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엡스타인 문서' 공개 법안이 미 상·하원을 사실상 만장일치로 통과한 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서명만을 남겨놓고 있지만, 이 법이 발효되더라도 공개 여부와 관련한 법무부의 재량 범위가 넓어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전날 미 하원은 찬성 427 대 반대 1로, 상원은 만장일치로 해당 법을 가결 처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미 의회가 압도적으로 해당 법을 통과시키면서 심적 부담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으로 이 법이 발효되면 법무부는 비밀이 해제된 문서를 30일 이내에 공개해야한다. 또한 해당 문서는 검색 및 다운로드가 가능해야한다. 피해자 정보 등에 대해서는 삭제가 가능하지만 삭제된 내용을 요약한 추가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해야한다.
문제는 법무부가 공개하지 않거나 삭제할 수 있는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피해자의 정보, 아동 성착취가 포함된 정보, 진행중인 수사를 방해할 수 있는 정보, 사망 및 학대 관련 이미지 등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법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엡스타인과 특정 민주당 인사들의 관계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라고 한 것을 두고도 '진행중인 수사'라는 이름표를 붙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법무부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자료를 공개했을 때도 '재량권'을 넘어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 2월 법무부는 엡스타인 관련 문서 일부를 공개했지만, 대부분 이미 알려진 내용이었다. 여기에는 비행기 탑승 기록, 연락처, 마사지사 명단 등이 들어있었다.
특히 법무부와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지난 7월 "엡스타인이 저명 인사들을 협박했고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에 대한 증거는 없고 리스트도 없다"는 내용의 두 장 분량 서류만 공개하면서 마가(MAGA·트럼프 핵심 지지층) 진영을 폭발시켰다.
최근에는 미 의회가 법무부로부터 받은 '엡스타인 이메일'이 수천개가 공개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일부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마가 진영의 목표는 엡스타인의 2019년 연방 기소 과정에서 FBI가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내용과 그와 관련된 메모를 공개하는 것이다.
결국 법무부가 어느 선까지 문서를 공개하느냐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엡스타인과의 연루설이 끊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고 "민주당의 사기극"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서 공개로 인해 엡스타인의 범죄 사실은 물론 그의 '네트워크'가 만천하에 드러날 경우 '칼 끝'이 누구를 겨눌지 모르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억만장자 엡스타인은 2019년 미성년자 성 착취 혐의로 수감 중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사후 '엡스타인 음모론'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엡스타인이 미국 정재계 거물들에게 성접대를 했다는 의혹, 여기다 구체적인 리스트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에 마가들은 지난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가 재집권할 경우 '엡스타인 리스트'를 공개해 기존의 '정치·경제 기득권 세력'을 타파해줄 것을 기대했다.
본인도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당시 트럼프는 이를 전면 부인하면서 재집권시 엡스타인의 사건과 관련된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엡스타인에 대한 사건 기록과 수사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마가 진영 내에서도 거센 불만이 터져나온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