일 열린 슈퍼컵 레전드 매치에서도 승리하는 등 조 9단과의 대국에서 11연승을 따냈다. 특히 이 9단은 조 9단이 보유한 최다승 대기록에 1승만을 남겨두게 됐다. 또 조 9단과의 상대 전적에서도 197승 119패로 앞서 나갔다. 조 9단은 1968승 9무 850패를 기록했다.
이 9단은 1986년 8월 입단 후 제62회 승단대회에서 조영숙 당시 초단에게 첫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2000년 10월 당시 안조영 6단에게 1천승을, 2010년 1월 최철환 9단에게 1500승을 달성한 바 있다.
이 9단은 이날 대국 직후 "초반에 모양이 좋지 않아 불리하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승리할 수 있었다"고 겸손한 소감으로 스승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조훈현 "이창호? 내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 이창호 "스승 없었다면 이 정도의 실력 얻지 못했을 것"
조 9단과 이 9단은 이번 대국 전 서로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해 훈훈함을 더했다. 조 9단은 "(이 9단을) 제자로 들여 세계 일류의 프로기사로 키워냈지만, 덕분에 바둑을 비롯한 모든 부분에서 다시 한번 배운다. 이제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이 9단을 추켜 세웠다.
이 9단은 "조 9단의 내제자(內弟子)가 됐기에 생각지도 못한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조 9단이 없었다면 이 정도의 실력과 명성은 얻지 못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번 대결은 제한 시간 각자 30분에 초읽기 40초·5회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