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격 은폐 혐의로 기소된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에게 1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면서 검찰의 반복된 기획·표적 수사의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이 판결문 검토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난 가운데 범여권에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건 발생 5년여·기소 3년 만에 1심 선고…북한 등산곶서 시신 발견으로 본격화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전날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5명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선고공판을 열고 피고인들에 대해 각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의 25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은 재판부는 당시 안보당국 책임자들이 제한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고 수사 결과 발표 과정도 위법성이 없었다고 봤다.
당시 해당 사건을 보고받은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을 확인해 있는 그대로 알리라"고 지시했는데 피고인들이 대통령의 지시를 어겼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제한된 정보이긴 하지만 나름의 판단을 내리고 그 결론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한 상황인지 등에 대한 당국 책임자들의 판단도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이 판결은 망인이 월북한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사실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며 이씨의 월북 여부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
서해 피격 사건 1심 선고까지는 사건 발생 기준 5년여, 기소 이후 3년이 소요됐다.
서해 피격 사건은 연평도 인근 해상을 항해 중이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시신이 2020년 9월 22일 북한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발견되면서 본격화됐다.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 타고 있던 이씨는 9월 21일 새벽 1시 36분쯤부터 같은 날 오전 11시 30분 사이에 배에서 사라졌다.
22일 밤 9시 40분부터 밤 10시 50분 사이 북한 측이 이씨를, 사살하고 그의 시신과 타고 있던 부유물까지 소각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이 내용은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에 계속 전파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9월 23일 새벽 1시 서훈 당시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참석한 제1차 안보관계 장관회의를 열었고, 이후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의 내부 전산망에서 이씨의 피격·사망 사실에 관한 정보가 모두 삭제됐다.
또 서훈 실장의 지시로 국방부는 '이씨의 월북 가능성이 높게 평가된다'는 내용과 그 근거가 제시된 최초 분석보고서를 작성했다. 이것은 군의 공식 입장이 됐고 해경 등은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 등에 배포했다.
해경은 표류예측결과분석 등을 추가로 반영해 '월북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2차 수사결과도 발표했고 이씨의 채무, 도박 등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현실도피의 목적이 있었다는 추가 발표도 있었다.
尹 정부 들어서자 달라진 해경…"월북 판단"→"월북 인정할 만한 증거 無"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해경의 태도는 크게 달라졌다.
2020년 10월 당시 해경은 "북측 민간 선박에 월북 의사를 표명한 구체적인 정황 등을 고려할 때 실종자는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자진 월북 시도 가능성을 언급하자 유족은 반발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해경은 "종합적인 수사를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입장이 변했다.
이를 토대로 특별감사를 벌인 감사원은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인사 20여 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검찰은 이들을 지난 2022년 12월부터 순차적으로 기소했고, 이후 60여 차례 재판은 보안을 이유로 비공개로 진행됐다.
검찰은 월북에 관한 판단 및 그 근거 등에도 허위 사실이 개입돼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이씨 및 가족에 대한 명예훼손 등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서 전 실장에게 징역 4년, 서 전 국방부 장관에게는 징역 3년, 박지원 민주당 의원에게는 징역 2년과 자격정지 2년,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게는 징역 3년, 노은채 전 국정원장 비서실장에게는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구형했다.
당시 검찰은 "고위공직자인 피고인들이 과오를 숨기기 위해 공권력을 악용하고 공전자기록을 삭제한 뒤 피격 후 소각된 국민을 월북자로 둔갑시켰다"며 "국민을 속이고 유가족도 사회적으로 매장한 심각한 범죄"라고 밝혔다.
法, 검찰 25가지 공소사실 모두 불인정…檢, 검토 이후 항소 여부 결정
법원은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절차적 측면에서 위법한 지시가 있었거나 법령을 위반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고인에 대한 실종보고나 이씨의 피격·소각 사실 보고 및 전파 등에 있어 절차를 위반하거나 지휘 체계, 계통을 따르지 않는 등 하자나 문제가 있다고 볼 만한 사정도 발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고서와 보도자료 등에 허위가 기재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허위가 개입돼 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피고인들이 이씨의 피격·소각 사실을 은폐하려 했는지에 대해선 고인의 피격·소각 사실을 감추려 했다고 볼 만한 사정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봤다.
이씨를 월북한 것으로 몰고 가려고 했던 것인지는 피고인들을 형사처벌 할 수 있을 정도로까지 증거에 의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당국의 판단 및 제시한 근거가 허위로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구명조끼 착용과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 발견, 소형 부유물 의지, 월북 의사 표명, 표류예측분석결과를 들며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전날 선고와 관련해 검찰은 "판결문을 우선 검토한 후에 항소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 이대준 씨의 형인 이래진씨는 선고 후 기자들과 만나 "도저히 오늘 판결에 대해서 납득하기 어렵고 의문도 들고 좀 황당무계한 판결문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어떻게 싸워야 될지 또 어떻게 재판을 해야 될지 우리 옆에 변호사님과 또 여러 전문가들과 종합적 판단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檢, 文 통계조작 사건 공소장 변경…울산시장 선거 개입·월성 원전 1호기 '무죄'
서해 피격 1심 전원 무죄 선고를 두고 검찰의 무리한 기획·표적 수사가 반복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기소한 문재인 정부 통계조작 의혹 사건 재판에선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하며 '조작'이란 표현을 '수정'으로 바꿨다.
대전지법에서 진행 중인 해당 사건의 지난 7월 16일 재판에서 검찰은 "애초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들이 통계 업무 종사자들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라며 "조작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과는 무관하다"며 공소장에서 변동률 '조작'을 '수정'으로 고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및 불법 폐쇄 의혹,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은 이미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지난 2월에는 탈북 어민을 강제북송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서훈 전 국가정보원장(국가안보실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등 문재인 정부 외교안보라인 4명이 1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정 전 실장과 서 전 원장은 징역형 10개월, 노 전 실장과 김 전 장관은 징역형 6개월의 선고를 유예받았다. 선고유예는 유죄는 인정하지만 범죄 정황은 경미해 일정 기간형의 선고 자체를 미루는 판단이다.
전날 무죄 선고와 관련해 서훈 전 실장은 "재판부가 있는 그대로 실체적 진실을 잘 판단을 해주셨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도 "저희 네 사람을 믿어준 국민과 현명한 심판을 해주신 재판부에 감사말씀드린다. 저를 제거하려고 정치공작을 한 윤석열은 파면됐고 감옥 갔고 저는 무죄가 됐다"고 밝혔다.
앞서 서 전 실장과 박 전 원장 등은 최후진술에서도 이 사건은 윤석열 정권에서 기획한 수사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법무부 장관을 지낸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전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문재인 정부에 낙인을 찍기 위해 조폭 같은 감사를 진행했던 감사원, 이를 받아 조작 수준의 수사와 기소를 진행한 정치검사들을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된다"며 "검찰은 당연히 항소를 포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정치검찰 조작기소 대응 특별위원회도 전날 입장문을 내고 "관련자들이 더 이상 무고한 재판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항소를 응당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