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경영이냐, 꼼수 방어냐…고려아연 美제련소 추진에 막판 갈림길

크루서블JV에 본사 지분 10% 이전…이례적 방식
26일 신주 발행…내년 주총 의결권 확보 시점 맞물려
법원, 이르면 23일 가처분 결론

연합뉴스

미국 제련소 투자를 위한 1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놓고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 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총사업비 조달 방식을 놓고 고려아연 측은 미국 정부의 투자로 설명한 반면, 영풍·MBK는 실질적인 자금 대부분이 상환 의무가 있는 차입금이라고 보고 있다.

신주발행 시점(26일)과 합작법인에 본사 지분을 이전하는 방식의 유상증자 역시 논쟁이다. 신주 배정이 경영상 필요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경영권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인지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차입금이냐, 투자금이냐

논란은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 및 기업과 세우는 합작법인 크루서블JV에 본사 지분 약 10%를 넘기는 방식과 전액 채무보증 구조가 알려지면서 증폭됐다.

영풍·MBK는 이 과정에서 투자금 상당 부분이 상환 의무가 있는 차입금이라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미국 전쟁부(前 국방부)·상무부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제련소를 짓기로 했다. 이를 위해 신주 220만9716주를 크루서블JV에 전량 배정하기로 했다.

합작법인에 미국 정부 등이 출자하는 금액은 약 6억 달러, 고려아연의 직접 출자금은 약 9000만 달러다. 반면 미국 정부로부터 조달되는 12억5000만 달러와 미국 국방부 및 글로벌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46억9800만 달러의 장기 신디케이트론은 모두 차입금으로, 고려아연이 2040년까지 전액 채무보증을 서야 하는 구조라는 주장이다. 총사업비 74억 달러 중 80% 정도는 고려아연이 지게 될 빚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미국 현지 제련소 운영법인 크루서블 메탈즈에 지분 최대 14.5%를 주당 0.01달러에 매입할 수 있는 워런트(신주인수권)를 부여받았다.

영풍·MBK파트너스는 "동일한 금액을 국내 시장에서 조달할 경우와 비교해 막대한 추가 재무 부담을 의미한다"며 "이러한 구조를 두고 '저리 자금' 또는 '특혜 금융'으로 설명하는 것은 일반적인 금융 상식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려아연은 이같은 해석에 대해 "MBK와 영풍의 가정은 허위"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고려아연 지분 10%를 미국 정부가 사실상 취득하는 것은 고려아연과 '전략적 파트너'가 돼, 전폭 지원하겠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정부와 전략적 투자자는 합작법인에 총 18억5000만 달러를 직접 투자하고, 미국 정부와 대형 금융기관은 제련소 운영법인인 크루서블메탈스에 49억1000만 달러의 금융지원을 제공해 투자와 금융지원을 합친 규모가 총 67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고려아연은 "총사업비의 91%를 미국 정부 등이 책임지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와 전략적투자자, 대형 금융기관이 합심해 타국 기업에 투자한 사례는 흔치 않을 뿐 아니라 이렇게 큰 규모로 투자한 사례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가 자금 지원뿐 아니라 IRA 세액공제, 보너스 감가상각, 정책금융, 신뢰할 수 있는 공급자(Trusted and reliable supplier)로서의 파트너십 강화 등 각종 제도적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만큼, 이번 투자를 단순한 차입 위주의 사업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경영상 목적 vs 경영권 방어 수단

신주 발행 시점과 방식도 논쟁의 불씨가 됐다.

상법 제416조는 신주 발행에 대해 원칙적으로 이사회 결의 사항으로 보지만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배정할 때는 경영상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고려아연과 영풍·MBK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도 이 지점이다. 고려아연은 경영상 목적에 의해 유상증자를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영풍·MBK는 경영권을 유지하기 위한 꼼수라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신주 발행일이 이달 26일로 잡힌 것을 놓고 양측은 또 대립하고 있다.

영풍·MBK는 고려아연이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의결권을 즉시 행사할 수 있는 시점에 맞춰 우호 지분을 늘리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26일은 올해 주주명부 확정일(이달 31일) 전까지 행정 절차를 마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주식을 언제, 어떤 목적으로 매수했는지에 따라 배당 자격을 차등 부여한다면 배당 기준일의 존재 의미 자체가 사라진다"고 반박했다. 또 미국 정부가 신속한 계약 체결과 거래 종결을 요청했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공동 투자와 관련한 협의 자체는 지난 10월 끝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정부는 내년  정기 주주총회부터 사외이사 후보 추천권을 행사할 계획인 만큼 2025년 12월 이전에 모든 절차를 마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작법인에 고려아연 지분 10%를 넘기는 것 역시 논란이 되고 있다. 통상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과 합작법인을 세울 때는 합작법인 지분을 나누는 것이 일반적이다. 크루서블JV가 고려아연 본사 지분을 직접 보유하게 되면 고려아연 측은 우호 지분을 더 확보하게 된다. 합작법인이 내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경제 협력? 트럼프 행정부도 맞장구

법원 판단을 앞두고 양측 간 공방 수위가 더욱 높아지면서 한미 경제 협력 여부를 놓고도 양측은 대립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이번 제련소 건설 사업과 관련한 당위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 정부는 크루서블 메탈즈에 대한 반도체법 인센티브 지원을 발표하며 해당 사업이 "미국의 국가 안보와 경제 안보에 필수적(vital)"이라고 밝혔다. 미국 상무부 역시 "이번 핵심광물 생산의 '리쇼어링'은 미국 내 반도체 제조에 대한 현 행정부의 헌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는 입장을 냈다.

여권에서도 "우리 기업들이 한미동맹을 경제안보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중"이라며 고려아연의 미국제련소 건설 추진과 전략광물 공급망 협력에 대해 직접 언급했다.

이에 대해 영풍·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미국 제련소 건설과 한미 협력 자체를 반대한 적이 없다"며 "문제의 본질은 미국 제련소 건설이나 한미 협력이 아니라, 최윤범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설계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라고 재반박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부장판사)는 영풍·MBK 측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제기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금지 가처분 신청 건에 대해 이르면 이날 중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법원이 영풍·MBK 측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고려아연은 예정대로 26일 유상증자를 진행해 220만9716주를 신주로 발행한다. 이 과정에서 합작법인 크루서블 JV가 고려아연 본사 지분 10%를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확보하게 된다.

추천기사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