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이랑 같이 밥 먹으러 가고 선물도 받을 것 같아 기대돼요"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근처에서 만난 10살 엄모군은 수줍게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무슨 선물 받을지 고민을 해봤는데 아직 결정을 못 했다"면서도 몸을 베베 꽜다.
지난해에는 크리스마스의 설렘이 아닌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 집회로 가득 찼던 곳이다. 1년이 흘러 이곳은 일상을 되찾았다.
이날 오후 1시쯤 세종대로 동화면세점 앞은 한산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뀔 때마다 점심시간이 끝나 발걸음을 재촉하는 직장인들과 광화문으로 놀러 가는 이들이 20명 정도씩 건너왔다.
엄군의 어머니인 심윤아(39)씨는 "제가 음악을 하는데 올해 연습실 같은 공간을 새로 마련했다. 원래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라며 "올해는 이런저런 일을 벌이지 않고 나에게 집중하려고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래도 연습실에서 연습도 하고 공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큰 에너지가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심씨는 "그래서 내년에는 별다른 계획 없이 주어진 상황을 즐겁게 맞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경상남도 밀양에서 올라온 어머니와 나들이를 나온 송우성(25)씨는 "오늘 제 생일이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올라와 방금 맛있는 스파게티도 먹고 저녁에는 소고기도 사주신다고 한다"며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대학생인 송씨는 "이제 4학년이 되는데 내년에는 취업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스펙 준비를 많이 못 한 것 같아서 아쉽다"면서도 "그래도 내년에 더 열심히 할 마음이 생긴다"고 내년을 기대했다.
지난해 윤 전 대통령의 파면을 외치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했던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도 1년이 지난 이날은 밝은 표정의 가족, 연인, 친구들로 채워졌다.
1살짜리 아기를 품에 안은 남편과 경복궁역 앞을 산책하던 윤여선(33)씨는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다. 집에서 가족끼리 맛있는 것도 해 먹고 동네에서 재밌게 놀 계획"이라면서 "특별하게 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아기랑 있어서 더 의미 있다"며 웃었다.
서울 은평구에서 친구와 놀러 왔다는 이유진(25)씨는 크리스마스 계획을 묻자 "내일 서울랜드에 가기로 해서 기대된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씨는 "올해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도 "졸업을 하려고 했는데 못 해서 내년에 또 해야 한다"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옆에 있던 이재영(27)씨는 "오늘은 크레프 먹고 구경하러 나왔다"며 "내일은 춥다고 해서 집에만 편안하게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이씨는 "1월부터 11월까지 공부를 했는데 이번 달에 조금 놀러 다니면서 환기되는 것 같아 좋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날은 영상 6도의 춥지 않은 날씨에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한때 보행로가 가득 차기도 했다.
경복궁역 인근에서 60년 된 어머니의 한식집을 운영하는 박모(60)씨는 "이번에는 작년과 조금 달라진 것 같다"며 "작년에는 시위를 해서 교통도 복잡하고 분위기도 좋지 않아서 즐기지 못했는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분위기가 많이 밝아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올 한 해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이 많이 있어서 나라를 돌아볼 틈은 없었는데 시끄러웠지 않나"라며 "이젠 정리를 잘하고 내년에는 밝고 희망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며 손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