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신교 선교 유적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 미국남장로회 호남 선교의 출발점이자 호남 최초 개신교회 선교지로 지목된 '은송리 교회'의 위치를 규명할 새로운 견해가 발표됐다.
증언과 기억만으로 추정해왔던 은송리 첫 교회의 위치를 당시 선교사들의 기록 및 후대의 증언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지도와 왕실 자료 등을 종합해 추정했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다는 평가다.
은송리 첫 교회의 위치는 '행운슈퍼 옆 공터'…정해원 매입 건물과 교인들 세운 예배당은 다른 건물
지난 20일 전북연구원과 사단법인 오래된미래연구소, 구바울기념의학박물관 등이 주최·주관하고 전주문화원이 후원하는 은송리 첫 교회 관련 학술포럼에서 김중기 오래된미래연구소 이사는 "은송리 첫 교회의 위치는 행운슈퍼 옆 공터라는 정황이 확실해졌다"고 주장했다.김 이사는 "1893년이 정해원이 매입해 교회로 개조한 건물과 훗날 교인들이 세운 또 다른 교회(예배당)이 분리된 건물임을 비춰볼 때, 은송리교회의 위치는 명륜맨션이 아닌 행운슈퍼 옆 공터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뿐 아니라 호남 전체에서 개신교가 처음 전파된 공간이자, 선교사들이 처음 거주하며 첫 선교지부를 만든 공간인 은송리교회는 호남 기독교인들의 오랜 관심의 대상이었고, 그 정확한 위치가 어디였는지는 교계와 학계 간 큰 논쟁의 주제였다.
지금껏 은송리 예배당의 위치에 대해선 세 가지 견해가 주를 이뤘다.
첫째는 전주시 완산구 동완산동의 '행운슈퍼 옆 공터'로, 초기 서문교회 성도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공간이다.
두 번째는 지난 2015년 전주기독교협의회 등이 밝힌 전주시 완산구 서완산동의 '좋은교회 옆 공터로'으로 구한말 선교사들의 전주 입성 당시 도로망과 풍습 등 문화 지리를 근거로 추정한 곳이다. 전주시는 교계의 발표에 따라 이 곳을 '은송리교회 터'로 공식 지정하고 푯말을 세워 관리하고 있다.
김경미 교수는 '완산도형'에 묘사된 위치를 근거로 명륜맨션 인근 부지가 선교사들이 전주선교지부를 세워 복음을 전파한 곳이며, 이중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초가가 은송리교회라고 지목했다.
당시 김 교수의 주장은 증언과 기억에만 근거해 추정됐던 은송리교회의 위치를 선교사 문헌 뿐 아니라 한국 문헌을 통해 발견했다는 점과 전주의 고지도와 현대 위성지도, 항공사진 등을 총동원해 얻어낸 결과물로 구체적 신빙성과 설득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완산도형> 이후 두 지점 압축된 '첫 교회'논쟁…'교회'와 '예배당'은 한 건물?
김 교수의 발표 이후 은송리교회의 위치에 대한 논쟁은 기존 세 곳에서 '완산도형'의 정보와 일치하지 않는 '좋은 교회 옆 공터'를 제외한 '행운슈퍼 공터'와 '명륜맨션 언덕' 두 곳으로 압축돼 이어져왔다.교회와 예배당을 하나의 건물로 여기고 <완산도형>속 선교부 영역 내 우측 상단 직사각형 초가를 교회로 추정한 김경미 교수와 달리 김중기 이사는 정해원의 초가를 개조한 교회와 위의 직사각형 주택을 별도의 건물로 본다.
최초의 '은송리 교회'는 정해원이 매입한 건물로 언덕 아래쪽의 행운슈퍼 옆 공터에 있었고, 추후 신자들이 늘어나자 옛 백운정 자리에 또 다른 '교회'(예배당)를 세웠다는 주장이다.
김 이사의 주장에 따르면 「완산도형」그림 속 아래쪽 세 채의 초가 중 맨 아래가 정해원이 매입하고 추후 교회로 활용한 '교회'이고, 우측 상단 직사각형의 초가가 추후 신축한 '예배당'이다.
김 이사는 "정해원의 주택은 도시를 향해 더 아래쪽에 있었다"는 선교사의 기록에 집중한다. 이는 "정해원 선생이 완산 하은송리에 주택을 사고, 선교사들이 옛 백운정(현재의 거성연립) 부근 높은 지대에 주택 2동을 새로 지었다"는 서문교회 김세열 목사(1936년 부임)의 기록과 행운슈퍼 옆 공터를 첫 교회의 터로 증언한 서문교회 교인들의 증언과도 부합한다.
고종 황실서 선교사 재산 파악 위해 작성한 '의궤' …교회와 예배당은 다른 건물
1899년 작성된 『조경단준경묘영경묘 영건청의궤』(의궤)의 기록 또한 은송리교회의 위치가 행운슈퍼 옆 공터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의궤는 고종 황제가 이씨 왕조의 출발점인 완산을 성역화하기 위한 조경단 등을 설치하기 위해 작성한 문건으로서, 여기엔 완산 은송리 선교사들의 공간을 화산 지역으로 옮기게 하면서 파악한 선교사들의 재산 내역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의궤에 따르면 선교사들이 본채와 행랑채 등 와가들을 비롯해 모두 8채의 초가들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김 이사는 이 주택들 중 레이놀즈 선교사가 소유하고 '예배당'으로 기록된 초가의 규모가 8칸이라고 명시된 점을 주목한다.
김중기 이사는 "기존의 연구는 정해원이 처음 매입해 교회로 개조한 초가와 1~2년 후에 교인들이 새로 지어 의궤에 8칸으로 기록된 '예배당'이 동일한 건물로 혼동되어 쓰이고 있다"며 "두 건물을 분리해서 볼 때 은송리교회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교사들의 기록에 따르면 정해원이 구입해 첫 교회로 쓰인 건물은 서문밖 전주천 건너편 바깥 마을 가장자리의 산 언저리에 이었다"며 "이는 「완산도형」의 맨 아래 초가이자 서문교회 초대 성도들이 증언해 온 '행운슈퍼 옆 공터' 위치가 가장 자연스럽게 겹친다"고 설명했다.
추가로 발견된 해리슨 선교사의 기록…학계 "기존 연구 빈틈 메꾸는 발견"
이러한 논의를 두고 홍성덕 전주대학교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김중기 박사의 주장은 지금까지의 연구들이 채우지 못한 빈틈들을 채워넣은 연구 결과"라며 "선교사의 기록과 고지도, 여러 자료들을 종합했을 때 행운슈퍼 옆 공터를 은송리교회의 위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독 선교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이는 보이는 상황에서 호남 기독교사의 출발점인 은송리 교회의 위치를 지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라며 "하루라도 빨리 잘못된 곳으로 안내된 교회의 위치를 수정한 뒤 추후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