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연달아 화재가 발생한 부산 영도구 빈집 밀집지역에서 또 불이 났다. 경찰이 앞선 화재 원인을 '알 수 없다'고 결론 지은 상황에서 또 불이 나자 주민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평일 오후 부산 영도구 청학동 한 주택가. 유리창이 깨지고 내부에 쓰레기가 가득한 빈집들 사이로 지붕까지 새까맣게 탄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재로 뒤덮인 내부에선 지금도 매캐한 냄새가 풍겼다.
이 집에서 불이 난 건 지난달 6일 오후 6시 50분쯤. 이 동네에서 아무도 살지 않는 집에 불이 난 건 올해에만 벌써 다섯 번째다. 지역주택조합 재개발 예정지인 이곳은 지난 1월부터 4월 사이 한 달에 한 번 꼴로 무려 4차례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 불이 났다.
경찰은 앞선 4차례 화재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으나, 모두 '원인 불명'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현장 감식에서는 발화점조차 찾지 못했으며, 탐문 수사를 벌였지만 폐쇄회로(CC)TV나 목격자가 없어 상황 파악에 한계가 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한 달 간격으로 비슷한 화재가 잇따랐지만, 경찰은 사건을 연결짓지 않고 신고 접수를 받은 팀에서 제각각 수사를 진행했다.
지난달 발생한 화재 역시 한 달 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나, 화인을 추정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앞선 화재 이후 일대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해 수거했지만, 불아 난 집과 멀리 떨어져 있어 화재 장면은 담기지 않았다.
부산 영도경찰서 관계자는 "지난달 현장 감식을 진행했지만 내부에 모두 쓰레기밖에 없는 데다 전소돼 화인을 밝혀내기 어렵다. 탐문 수사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며 "아무도 안 사는 곳이라 방화의 목적이나 실익이 없어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상 공공의 안전에 위험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여전히 거주 중인 주민들은 원인 모를 화재가 잇따르는 데 대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곳곳에 마른 풀과 쓰레기, 폐가구 등이 널려 있는 상태라 빈집에서 난 불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덮치지는 않을지 우려하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앞선 화재들에 대해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자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 A(60대·남)씨는 "빈집이라 아무도 없고, 전기도 끊겼는데 불이 날 이유가 뭐가 있겠느냐. 누군가 일부러 불을 지르는 것"이라며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안 해서 범인을 못 잡는 것 같다. 현장을 다녀간 이후로 경찰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고, 또 불이 나서 사람이 다치거나 잘못 되어야 나설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주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지역주택조합 측에 폐쇄회로(CC)TV 설치를 요청했고, 순찰도 주기적으로 하는 등 화재 예방을 위한 치안 활동을 강화했다고 해명했다.
부산 영도경찰서 범죄예방과 관계자는 "지주택 측에 지속적으로 요청해 CCTV를 4대 설치했고, 경찰서에서 현수막과 CCTV 안내판을 부착했다"며 "다만 사업 구역이 워낙 넓고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도 있어 사각지대가 많다보니 이를 피해서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 CCTV 추가 설치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