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싸운 학도병, 끝내 인정받지 못한 채 세상 떠나[영상]

6·25 당시 학도병 주장 故 안종득씨
아흔 넘는 나이에도 참전 기억 생생
자료 부족, 보증인 등 증거 입증 높은 문턱
"개인이 증거 마련할 수 없어…새로운 절차 필요"

故 안종득씨 빈소. 김현주 크리에이터

만 18세에 학도병으로 참전해 나라를 위해 싸웠던 안종득(94)씨가 끝내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12일 세상을 떠났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故안종득씨는 재학 중 철모 하나, 총 하나를 들고 전쟁터로 향했다.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그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안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학도병들은 어디 주둔할 데가 없으니까 학교 빈자리를 많이 주둔한다"며 "거기서 훈련받고 대기하고 있다가 산에서 어디 가서 싸우라는 연락이 오면 가서 싸웠다"고 전시 상황을 떠올렸다.
 
안씨는 만 18세(정읍 신태인중학교 3학년)에 전주 중앙초등학교 11사단(화랑사단) 13연대 13중대 학도병으로 자진 입대했다.
 
그는 국가를 위해 목숨 걸고 전쟁에 나섰지만, 끝내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안종득씨. 만18세에 6·25전쟁 학도병으로 참전했지만 증거(증인)가 부족해 인정받지 못했다. 김현주 크리에이터

"학생들이니까 군번 만들 새도 없이 1기 학도병 마크만 매달고, 갑자기 싸우라 하면 소대장이 데리고 싸우러 나갔다. 전쟁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니까 귀향하라고 해서 대전으로 내려왔다. 철모랑 총 반납하고 귀향증을 받아서 잘 뒀는데, 찾으니 없다"
 
국가는 그에게 사진, 학적부 등 참전 사실을 증명할 만한 자료와 보증인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당시는 전시 상황이었기에 사진이나 일기 등을 남겨둘 여력이 없었다.
 
또 긴 시간이 지나 학교 대부분이 폐교돼 학적부 등의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았고, 간신히 찾은 보증인들도 모두 세상을 떠난 상태였다.
 
안씨의 첫째 아들 안성은씨는 부친을 위해 2004년부터 2017년까지 3차례에 걸쳐 보훈처에 참전사실 확인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역시나 '자료 미비로 반송', '비군인(학도병) 참전 확인 미해당' 통보였다.
 
그는 당시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보훈처에서 요구하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혼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해야 할 분들이 있다는 건 아픈 현실이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이어 "증인들도 다 돌아가시고 국가마저도 기록 관리가 되어있지 않은 이 상황에서, 대안으로 당사자를 입회시키고 위원들이 패널 토의를 통해 질문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는 그런 방법을 택하는 건 어떠냐"며 "국가유공자를 위하겠다고 했던 정부라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논의하고 선정할 수 있는 절차를 개선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취재진은 국방부와 보훈처에 안종득씨와 같이 증거 자료가 부족해 참전 이력이 미인정된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 물었지만, 해당 기관은 "모아둔 자료가 없어 알려드리기 어렵다"고 밝혔다.
 
故 안종득씨를 위해 가족들이 직접 구입한 6·25 참전유공자 모자와 제11공수특전여단 65대대 김찬일 대위가 수여한 감사패. 김현주 크리에이터

고(故) 안종득씨의 사례는 단순한 개인의 아픔을 넘어, 국가가 그들의 희생을 얼마나 소홀히 다루었는지를 보여준다.
 
끝내 그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참전유공자들이 공정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보훈 절차에 대한 깊은 성찰과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