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테니스(WTA) 세계 랭킹 1위와 남자프로테니스(ATP) 671위의 맞대결.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와 닉 키리오스(호주)의 경기에 대해 신랄한 비판이 제기됐다.
둘은 29일(한국 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코카콜라 아레나에서 열린 '배틀 오브 더 섹시스(Battle of the Sexes)' 경기를 펼쳤다. 키리오스가 세트 스코어 2-0(6-3 6-3)으로 사발렌카를 이겼다.
영국 매체 '데일리 메일'은 30일 "올림픽 출전 선수, 성 대결 뒤 '여성 선수들에게 대규모의 오만한 해를 끼친다'는 사발렌카를 비난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호주 여자 하키 대표 조지 파커의 비판이다.
파커는 "이 경기는 두바이의 개조 코트에서 열렸는데 평등한 보상, 존중, 기회를 위해 싸워온 여성 선수들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오히려 여자 선수는 남성보다 본질적으로 열등하다는 나태한 이야기를 강화해 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날 경기에서 사발렌카는 키리오스보다 9% 작은 코트를 썼다. 또 키리오스에게 유리한 서브 기회를 제한하기 위해 모두 세컨드 서브가 없었다.
그럼에도 사발렌카는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다. 사발렌카는 메이저 대회 4회 우승을 거둔 현재 WTA 1위의 최강이었지만 ATP 투어 671위의 키리오스를 당해내지 못했다. 물론 키리오스는 2022년 윔블던 준우승 등 한때 13위까지 올랐던 강자다.
파커는 이어 "키리오스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다"면서 "훈련도, 경기도 하지 않고 스포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남자를 이겨도 위대한 페미니즘의 승리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키리오스의 ATP 투어 마지막 경기는 지난 3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ATP 마스터스였다.
특히 파커는 "이 경기의 승자는 결코 없었다, 사발렌카의 은행 계좌를 제외하고"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출전료를 챙기기 위해 여성 스포츠인들의 긍지를 무너뜨렸다는 것이다.
이 경기는 역대 4번째 테니스 성(性) 대결이었다. 지난 1973년 남자 선수 보비 리그스(미국)가 여자 선수가 마거릿 코트(호주)를 2-0(6-2 6-1)으로 이겼고, 같은 해 빌리 진 킹(미국)이 리그스를 3-0(6-4 6-3 6-3)으로 눌렀다. 1992년 남자 선수 지미 코너스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이상 미국)를 2-0(7-5 6-2)으로 완파했다.
1992년 당시도 이벤트 매치라 규정이 정규 경기와는 달랐다. 코너스에게 서브 기회는 1번만이었고, 코트도 코너스 쪽이 더 넓은 핸디캡이 적용됐다. 1973년에는 킹이 29세, 리그스가 55세로 나이 차이가 컸다.
이날 경기도 테니스를 홍보하기 위한 성격이 짙은 이벤트 경기였다. 미국 매체 ESPN은 사발렌카와 키리오스의 대결에 대해 "경기 내내 웃음과 농담이 오갔다"면서 "언더암 서브와 과장된 액션, 그리고 타임아웃 도중 관중을 즐겁게 하기 위한 사발란카의 춤까지 등장했다"고 전했다.
다만 테니스의 품격을 무너뜨렸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전시성 경기, 꼼수, 노골적인 서커스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는 실망스러운 경기였다"고 꼬집었다. 영국 BBC도 "팬들 사이에서 '웃음거리'라고 불리는 경기에 대한 반발이 나오고 있다"면서 "이 행사가 '스포츠를 저렴하게 만들고 빌리 진 킹의 유산을 근본적으로 배신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경기 후 키리오스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면서 "이번 경기는 테니스라는 스포츠에 있어 중요한 의미"라고 말했다. 사발렌카도 "정말 이 쇼를 즐겼다"면서 "다음에 키리오스와 다시 만난다면 전술과 강점, 약점을 더 잘고 있기에 훨씬 더 좋은 경기를 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