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뜬다 뜬다! 저기 봐!"
오전 7시 47분쯤 붉은 해가 빛을 내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함성과 탄성이 나왔다. 소중한 이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영하의 추위에 코끝은 빨개졌지만, 서로 덕담을 건네는 마음들이 한데 모여 현장은 따뜻했다. 2026년, 병오년, 붉은 말의 새해가 밝았다.
1일 서울 종로구 인왕산 청운공원의 어두컴컴한 새벽을 풍물놀이가 밝게 비췄다. 꽹과리와 장구가 경쾌하게 울리자 시민들은 추위를 잊기라도 한 듯 손뼉을 치고 덩실덩실 몸을 움직였다.
'제25회 인왕산 해맞이축제'가 열린 청운공원 운동장에는 새벽 6시 30분쯤부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진 매서운 추위에도 해돋이를 보기 위한 발걸음은 이어졌다. 운동장 곳곳에는 온열기기가 설치됐다. 열기가 나오는 기기 주변을 동그랗게 둘러싼 사람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무대를 지켜봤다.
종암동에 사는 권성준(34)씨는 38개월이 된 딸, 아내와 함께 이곳을 찾았다. 권씨는 "오늘 날씨가 정말 춥긴 한데 아기랑 다같이 좋은 추억 한번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해에는 겸손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며 "가족들에게 항상 고맙다"고 전했다. 딸 권율양은 새해에 어떤 소원을 빌고 싶냐고 묻자 수줍게 웃으며 "젤리요!"라고 답했다.
등산복 차림으로 홀로 이곳을 찾은 중년 시민부터 아기를 안은 젊은 부부, 부모님을 모시고 온 대가족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반려견과 함께 나온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운동장 한편에는 무료 커피차가 자리했다. 시민들은 손을 호호 불며 따뜻한 커피로 추위를 달랬다. 가훈을 붓글씨로 적어주는 부스도 마련됐다. '꿈을 갖고 뜻을 펼치자' 문구를 적어달라고 요청한 한 시민은 "추운데도 글씨를 잘 쓰시네요"라며 웃었다.
오전 7시쯤 하늘 가장자리에 붉은빛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전망이 트인 명당에 자리잡은 사람들은 카메라를 손 위로 들고 하늘을 담고, 하늘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도 했다. 어느새 운동장과 놀이터 뒤편 산책길까지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가득 찼다.
말 탈을 쓴 이계인(29)씨와 곽유경(29)씨는 '이히힝' 소리를 내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이씨는 "매년 띠에 맞춰서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용 문신 팔토시를 하고 나왔는데 올해도 재밌게 말 탈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는 "다치는 곳이 없이 건강하고 싶다"며 "붉은 말의 기운을 잘 받아서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공연업계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 곽씨도 "올해는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며 웃었다.
난간에는 사람들의 새해 소원지가 나란히 걸렸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닌텐도 스위치2를 갖고 싶어요' 소원지도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언 손으로 소원지에 각자의 바람을 적었다. 60대 이모씨는 "세계 평화, 국가 안정.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해지는 사회를 바란다고 적었다"며 "너무 거창한 것 같아서 다시 뗄까 고민 중"이라며 웃기도 했다.
네이버 '치지직'으로 라이브 방송을 하던 시민도 있었다. 뜨는 해를 카메라로 비추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고 있던 허수철(32)씨는 "어제 밤에는 제야의종을 보러 갔다가 오늘은 해돋이 방송을 하러 왔다"고 했다. 약 서른 명의 시청자가 수철씨와 함께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었다. 허씨는 "저는 원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애니메이터인데, 지금은 개인적으로 만화를 준비하고 있다"며 "잘 돼서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
홀로 일출을 눈에 담고 있던 김영재(31)씨는 "새벽 5시 반쯤부터 나와서 인왕상 정상에 올라갔다가 왔다"며 "아침에 일어나면서 조금 힘들긴 했는데, 나이도 한 살 더 먹었으니 나가서 운동하자고 다짐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현재 전공의를 준비하고 있다는 김씨는 "새해에는 잘 살고 또 건강하게 살자가 목표"라며 "주어진 일에 잘 대응하면서 한 해를 헤쳐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해가 완전히 뜨자 축하 폭죽이 터졌다. 시민들은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한 채 덕담을 나눴다. 2026년의 시작, 저마다의 바람을 안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새해의 출발선에 함께 섰다.