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로 국회의 계엄해제 표결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은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이 3일 기각됐다. 이로써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 1년과 맞물린 정국 분수령에서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를 발판 삼아 '계엄 사과는 없다'는 강경 입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세에 맞설 명분을 얻었다는 점에서 안도감과 함께 자신감까지 붙는 모양새다. 장동혁 대표는 "대반격"을 주장하며 취임 100일 기자회견도 하지 않기로 했다.
'계엄 1년' 회견 안 하는 장동혁, 강경노선 더욱 강화할 듯
윤 전 대통령이 불법 비상계엄을 일으킨 지 1년이 된 이날, 추 의원이 구속을 면하면서 기사회생한 국민의힘은 '되치기'를 본격화할 기세다.
영장 기각을 우세하게 전망하면서도 일말의 변수를 고려해야 했던 지도부도 한숨을 돌렸다. 앞서 박성재 전 법무장관 구속영장 기각에 이어 추 의원도 구속을 피하면서 특검의 '무리한 수사'라는 주장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애초 당에서는 10월말 추 의원이 특검의 밤샘조사를 받았을 때부터 이번 사건을 중대 고비로 꼽아왔다. 특히 특검이 '내란 중요임무 종사'를 이유로 현직 의원 신병 확보에 나선 첫 사례란 점에서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추 의원 체포동의안 가결 직후부터 지도부가 여론전에 적극 뛰어든 이유다. 국민의힘은 계속해 추 의원이 내란에 가담했다는 '직접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고, 특검 수사 자체에 대해서도 여권 입맛에 맞춘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장 대표는 지난 1일 인천에서 열린 장외 집회에서 "저는 (추 의원의 구속영장) 기각을 확신하고 있다"며 "특검의 영장은 읽기도 역겨운 삼류소설이다. 근거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억지 스토리를 끼워 맞춰 놓았다"고 말했다. 또 추 의원의 영장 기각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향한 "대반격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여권을 향한 대대적 공세는 물론 '계엄 사과는 없다'는 장 대표의 입장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장 대표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놀랍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어떤 식으로든 계엄에 대한 입장 표명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는 자리인데, 장 대표는 사과 의향이 없다는 뜻을 그간 수차례 내비쳐왔다. 앞으로도 오히려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공공연히 언급한 위헌정당 해산 심판에 대해서 '근거 없는 내란몰이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식의 메시지를 낼 공산이 높다.
결국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과 당 쇄신을 위해 지도부가 계엄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와 상반된 지도부의 강경 노선이 계속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원들 '사과 움직임'에 '광주行'까지…내홍 더 커질 듯
이에 따라 당 내부 갈등이 더 분출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당은 이미 불법 비상계엄 사과 여부를 두고 쪼개진 상황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안에서는 '지도부가 사과하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하겠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계파색이 옅은 초·재선 또는 수도권이 지역구인 의원들을 주축으로 해서다.
재선 의원이 중심이 된 공부모임 '대안과 책임' 구성원들은 전날 '비상계엄 1년, 성찰과 반성 그리고 뼈를 깎는 혁신으로 거듭나겠다'는 제목의 입장문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글에는 12·3 비상계엄 당시 집권여당으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죄와, '윤 어게인(YOON Again)' 세력과의 단절 및 재창당 수준의 혁신 약속 등이 담겼다.
이들 의원들은 계엄 당시 민주당의 의회 독주를 지적하면서도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한 비상계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결코 안 될 일이었다"고 했다.
또 "이제 우리는 불법적인 비상계엄과 이로 인한 대통령 탄핵, 그리고 대선 패배에 이르기까지 국민 뜻을 온전히 받들지 못한 우리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국민께 사죄드리면서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으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입장 표명에 동참하기로 한 의원은 "사과는 받는 사람이 납득할 수 있어야 진짜 사과"라고 밝혔다. 그는 "추 의원의 구속 여부와 무관하게 사과는 필요하다고 본다"고도 했다.
이 밖에도 개별적인 반성 행보가 이어질 전망이다. 12·3 불법 비상계엄 해제 표결을 이끌었던 한동훈 전 당대표는 이날 오후, 자신이 '계엄의 밤'에 진입했던 국회도서관 방면 쪽문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당내 최다선인 조경태 의원은 광주를 찾는다. 한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찬탄(탄핵 찬성)파인 조 의원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기리는 '광주 선언'을 하고 5·18 민주묘역을 참배할 예정이다. 조 의원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엄중한 법의 심판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과 '쿠데타'란 단어를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