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본격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북미 대화국면을 앞두고 대북정책 주도권을 둘러싼 부처간 갈등이 점입가경이다. 통일부는 외교부가 주도하는 회의에 전격 불참을 선언했고, 전직 통일장관은 외교부에 "전문성이 없고 남북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정부 출범 초기부터 지적되어온 '자주파'와 '동맹파'의 동시기용이 경쟁을 넘어 불협화음으로 표출되며 대북정책 혼선 우려도 나오고 있다.
'외교부 주도' 한미대북협의에 통일부 불참 "별도로 美와 협의"
외교부에 따르면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과 케빈 김 주한미국대리대사는 16일 한미 대북정책 조율협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고위급 대북정책 협의체다.통일부는 불참을 선언했다. 통일부 대변인실은 "이번에 외교부가 진행하는 미측과의 협의는 조인트 팩트시트의 후속 협의에 대한 내용으로 알고 있다"며 "한미간 외교현안 협의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통일부는 불참하기로 했다"고 공지했다.
이어 "동맹국으로서 필요시 국방정책은 국방부가, 외교정책은 외교부가 미국과 협의하고 있으며, 대북정책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필요시 통일부가 별도로 미측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대북정책의 협의 주체는 외교부가 아닌 통일부임을 강조한 것이다.
다만 외교부는 조인트 팩트시트에 "양 정상은 대북정책과 관련해 긴밀히 공조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명시된 만큼 대북정책과 관련된 공조협의 개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직 통일장관들 "외교부, 전문성 없고 남북관계 이해 못 해"
대통령실은 "통일부와 외교부가 조금 다른 의견을 낼지라도 아직 갈등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사안이지 않을까 싶다"고 수습하고 있지만, 이른바 자주파와 동맹파의 파열음은 지속해서 새어나오고 있다.진보정부 시절 통일장관을 역임한 원로들은 정동영 통일부장관을 지원사격하며 외교부 비판에 나섰다. 이들은 성명을 내고 "정부 차원에서도 대북정책을 외교부가 주도하는 것은 헌법과 정부조직법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거 남북관계 역사에서 개성공단을 만들 때나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 외교부는 미국 정부보다 훨씬 더 부정적이고 보수적이었다"며 "전문성이 없고 남북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교부에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고 비판했다.
통일부는 이번 한미 협의가 문재인 정부 당시 한미 워킹그룹의 되풀이가 될 수 있다고 염려한다. 당시 한미 워킹그룹은 대북제재 이행과 남북 협력 조율을 목표로 출범했지만, 미국이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 번번이 제동을 놓으며 심의기구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통일부는 이번 회의 역시 미국이 우리 정부의 남북 대화국면 조성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다만 외교부는 워킹그룹과 같은 특정 협의체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대북정책 전반에 걸쳐 한미간 어떤 생각을 갖는지 들어보는 채널을 열어놓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