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수립한 첫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이재명표' 간판 항목을 거의 깎지 않았다. 여당이 야당을 설득하면서 절충점을 찾아낸 성과로 평가된다.
야당은 예산안 총액의 추가 인상을 막아내면서도 지역예산을 쏠쏠하게 챙겼다. 여야가 이렇게 치열한 대결을 펼치면서도 한 발짝씩 물러나 타협의 묘를 살린 결과 올해 국회 예산은 5년 만에 법정시한 내에 처리할 수 있었다.
명분 취하며 원안 사수
국회가 2일 밤 법정시한 만료를 20분여 앞두고 의결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핵심 국정과제로 꼽혀 온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1조 1500억 원), 국민성장펀드(1조 원)가 담겨 있다. 정부가 제출안 원안이 삭감 없이 유지된 것이다.
물론, 인공지능(AI) 지원예산은 2064억 원이 감액됐다. 다만 10조 원이 넘는 관련 예산 중 야당이 1조 2천억 원을 깎자고 했던 데서 삭감 규모를 크게 줄여 2%만 남긴 결과다. 또 전액 삭감한 사업이 없는 터라 정부 계획을 크게 막아서진 않는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야당의 요청을 일부 수용해 '합의 처리'라는 명분을 취하면서 사실상 원안을 지켜낸 셈이다. 국회 예결위 여당 간사인 이소영 의원은 "대통령 주요 정책과 당 핵심 정책 예산을 거의 전혀 삭감되지 않은 수준으로 지켜냈다"고 자평했다.
민주당이 요구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재해복구시스템 구축(3934억 원), 분산전력망 육성사업(2171억 원) 등의 예산도 이번에 늘었다.
국힘 "총액 순증 막았다"
국민의힘이 성과로 꼽는 건 약 728조 원 규모의 예산안을 심사 과정에서 더 늘리지 않고 지켜낸 대목이다. 오히려 정부안에서 9조 2249억여 원을 증액하고 9조 3517억여 원을 감액하면서 1268억여 원 순감을 이뤘다.
예결위 야당 간사인 박형수 의원은 "국정 철학과 관련된 예산에 대해서는 저희가 인정하고 양보를 하게 됐다"면서도 "확장재정, 적자 국채발행을 통해 마련한 예산이기 때문에 순증하면 안 된다는 저희 생각이 관철됐다는 게 성과"라고 평가했다.
야당이 요청한 민생 예산도 상당 부분 추가 반영됐다. 국민의힘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장학금 706억 원, 보훈유공자를 위한 참전명예수당 192억 원을 비롯한 7131억 원을 추가 확보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삶을 살리고 미래성장 기반을 다지는 민생예산을 얻어냈다"면서다.
지역예산도 쏠쏠하게 챙겼다. 송언석 원내대표 지역구인 김천에는 양천~대항 국도 대체 우회도로 착공 10억 원, 문경~김천 철도 건설 30억 원이 늘었다. 유상범 원내수석부대표의 지역구인 강원 평창에는 도암호 유역 비점오염저감시설 확충 81억 8300만 원도 증액됐다.
여당의 경우도 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 지역구인 충남 천안 동명~진천 국도건설 50억원 예산이 추가됐다. 이소영 간사 지역인 경기 과천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운영 등 예산 71억 6천만원이 늘었다.
국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예산안 수정안을 2일 본회의에서 재석 의원 262명 중 찬성 248명, 반대 8명, 기권 6명으로 가결했다.
이에 대해 우원식 국회의장은 "여야의 책임 있고 성숙한 태도가 경색된 정국을 푸는 거름으로 이어지고 앞으로 필요한 민생과 개혁 과제에서도 여야 협력의 길을 열어가는 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