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 : 손성경 PD
■ 진행 : 김세환 교수
■ 대담 : 해뜰마을어린이도서관 석은자 관장님, 서현석 전 관장
◇김세환: 안녕하세요. <인터뷰 오늘> 김세환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월간 코너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 줄여서 '우동소' 첫 시간입니다. 저출생과 인구 감소로 '지역이 사라지는 시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요즘, 대안을 멀리서 찾기보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부터 찾아보자는 취지로 마련했습니다.
첫 번째 주제는 '공동육아, 아이를 키우는 마을'입니다. 출산율이 낮아지면 학교는 문을 닫고, 마을은 텅 비게 되죠. 반대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함께 아이를 키우는 마을은 지역을 살리는 첫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대전 관저동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 이야기를 통해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확장되는지 들어보겠습니다.
이 시간은 대전CBS와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라디오제작단이 함께하는 시민 참여형 라디오입니다.
두 분 모셨습니다.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 석은자 관장님, 서현석 전 관장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서현석: 안녕하세요.
◆석은자: 안녕하세요.
◇김세환: 두 분은 전·현직 관장이신데, 같은 마을에 오래 사신 거죠?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현석: 안녕하세요. 저는 1999년부터 관저동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고요. 아이 키우면서 우연히 해뜰마을도서관을 알게 되면서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석은자: 저는 관저동에서 '오달님'으로 불리는 석은자 관장입니다. '오늘도 달리는 석은자' 해서 오달님인데요, 지나가면 "오달님~" 하고 인사해주시는 주민들이 많습니다. 관저동에서 산 지는 20년이 훌쩍 넘었고, 신혼부터 지금까지 쭉 이 동네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김세환: 관저동, 청취자들께는 어떤 동네인지 조금만 그려주신다면요?
◆서현석: 관저동은 초·중·고·대학교까지 다 있는, 대전에서도 드문 구조의 동네예요. 예전에는 이름도 낯설었는데, 지금은 '공동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젊은 도시입니다. 마을신문,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 에너지자립마을학교, 청소년 오케스트라, 사회복지관 등 함께 뭔가를 하는 단체들이 굉장히 많은 곳입니다.
◇김세환: 그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온 곳이 바로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인데요. 어떤 곳입니까?
◆서현석: 해뜰마을도서관은 2006년 엄마들 예비모임에서 시작됐고, 2007년 4월 정식 개관했습니다. 지금은 비영리 민간 어린이도서관으로, 주민들의 자원봉사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김세환: 만들어진 계기가 참 인상적이더군요.
◆석은자: 네, 2006년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비 오는 날 놀이터에서 놀던 9명의 엄마와 아이들이 비를 피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비 오면 못 놀고, 눈 오면 못 놀고.. 날씨에 상관없이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 작은 고민이, 마을 안에 아이들 공간을 만들자는 꿈으로 커졌고 그게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의 시작이었습니다.
◇김세환: 이 도서관이 단순한 책 읽는 공간을 넘어서, 마을의 상징처럼 자리 잡게 된 계기도 있다면서요?
◆석은자: 저희가 자랑하는 것 중 하나가 '태양지공 도서관'입니다. 2011년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하고, "태양빛으로 책을 본다"는 의미를 담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절전소 운동'을 했습니다. 가정에서 전기를 아껴서 나온 절감액을 나누고, "우리가 아낀 전기로 누군가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실천했죠. 이 모델이 전국 6호, 7호 도서관으로까지 확산됐고, 아이들과 주민들이 "작은 실천으로 지구를 돕는다"는 자부심을 경험했습니다.
◇김세환: 프로그램들도 참 다양하더라고요.
◆서현석: 아이들을 위한 책놀이, 한 달에 한 번 구봉산을 함께 걷는 자연탐험대, 여름캠프도 했고요. 주변 어린이집 아이들이 오면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 아이들 신문 기자 활동 같은 시도도 있었습니다.
◇김세환: 이런 활동들이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어떤 변화를 줬나요?
◆석은자: 그때는 전집 구매가 유행이었어요. 빚내서 천만 원, 이천만 원씩 사던 시절이죠. 그런데 도서관에서 '그림책 읽는 엄마 모임'을 하면서 "전집이 전부는 아니구나"를 많이 깨닫게 됐습니다. 작가와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유행이 아니라 우리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책을 고르게 되고, 불필요한 지출은 줄고, 아이들은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 읽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엄마들은 "내가 공부하면, 아이가 바뀌는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요.
◆서현석: 어른들을 위한 동아리도 많았어요. 책놀이 교사 모임, 역사 모임, 사서봉사 모임, 절전소 모임, 그림책 연구모임 등이 활동들이 어른들의 세상을 보는 눈도 넓혀줬고, '마을이 나를 키운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습니다.
◇김세환: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돈도 필요하죠. 운영은 어떻게 버텨오셨습니까?
