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장동혁 지도부 교체 외엔 답이 없다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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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면 지도부 교체까지 언급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최근 사석에서 국민의힘 실무자 A에게 들었던 얘기다.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작성 중인 반성문에 그 정도 결기는 담아야 호소력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정치부 기자로서 그 말을 흘려들어선 안 됐다. 그가 어설픈 신출내기도, 위기론을 부추겨 반사이익을 얻을 계파 일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 구(舊) 주류에 가까웠고 이 판에 오래 몸담아 온 '꾼'이었다. 지금도 자기 위치에서 톱니바퀴의 한 축을 맡고 있다.

A가 내놓은 승부수에 선을 그은 건 외려 기자 쪽이었다. "너무 일각의 의견 아니냐" 심지어는 "일인(1인) 의견에 불과한 것 같다"라는 식으로 폄훼했다. 당원 투표로 정당하게 출범한 지도부를 100일 만에 갈아엎을 수 있다는 '불경한' 발상을 '각 잡고' 거론하는 게 생경한 탓이었다.

사실 소위 소장파라는 인사들도 장동혁 대표에게 일말의 기대를 걸어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을 면회하고 대중 연설에서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구호를 외치고도 "생각이 다 있다"고 하니 당분간은 지켜보자며 불만을 삼켜왔던 터다.

그 '구상'이라는 걸 틈날 때마다 취재했지만 명쾌한 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광분한 지지자들을 설득해서 끌고 가기 위한 빌드업"이라는 게 그나마 측근들이 귀띔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집토끼 먼저 묶어 둔 뒤 산토끼를 공략하겠다는 뻔한 수법. 물론 택도 없는 소리다.

'그래도 뭔가 더 있겠지…'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한 건 장동혁 대표의 정치 역정과 맞닿아 있다. 국회 법사위 파견 판사 시절 민주당과 가까웠다는 익히 알려진 얘기부터 한동훈계 '공천 칼잡이'가 어느 틈에 친윤(친윤석열) 주류로 자리매김한 것까지. 가히 변신의 귀재라 할 만하다.

혹자는 철새라지만 뒤집어 말하면 '전략적 유연성'을 갖췄다고 볼 여지도 있지 않은가. 탄핵 정국에서 "계엄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고 말한 뒤로 지금은 많이 잊혀졌지만 그도 사실은 계엄 해제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던 몇 안 되는 여당 의원이었다.

그날 A와의 식사 이후 기자는 한동안 몸살을 겪었다. 해물국수가 맛있다고 폭풍 흡입하다 급체한 탓이었다. 상대의 말에 경청하며 차분히 먹을 걸 그랬다.

그렇게 속이 뒤집혀 주말 내내 고생한 뒤 그나마 체기가 좀 가라앉았을 때쯤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장동혁 대표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였다. 불길했다.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면서 누군가를 설득하려 한다면 기자회견이 좋을 텐데 그걸 안 한다는 건 기존의 스탠스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 아닌가.

우려는 곧 현실이 됐다. 계엄 1년을 맞은 3일 아침, 기자회견 대신 나온 짧은 입장문. 사과는커녕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단다. 아이고 두야…. 국회 기자실 곳곳에서 탄식이 나왔다. 민주당은 12·3 내란 저지 디데이를 맞아 국회 광장에 유행가를 틀었지만 기자는 어쩐지 소화불량이 도졌다.

그 다음은 사실 볼 것도 없다. 송언석 원내대표가 별도로 대국민 사과 입장을 발표한 뒤 당 관계자들이 "역할을 나눠서 설명한 것"이라고 번갈아 주장했지만 그걸 누가 믿나. 윤석열이 지겹게 반복한 '계몽령'을 되살려놓고 2시간 만에 태연하게 사과한다니. 낮짝도 두껍다.

비겁하기까지 했다. 이날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인사들의 공개일정은 전무했다. 언론에 공지된 일정표에는 '통상 일정'이라고만 적혔다. 평일 기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장동혁 대표는 전국 순회를 막 끝낸 차라 '피곤한 상태'라는 후문이 지도부에서 흘러나왔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기자회견 뒤 대변인만 떡하니 세워놓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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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내부의 아우성은 색이 바랬다. 더러는 지지자들의 지탄을 겪어내면서 집단 반성문을, 몇몇은 지난 1년을 자책하며 개별 사과문을 냈지만 대표성을 얻기엔 역부족이었다. 한동훈 전 대표가 "제가 다시 사과하겠다"는 입장을 연신 밝혔지만, 그래서 뭐…. 열심히 하시라.

장동혁 지도부는 결국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고 본다. 취임 직후 지인에게 '하루에 1도씩 변하겠다'고 했다는데 100일 동안 얼마나 달라졌나. 돌고 돌아 계몽령이면 말짱 도루묵 아닌가. 지방선거까지 불과 6개월. '태세 전환' 전 준비동작이 필요하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시간이 없다. 이 속도라면 도움닫기, 발구르기 하다 선거 끝난다.

사족이다. 민주당에선 요즘 국민의힘 덕분에 '야당 복(福)'을 잘 만났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문재인 정부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카운터 파트너로 만나면서 유행했던 말인데 이번이 더 좋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연 국민 모두에게 좋은 일일까. 민주당 사람들이 반사이익으로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 당장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그뿐 아닌가. 도전 없는 발전이 가능할까. 고이면 썩는다는 건 권력의 생리 아닌가. 야당의 정상화는 이재명 정부의 진짜 성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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