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용훈 '통속의 계보학', K-컬처를 다시 읽다

[신간] 통속의 계보학

돌베개 제공

'통속적이다'라는 말은 언제부터 비판과 폄하의 언어가 되었을까. 신간 '통속의 계보학'은 이 질문에서 출발해, 근현대 한국 사회에서 '통속'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흔들리고 변주되며 대중문화의 지형을 만들어왔는지를 흥미롭게 추적한다.

저자인 강용훈 인천대 국어국문학과 부교수는 이 책에서 '통속'을 단순히 저급한 취향의 낙인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공통적인 것'과 '저속한 것' 사이를 오가며 정치·사회·문화의 긴장을 비추는 개념적 렌즈로 해석한다.

식민지기부터 해방과 전쟁, 1987년 체제, 그리고 오늘날 웹소설과 K-컬처에 이르기까지 '통속'은 대중, 상식, 윤리, 상업성, 검열과 맞물리며 끊임없이 의미를 바꿔왔다.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통속'의 출발선이다. 1920년대만 해도 '통속'은 강연·교육과 결합된 말이었다. 사회교육과 지식 보급을 위한 언어였던 셈이다.

그러나 전시체제를 거치며 '쉽고 빠르게 동원되는 언어'로 표준화됐고, 해방 이후에는 신파·상업성·저급 취향을 가리키는 비평적 딱지로 수렴됐다. 대중이 정치적 주체로 호명된 4·19 이후에도 '대중성'은 민주성의 표지로 받아들여진 반면, '통속성'은 공론장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경계됐다.

저자는 방대한 신문·잡지·사전·비평 아카이브를 통해 이 과정을 개념사적으로 복원한다. 그 결과 '통속'은 주변부로 밀려난 잔여 개념이 아니라, 접근성과 정서, 반복의 힘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를 실제로 움직여온 핵심 동력임이 드러난다. 검열과 산업, 예술성과 상업성의 경계에서 '통속'은 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오늘날 K-컬처의 풍경도 이 연장선에 놓인다. 저자는 2024년 12·3 내란 탄핵 집회에서 아이돌 응원봉과 대중음악이 정치적 장면과 결합한 모습을 떠올리며, '통속' 연구의 현재성을 확인했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문화 취향이 한 공간에 모여 새로운 연대를 만들어내는 장면에서, '통속'은 다시 한 번 공통의 언어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통속의 계보학'은 '통속적이라서 가볍다'는 오래된 편견을 뒤집는다. 저자는 우리를 대신해 질문한다. 우리가 쉽게 즐기고 반복해온 것들은 어떤 권력과 질서 속에서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그 '통속성'은 어떻게 대중을 조직하고, 때로는 민주주의의 에너지가 되었는가.

강용훈 지음 | 돌베개 | 3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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