◆석은자: 지금도 그렇고요, 거의 대부분이 5천 원, 1만 원씩 십시일반 모아주시는 후원금입니다. 20년 가까이 꾸준히 후원해 주시는 주민들이 계시고, 마을 안 공모사업에 직접 도전해서 난방비, 프로그램비를 조금씩 마련했습니다. 일반 주부들이 공모사업 서류를 쓰고, 예산안을 짜고.. 그 자체가 하나의 배움이기도 했어요.
◆서현석: 한 달 운영비가 난방비, 관리비까지 합쳐서 70만~80만 원 정도 듭니다. 서구청에서 공간을 무상 임대해주고, 대전시에서도 작은도서관 공통으로 도서구입비·냉난방비 등을 조금씩 지원해주고 있어서 그 도움으로 겨우겨우 버텨온 거죠.
◇김세환: 그러다 이용자가 확 줄어든 시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서현석: 네. 2014년쯤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이 확대되면서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 많이 이동했어요. 그러면서 공동육아 공간의 필요성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이용자가 줄었습니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모임이 완전히 끊어졌죠. 이용이 줄면 후원도 같이 줄어들고, 예전에는 100만 원 넘게 들어오던 후원금이 절반, 3분의 1로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돌봄 공모사업 같은 걸 이어가면서 겨우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석은자: 저는 코로나를 위기이자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가 단절되는 위기이기도 했지만, "아, 이 시기를 넘어서 다시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절실함을 확인한 시간이었거든요. 마스크가 부족할 때, 도서관 활동가들이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연결돼 함께 마스크를 만들고, 어려운 가정에 전달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연결되어 있어야 산다,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걸 다시 깊이 느꼈고 그게 공동체를 다시 잇는 계기가 됐다고 봅니다.
◇김세환: 아이들 공간으로 시작한 해뜰마을도서관, 지금은 어떤 모습인가요?
◆석은자: 이제는 남녀노소 전 세대가 함께하는 도서관이 됐습니다. 어르신들이 할머니·할아버지 역할을 해주시고, 엄마·아빠들은 자원활동으로 참여하고,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자라죠. "이분들은 뭘 원하실까?" 귀 기울이다 보니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다양해졌습니다. 아이들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마을 전체를 품는 공간으로 확장됐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서현석: 운영 주체도 예전엔 엄마들이 중심이었는데, 이제는 은퇴하신 선생님들, 시니어클럽, 순회사서 선생님들도 함께합니다. 코로나 이후 다시 엄마들 동아리도 조금씩 살아나고 있고요. 운영 주체도, 이용자도 다양해지다 보니 도서관이 해야 할 역할도 계속 진화하는 중입니다.
◇김세환: 해뜰을 모델로 삼아 대전 곳곳으로 확산된 공동체들도 있다고요?
◆석은자: 네.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처럼 마을도 품고, 어린이도 품고, 책과 공간을 함께 품겠다는 의미의 작은도서관이 대전에 지금 16곳이나 생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전 마을 어린이 작은도서관 협의회'를 만들었고, "슬리퍼 끌고 10분 안에 갈 수 있는 도서관"을 목표로 각 동마다 도서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관저동 안에는 '관저공동체연합'도 있어서 품앗이, 마을신문, 여러 협동조합과 함께 주민 참여와 변화를 만들어가는 연대 구조가 형성됐습니다. 저는 그 연대와 협력의 구조가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김세환: 비 오는 놀이터에서 시작된 작은 바람이 도서관을 만들고, 16개의 도서관과 여러 공동체를 탄생시킨 셈입니다. 두 분은 이 과정에서 관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어떤 걸 느끼셨나요?
◆서현석: "나 하나는 작은데, 우리는 굉장하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한 번 해보는 건 반짝으로 끝날 수 있는데, "한 번 더 해볼까?", "이거 괜찮은데, 또 하자" 이런 시도가 쌓이면 그게 변화가 되고, 그 변화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일상이 되더라고요. 작은 시도들이 모여서 마을 풍경을 바꾸는 힘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석은자: 저는 민주주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마을 안에서 풀뿌리의 한 가닥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고요. 또 '사회적 자본'이라고 하잖아요. 호혜성, 신뢰, 서로에 대한 사랑이 쌓이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저동에서 그런 사회적 자본을 쌓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고,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그 '발버둥'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소중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 "민주주의가 이런 거구나, 서로 믿고 사랑하는 게 행복이구나"를 몸으로 느끼며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김세환: 내가 살기 위해선, 당신이 먼저 살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저출생과 지역 소멸의 시대, 마을의 힘이 곧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해뜰마을 어린이도서관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 첫 시간이었습니다. 비 오는 놀이터에서 시작된 엄마들의 작은 바람이 도서관을 만들고, 공동체를 키우고, 동네의 미래를 붙잡는 힘이 되었습니다. 서은자 관장님, 서현석 전 관장님, 귀한 이야기 고맙습니다.
◆석은자: 감사합니다.
◆서현석: 감사합니다.
◇김세환: <우리 동네를 소개합니다> 이 시간은 대전CBS와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 라디오제작단이 함께하는 시민 참여형 라디오입니다. 다음 달에도 또 다른 동네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