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자 22명이 발생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참사 8년 만에 필리핀인 생존자가 처음으로 증인 자격으로 한국 법정에 섰다. 증인은 "당시 선체에 문제가 없었지만 폭발음을 듣고 5분 만에 탈출한 직후 배가 침몰했다"고 증언했다.
부산고법 형사1부(김주호 부장판사)는 20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스텔라데이지호 선사 폴라리스쉬핑 대표 김완중(70)씨와 임직원 6명에 대한 항소심 증인 신문 기일을 열었다.
이날 증인으로는 당시 선원으로 탑승해있다 생존한 필리핀인 A씨가 출석했다.
증언대에 선 A씨는 "사고 당시 상갑판에서 작업 중 터지는 것 같은 폭발음을 들었다"며 "안내방송은 없었지만 스스로 판단해 구명조끼를 입고 선교로 올라가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말했다. 탈출 당시 선박은 왼쪽으로 기울어진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바다에 뛰어든 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땐 배가 이미 사라져 있었다"고 했다.
이날 증인 신문에서는 A씨가 탈출까지 걸린 시간이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A씨는 당시 작업 중이었던 상갑판에서 '머스터스테이션'(선박의 비상 집결 장소)을 들렸다가 선교로 올라가 바다로 뛰어드는 데까지 5분가량이 소요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 경로는 날씨가 좋을 경우 1분 정도 걸린다"며 "5분이 걸렸다는 것은 직접 잰 것이 아니라 직감으로 느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소심에서 피고인 측은 "중앙해심원이 발표한 침몰 경위 추정 보고서는 당시 선원과 간부들간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바탕으로 5분 이내에 배가 침몰했다고 가정했지만 이는 잘못됐다"며 "선박 침몰까지 15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A씨는 "구조 당시 배 상태가 정말 나빴다고 말했던 것은 선박이 아닌 해치 커버(선박 짐칸의 개구부를 덮을 수 있도록 마련된 장치)가 불안정했다는 의미였다"며 "선박 상태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선사 측으로부터 합의금을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지난 2017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 국정감사에서는 선사 측이 생존자 1명 당 합의금 5600만 원을 지급했다는 내용이 언급된 바 있다.
한국에 와서 선사 측 사람과 만난 적 있냐는 검사 측 질문에 A씨는 공판 전날 폴라리스쉬핑 측 인물을 만났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다음 기일은 내년 1월 22일 열릴 예정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대책위원회는 선사 측이 선원들 사망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침몰까지 15분 이상 걸렸다고 말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대책위 관계자는 "8년 동안 선사 측은 5분 이내 침몰했다고 주장해오다 갑자기 말을 바꿨다"며 "침몰까지 15분 이상 걸려 선원들이 탈출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기 때문에 선원 사망에 대해 선사 측 책임이 없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1심을 맡은 부산지법 형사5부는 선사 대표 김씨에게 금고 3년형을, 전 해사본부장과 공무감독은 각각 금고 2년,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선사 임직원 4명에게는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유죄를 선고한 피고인들에게는 스텔라데이지호 선체 바닥에 빈 공간으로 둬야 할 곳(보이드 스페이스)을 폐수 보관창고로 사용해 부식을 가속화했고, 도장 탈락이나 부식 등 선체 변형이 보고됐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지난 2017년 3월 26일 철광석 26만t을 싣고 남대서양 해역을 지나다가 침몰했다. 이 사고로 선원 24명 가운데 22명이 실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