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무대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계신다며…"
고(故) 이순재와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후배들이 생전 그의 연기 열정과 숨은 비화를 다시 한번 전했다.
카이는 28일 방송된 MBC 추모 특집 다큐멘터리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 졌습니다'에서 고인과 마지막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2024)' 무대에 섰던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공연 때마다 '여기를 더 이렇게 해볼까', '오늘 더 망가져볼까' 라며 몸으로 행동으로 짜오시면서 제게 던지시는 모습을 경험했다"며 "관객들의 반응과 웃음 속에서 선생님이 더 큰 에너지를 얻으시더라. 선생님께서 무대에 계실때가 살아계시는 것 같았다. 정말 무대를 사랑하셨다"고 강조했다.
연극 일정이 이어지며 고인의 몸 상태가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말씀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악화돼 공연 제작사 대표까지 눈물을 보이며 공연을 취소하자며 만류했다고 한다.
카이는 "선생님께서 관객들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말씀을 계속하셨고 제게도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며 "약 한 시간 반 정도의 공연에서 대사를 놓침 없이 마치시고 바로 그 길로 응급실로 가셨다"고 말했다.
전광렬은 드라마 '허준(1999)' 촬영 당시를 떠올리며 "그렇게 춥고 고생스러우신데도 단 한마디의 불평도 안 하셨다"고 전했다.
당시 허준의 스승 유의태를 연기한 고인은 짧은 장면이지만 작품의 사실성과 인물의 감정을 살리기 위해 16시간 동안 한겨울 바닥에 누워있었다고 한다.
전광렬은 "그렇게 계신 모습을 봤을 때 후배로서 굉장히 좀 어떤 언어로써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가슴 뭉클한 그런 부분이 있었다"고 떠올렸다.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정준하는 "아직도 아버지(故이순재)가 손을 꼭 잡아 주신 게 기억난다"며 "아버지 손이 되게 두툼한데 잊을 수 가 없다. 감정에 몰입하는 진지한 눈빛이 저를 되게 편하게 해주셨다"고 말했다.
소유진도 "배우로서 연극 리어왕을 하는 게 소원이었다고 하셨는데 87세에 꿈을 이뤘다고 하셨다"며 "필생의 역작이 된다며 너무 신나서 하시는 모습에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3시간 공연인데 2시간 이상이 선생님 대사였다"고 밝혔다.
이어 "셰익스피어 번역이다 보니 선생님이 그 대사를 영어로도 외우고 계셨다"며 "단어에는 이 뜻도 있으니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고 하셔서 다들 멋있어했다"고 덧붙였다.
오만석 역시 "연세가 드시고 하면 쉽게 쉽게 편하게 가실 수 있는 선택도 있는데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열정적으로 하나하나 짚어서 하셨다"며 "시간이 지났는데 선생님 에너지가 더 많아졌다. 거대한 배우가 움직이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정일우는 "선생님이 연극 작품 다 보러와 주셨다. 네가 연극을 꾸준히 해서 성장하고 발전하는 거라고 말씀하셨다"며 "연기가 어렵고 아직도 모르겠는데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데 이제 안 계시니"라고 눈물을 보였다.
끝으로 백일섭도 "형 그쪽 가시거든 연기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일을 많이 하더라도 반으로 줄이고 몸도 생각하시고 남일우 형, 오현경 형 다 계시니까 모여서 고스톱이나 치시며 행복하게 지내시라"며 "고생하지 마시라. 형 잘가시오"라며 고인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한편, 이번 다큐멘터리는 올해 초 고인의 허락을 받아 그의 연기 인생을 정리하는 내용으로 준비됐으나, 고인의 병세가 악화하면서 제작이 중단됐다. 다큐멘터리는 결국 고인의 영면 후 3일 만에 헌정 의미를 담은 추모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찾아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