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허술…예견된 실패

[청주 '관아지 옛길' 흉물 방치 이대로 괜찮나③]
사유지 발목…상인들 비협조와 각종 민원도
"자칫 문화재라도 나오면"…개발 참여 외면
예산 부족…벽화 조성 등 땜질식 사업 전부
청주·청원 통합 최대 이슈…행정적 무관심도

관아지 옛길 의숙의 거리에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다. 임성민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청주 '관아지 옛길' 흉물 방치…도심 속 역사·문화 퇴색
② 거창했던 역사·문화 프로젝트
③시작부터 허술…예견된 실패
(계속)

관아지 옛길 정비 사업은 시작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예산은 턱 없이 부족했고, 사유지 보상 문제에 대한 사전 교감 없이 섣불리 추진됐다. 사업 계획은 각종 제약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다.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 사업은 이미 예견됐다.

사유지 문제·상인 비협조에 각종 민원까지 속출

관아지 옛길 정비 사업 구간의 대상지는 밀집한 상업 공간이자 사유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사업은 애초 사유지 보상을 전제로 설계되지 않았고 벽면 활용이나 시설물 설치를 위해서는 건물주와 상인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얻어야만 했다.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사업이 추진되면서 현장에서는 반발이 잇따랐다. 보상 문제와 영업 불편을 둘러싼 민원이 이어졌다. 동의가 이뤄지지 않은 구간은 상당수 사업 대상에서 제외됐다.

청주시 관계자는 "강제로 토지를 매수할 권한이 없었고, 당시 조건에서는 국비 지원도 되지 않았다"며 "결국 동의가 이뤄진 1~3구간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임성민 기자

상인과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업 초기부터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팽배했다. 관광객 유입 효과가 불확실한 상황인 데다 보상 없이 사유지를 내줘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 사업계획서 자문 보고서를 보면 상인회 관계자들은 상가 활성화 방안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민과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사업 추진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신중한 접근 의견도 제시했다.

충북대학교 도시공학과 반영운 교수는 "관아지 옛길 사업은 계획 단계부터 토지주와 상인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못했다"며 "사업 진행 상황을 모르는 당사자도 있었다. 결국 소통 부재가 사업 실패의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자칫 문화재라도 나오면…개발도 소극적

녹슨 관아지 옛길 조형물. 임성민 기자

개발을 위한 청사진은 외면받았다.

관아지 옛길 정비 사업은 청주 읍성을 중심으로 추진됐다.

공사 과정에서 문화재가 발견될 경우 사업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 같은 이유로 일부 시공사들은 공사 참여 자체를 꺼렸고, 행정 역시 적극적인 개발을 추진하기 어려웠다.

시는 당시 관아지 옛길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 개발을 위해 몇몇 대기업과도 접촉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시 관계자는 "사유지가 많고, 보상도 안 되는 데다 문화재 리스크까지 안고 가야 하는 사업을 선뜻 맡으려는 곳은 없었다"며 "개발 공사 입장에서는 손실 가능성이 큰 사업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예산 부족에 행정 무관심도…예견된 사업 실패

각종 제약 속에서 사업은 결국 최소한의 정비 수준에 머물렀다.

애초 구상과 달리 골목을 체류형 공간으로 만들 만한 장치들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

역사·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벽화, 안내 표지 등 단발성 요소를 덧붙이는 방식에 그쳤다.

실제로 1차 사업비 5억 3700만 원 가운데 상하수도 정비와 도로포장 등 기반 공사에만 무려 4억 7500만 원(88.5%)이 투입됐다. 스토리텔링을 담은 벤치나 조경, 안내표지 등 시설 투자는 6200만 원(11.5%)에 불과했다.

관아지 옛길에서 시민들이 흡연을 하고 있다. 임성민 기자

행정적인 관심도 크게 떨어졌다.

관아지 옛길 정비 사업을 계획하기 시작한 2012년은 청주·청원 통합 준비가 한창일 시기였다.

당시 대규모 행정 개편을 앞두고 조직과 인력 재배치가 이어졌다. 1·2차로 나눠 추진하기로 했던 이 사업의 담당 부서와 실무자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점차 사후 관리에도 손을 놓으면서 관아지 옛길은 지금의 도심 속 흉물로 전락했다.

시 관계자는 "구도심을 살려보기 위해 추진한 사업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며 "실질적으로는 실패한 사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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