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명·복종·후회' 세 갈림길…계엄의 밤, 생생한 증언들

[12·3 내란 1년]수명과 항명②
'항명'한 이들 "명령은 반드시 정당하고 합법적이어야"
지시 정점 尹, 43년 만의 비상계엄에 따른 장관과 군인
"몸 던져서 막았어야" 법정 나와 뒤늦은 눈물 보인 이들

43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국회에 군 병력이 들이닥치고 헬기가 상공을 가로지르며 군인과 시민이 대치하던 그날 밤, 누군가는 불법 계엄 지시에 항명했고, 누군가는 따랐으며, 또 누군가는 뒤늦게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CBS노컷뉴스는 계엄 당일 군과 국무위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그 선택이 헌법과 시민을 어떻게 지켜냈는지 생생한 증언들을 되짚어본다.


"제게 준 명령, 합법적이었나?"…"아니, 그걸 어떻게 합니까?"

비상계엄 당일, 다시 그날로 돌아가더라도 '항명'을 선택했을 군인과 공직자가 있다. 각자의 현장에서 벌어진 이들의 '저항'은 불법계엄의 속도를 늦추고,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가능케 했다.
 
국회로 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조성현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은 그날 밤 서강대교를 건너지 않았다. 그는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공판에 나와 "군에게 명령은 굉장히 중요하다. 목숨을 바쳐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반드시 정당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데 제게 준 명령이 그랬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국회 본관 건물까지 진입했던 김형기 1특전대대장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되돌려줬다. 그는 "조직에 충성해 왔고, 그 조직은 제게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며 "상급자 명령에 복종하는 건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임무를 부여했을 때 국한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이 '상급자에게 지시를 받았는데도 왜 하지 않았냐'며 항명을 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로 몰아붙였지만, 그는 "아니, 그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답했다. 시민이 군인을 막아서는 상황, 의원을 끌어내라는 임무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건 현장에서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계엄의 밤, 군인은 국회뿐 아니라 선거관리위원회에도 투입됐다. '부정선거'를 밝히겠다는 윤 전 대통령의 지시에 동원됐다. 선관위 서버 전체 압수수색 지시를 받은 윤비나 법무 실장은 계엄령 선포 이후라도 이같은 지시는 위법이라고 반대했다. 윤 실장은 "압수 절차 등을 하기 위해선 최소한의 범죄 행위를 특정해서 정식적인 입건 등 절차를 따라야 한다 논의했다"며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하게 되면 위법한 수집 증거가 됨은 물론이고 그런 행위를 한 인원들이 처벌 받을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도 비상 계엄 선포 직후 법무부로 호출됐지만, 계엄 유지 논의가 오갈지도 모르는 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4일 0시 9분쯤 사직서를 냈다. 내란 특검에 따르면,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은 당시 회의에서 '포고령의 위헌·위법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특검은 회의에 참석한 검찰 간부들이 계엄의 위법성을 검토하려 했던 것인지, 오히려 계엄 유지에 동조하려 했던 것인지 여부를 의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긴급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지난해 12월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군·경찰과 대치하던 시민들이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환호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이때 이런 말을 왜 썼지"…"기억이 부족하다"

반면, 불법계엄에 적극 가담하고 지시에 협조한 이들도 있다.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에게 '체포 명단'을 불러주고, 방첩사에 선관위 출동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는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대표적이다. 그는 체포 지시 의혹을 반박하며 "군인들은 체포, 검거, 공격해, 쳐부숴 같은 말은 입에 배어 있다"며 "저도 모르게 한 말이 있고, 저도 나중에 보니까 '이때 이런 말을 왜 썼지' 싶은 말도 있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군사 작전이 아니란 것을 알았음에도 그는 따랐다. 여 전 사령관은 "군은 정상적인 작전을 하면 계획이 있고, 명령이 하달되고, 실제로 한 행위들이 상황일지에 기재되고, 그렇게 해서 철저히 남겨놓는다. 이번 계엄 보시면 계획, 명령지, 상황일지 다 본적이 없다. 다 전화 통화한 것"이라며 "세상에 그런 군사 작전은 없다고 계속 말씀드렸다"고 말했다. 이후 방첩사령부는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등 주요 인사 신병 확보에 나섰다.
 
경찰력도 동원됐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과 여섯 차례 통화한 사실을 법정에서 밝혔다. 그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 전 대통령이) 국회로 월담하는 의원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다 잡아라', '체포하라'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조 청장은 계엄 당시 권한을 남용해 국회의원의 국회 출입을 막고 계엄해제 요구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12일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됐다.
 
국정 2인자였던 국무총리는 불법계엄을 방조했다. 계엄 당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반복하던 한덕수 전 총리는 법정에서 비상계엄 당일 대통령실 폐쇄회로 (CC)TV 영상이 일부 공개되자 "어떤 경위로 무슨일을 했는지 기억이 부족하다. 보고 들은 것이 제대로 인지되는 상황은 아니었다"며 입을 열었다.
 
한 전 총리는 "국무회의는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도 못한 상황이었지만, 좀 더 많은 국무위원이 와서 반대 의견을 밝힐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공개된 영상 속 그는 계엄 선포 전 이미 대통령실 대접견실에 먼저 도착해 김영호 전 통일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옆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국무위원 수를 손가락으로 헤아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특검은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특검은 "이 사건 내란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사람임에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의무를 저버리고 계엄 선포 전후 일련의 행위를 통해 내란 범행에 가담했다"고 지적했다.

"몸을 던져서라도 막았어야" 이제와 후회하는 사람들

그날의 선택 앞에서 누군가는 뒤늦게 후회했다.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에 모였던 국무위원들은 1년이 지난 지금 "몸이라도 던져 막았어야 했다"는 말을 꺼냈다.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17일 한 전 총리 재판에 출석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몸이라도 던져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사후적으로는 계엄을 막지 못한 게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떨궜다.
 
국무위원들의 뒤늦은 후회는 이어졌다. 조규홍 전 복지부 장관도 "워낙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국무위원의 한사람으로서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것에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국무회의가 아니라고 일관되게 생각한다"며 "윤 전 대통령이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취지의 말씀을 했다"고 증언했다. 송 장관은 도착 2~3분 만에 계엄 선포가 이뤄진 상황을 떠올리며 울먹이기도 했다.
 
계엄의 또 다른 축이었던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도 지난달 30일 법정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대통령 탄핵심판 때부터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일관되게 증언해 왔다. 비상계엄 당일에도 대통령과 함께 국회 상황을 실시간으로 봤다고도 했다.
 
그는 증인석에 앉아 "제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문을 부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또 지난해 10월 윤 전 대통령이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일부 정치인을 지목하며 "잡아 오라.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곽 전 사령관은 현재 내란 가담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비상계엄의 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갈림길 앞에서 각자의 판단은 서로 다른 결과를 남겼다. 누군가는 법과 양심을 지켰고, 누군가는 권력의 지시를 따랐으며, 또 누군가는 한참이 지난 뒤에야 선택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 선택들의 총합이 12월 3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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