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 왕세자가 오는 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실감케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실권자인 빈 살만 왕세자는 국가 원수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실무 방문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에 이어 여러 환대 행사는 물론 이스트룸에서 열리는 공식 만찬에도 초청되는 등 국빈급 예우가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방산업계의 '큰손'인 사우디는 미국의 오랜 전략적 동맹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난 2018년 10월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을 계기로 관계가 소원해졌다.
자말 카슈끄지는 반정부적인 인물로, 빈 살만 왕세자를 비판해온 것으로 유명했다.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2일, 혼인신고를 위해 주(駐) 튀르키예 사우디 총영사관에 갔다가 사우디 정보요원들에 의해 살해됐고, 배후로 사우디 왕가가 의심을 받았다.
이에 2020년 10월 카슈끄지의 약혼녀는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암살 지시자로 지목하고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도 미 정보당국이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빈 살만을 지목한 것을 근거로 사우디를 왕따로 만들겠다고 공언하는 등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빈 살만이 암살 배후로 지목된 것과 관련해 "그를 믿고 싶다", "사우디는 중요한 파트너"라며 그를 옹호했다.
결국 미 연방법원은 2022년 12월 "빈 살만 왕세자가 카슈끄지 살해 지시를 내렸다는 원고측 주장이 믿을만하다"면서도 "사우디 총리이기도 한 빈 살만 왕세자가 외국 지도자로서 면책특권을 지닌다는 미국 행정부의 입장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올해 초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첫 해외 순방지 중 하나로 사우디를 선택하며 본격적인 관계 개선에 나섰다.
당시 양국은 1420억달러 규모의 무기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빈 살만 왕세자의 이번 방미는 2018년 카슈끄지 암살 사건 이후 처음으로, 전문가들은 "빈 살만은 중동 지역 지도자이자 세계적인 인물로서 대규모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에 왔다"며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고, 분명히 빈 살만의 개인적인 승리라고 칭할만 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사우디는 수년간 미국의 F-35 전투기 구매에 관심을 보여왔다. 이번 방미를 계기로 이를 포함해 상호방위 관련 추가 협력 분야가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취재진으로부터 '사우디에 F-35 전투기를 판매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그렇게 하려고 한다"고 답했다.
다만 F-35 수출에 이스라엘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일각에서는 F-35가 사우디에 판매될 경우 중국이 해당 기술을 취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 최대 외교 치적인 '아브라함 협정'을 확대해 사우디와 이스라엘 간 국교 정상화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해법을 놓고 평행선을 걷고 있어, 이번 방미를 계기로 추가 협정이 체결될 가능성은 낮은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사우디와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선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아들이 이끄는 트럼프 그룹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트럼프 브랜드로 부동산 건설을 계획 중이다. 아울러 빈 살만 왕세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의 사업 파트너이기도 하다.
트럼프 일가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이해상충 논란'이 여기에도 있는 것이다. 크리스 머피(민주·코네티컷) 미 상원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위를 활용해 외국 독재 정권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보상을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